〈 734화 〉 734화 흐름의 방향
* * *
“어서와 오빠.”
닫혀 있던 현관문이 열리며 반갑게 맞아주는 지나를 보며 민우가 입을 열었다.
“보니까 잘 지내고 있나보네.”
생각한 것 보다 지나는 더 잘 지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나야 언제나 잘 지내고 있지. 들어가자.”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는 지나를 따라 민우도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빈손으로 올 수 없어 오는 길에 과일가게에 들러 여름과일들로 큰 바구니에 쌓여 있는 종합과일 선물세트를 사가지고 왔다.
“자, 받아.”
“오늘 길에 사온거야?”
“빈손으로 올 수 없잖아.”
“잘 먹을게.”
들고 있는 과일 바구니를 지나에게 건네준 민우가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와요.”
어느새 차이링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며 맞아주자 민우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저야 언제나 잘 지내죠.”
“전보다 더 예뻐지신 것 같습니다.”
“후후훗... 칭찬 고마워요.”
“안녕하세요.”
“하란씨도 잘 지내셨습니까.”
풋풋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하란이의 등장을 보면서 민우는 역시 이집은 뭔가 산뜻한 느낌이 든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예쁜 그녀들이 현관에서부터 맞아주니 집으로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뭘 그렇게 실실 쪼개고 있어.”
“내가 쪼개긴 뭘 쪼개.”
그때 그녀들 뒤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시비를 걸어오는 말투에 민우가 바로 맞받아쳤다.
“따라와.”
그런 민우를 보며 피식 거린 이만석이 따라 오라는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다. 어차피 이만석을 보러 온 것이어서 민우는 별 말 없이 곧장 그를 따라 향했다. 안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 뒤를 따라 민우도 따라 들어왔다.
“앉아.”
창문으로 다가가 닫혀 있던 문을 연 이만석이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전에도 여기서 대화를 두 번이나 나누었던 민우는 익숙하게 창가에 놓여 있는 원형 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의자를 빼내 몸을 앉혔다.
당연히 맞은편엔 이만석이 앉더니 민우에게 입을 열었다.
“답답하면 마이 벗어도 돼.”
“에어컨 안 틀어?”
“담배 피울 거다.”
그러고는 곧장 들고 있던 담배 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너도 건강생각해서 담배 끊는 게 어때?”
“아픈 곳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네놈 걱정하는 거 아니거든.”
“후우!”
입을 통해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은 이만석이 민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날 보자고 한 이유에 대해서 한 번 말 해봐.”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투자 건?”
민우가 여기에 오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없다고 보아야 했다.
“맞아.”
역시나 민우의 대답은 이만석의 생각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 단 하루만에 30억 이상 먹으니까 기분이 어때?”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기분 좋지. 다만 좀 아쉬울 따름이야.”
아무리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고 해도 억단위의 돈은 결코 적다고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자그마치 30억. 이 돈의 액수는 아무리 민우라고 해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뭐가 아쉬운데.”
한 편에 놓여 있는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타들어간 심지를 털어낸 이만석이 다시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빨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300억 정도가 아니라 500억이상 좀 과감하게 움직였어야 했다는 생각.”
하지만 그러함에도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볼 수 있었다.
한반도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며 여론이 움직였고, 이어서 정치권이 반응을 하는 것을 보고 민우는 200억을 더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총 300억정도를 가지고 개인투자자로써 참여를 하였다.
하지만 숙청작업을 벌이며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고 찬물을 끼얹는 것을 보며 민우는 걱정이 되어 이만석에게 전화를 했었다.
“내가 너에게 전화 했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하도 자신감이 넘치니까 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긴 했는데 찝찝했던 건 사실이야. 한데 뉴스를 보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얘기를 나왔을 때 그런 찝찝함은 한 번에 다 날아가 버렸어. 솔직히 말해서 충격을 넘어 감탄을 했을 정도야.”
남북정상회담이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한중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보다 어 성사시키기 어려운 것인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서울에서 고위급회담이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슈를 불러 일으켰는데, 판문점에서 대화가 있은 직후 그게 남북정상회담으로 격상되었다는 얘기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에게도 충분히 충격을 줄만한 사안이었다.
“솔직해 말해봐.”
민우가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이는 이남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문이 열리더니 지나가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차 가지고 왔어요.”
걸음을 옮겨 다가온 지나가 이만석의 앞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마시면서 대화 나눠요.”
이어서 민우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마셔.”
순간 민우의 인상이 그대로 찡그려졌다.
“뭐냐 너.”
“응? 뭐가?”
“이 녀석 애게는 나긋하게 얘기하면서 나에게는 뭘 그리 쌀쌀맞아?”
“그건 오빠 착각이야.”
그러고는 다시 몸을 돌려 나가는 지나를 민우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여동생 잘 해줘봐야 소용없다더니...”
민우의 투덜거림에 이만석이 피식 거리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게 뭐지.”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거야. 남북정상회담이 전부인지.”
“전부?”
“두 정상이 만나는 게 다냐는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물론 북핵문제도 있고 여러 문제가 산제해 있지만 그것 말고도 뭔가 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야.”
자신의 추측대로 물밑에서 남북대화가 이루어졌고 그게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로 끌어 올려졌다면 그게 남북정상회담 단 하나 뿐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북한이 보인 저자세는 그동안 북한이 보인 행태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리를 위해서 그런다고 쳐도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한 쪽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건 그대로 좋지 못한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아무리 경제가 나쁘고 좋지가 못 해도 도발을 하고 비난 성명을 발표하며 사나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쉽게 말해 10권대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한국에게 모든 면에서 밀릴지 몰라도 국가대국가의 기 싸움에서 만큼은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헌데 지금은 그런 기 싸움마저도 스스로 접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가 있었다.
“갑자기 판문점에서 몇 시간 대화 나누었다고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지.”
순진한 자가 아니라면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왜 바보 같다는 보는 거지.”
“단 몇 시간 만에 그런 쪽으로 결론이 날 정도로 그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는 일이야. 그건 어떤 정상들을 만나는 것 보다 이 나라에선 큰 사건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공헌장담을 했잖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그런데도 판문점에서 나눈 대화로 방향이 정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지.”
“남북정상회담 말고 그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소린가?”
“지금 대화를 쉽게 하고 있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아무리 정부 고위급인사라고 해도 함부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야. 그만큼 민감하게 다루어지고 지금까지 끌고 왔을 테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러한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그거 말고도 넌 더 알고 있을 거라는 추측이 돼. 이번 일에 대해서 넌 뭔가 많을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말이야.”
“나를 아주 높이 평가하는군.”
“높이 평가 하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말하는 거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거라고 알고 이는 사람이 몇 명이었을까. 민우는 그 사람들의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물밑에서 활동하던 국정원 인사들과 포함해 정부에도 윤정호 의원과 같이 그런 차기 대통령에 유력한 사람이나 김현수 대통령의 최측근에 해당하는 전문가들이나 인사들에 한정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상당히 민감하게 다루어졌을 것이 틀림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만석은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개최가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민우는 그게 의문이었다. 어떻게 그러한 기밀정보를 얻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물어봤자 그에 대해서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그쪽으로 힘을 뺄 생각도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강하게 풍기는 돈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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