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1화 〉 711화 흐름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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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링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지나와 자신과는 다르게 하란이는 정식으로 여자친구로써 이만석과 교재를 하며 만나 사귄 사이었다. 그러다 지나와 자신이 들어오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왔지만 유일하게 커플반지를 끼고 있는 것도 하란이었다.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 임신 소식을 듣는 다면 제일 충격이 클 테고 차이링이 봐온 하란이는 겉으로 강하게 행동하려 하고 그래도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여린 아이었다.
그래서 이만석보고 먼저 나가라고 한 후에 혼자 방에 남았을 때 차이링은 좀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물론 이만석이 자신이 임신 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들에겐 그게 아니었을 것이고 하란이는 더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잠을 설친 것만 봐도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알만 했다. 그래서 차이링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헌데 문을 열고 들어온 하란이는 반대로 자신을 위로해 주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손까지 잡아주면서 위로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차이링은 하라닝의 색다른 면을 보았고 마음이 뭉클했었다.
"마냥 귀엽고 착하면서 여린 아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강한 면도 있다는 걸 알았어.“
그렇게 말한 차이링이 이만석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알고 있고 지나도 아는데 마냥 숨기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이제 안나도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코로 크게 한 숨을 내쉰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계속 말하지 않거나 할 수는 없겠지. 저렇게 알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만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해 주는 게 좋겠지.”
차이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석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얘기를 끝내고 문을 열고 나온 이만석이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이어서 차이링도 걸음을 옮겨 자리로 와서 앉았다.
“무슨 얘기 나누고 왔어?”
“가족에 대해서.”
“가족?”
“별로 좋은 얘기가 아니어서 차이링하고 얘기 좀 나누었어.”
“오빠 가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럼 차이링 언니는 오빠 부모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말이에요?”
“들어서 알고는 있지.”
“차이링 언니뿐만이 아니에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나도 숨기지 않고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도 민준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지나씨도요?”
그에 하란이의 눈이 살짝 크게 떠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석의 가족에 대해서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안나도 몰랐겠지만 상황이 다르니 예외로 두었다.
“차이링도 알고 있고, 지나씨도 아는데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오늘 말하는 것도 확실히 나쁘지 않겠지.”
“도대체 뭐기에 비밀로 했던 거야?”
하란이는 이만석이 부모님에 대한 얘기를 비밀로 한 것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말하기 힘들 정도로 안 좋은 얘기야?”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
“......”
그 말에 하란이는 입을 닫았다.
안 좋은 일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오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으니까.’
하란이 또한 가족사에 대해서 이만석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좋은 얘기도 아니고 그걸 얘기해서 걱정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이만석이 말하지 않은 것에 공감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나가 차이링 언니와 지나씨에게는 말하게 된 거야?”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말해준 거야. 다만 하란이 너에게는 대도록이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고.”
“그렇구나...”
하란이는 그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에게만 말하지 않은것에 조금은 섭섭하긴 했지만 그것도 자신을 생각해서 한 것이니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얘기해 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
잠시 동안 이만석을 바라보던 하란이 입가에 작은 웃음을 지었다.
“알았어, 오빠...”
“아까 전에 옷을 보면서 가족 생각을 하는 거냐고 물었지?”
“응.”
“맞아.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 생각을 했어.”
“오빠의 아버지?”
“그래...”
그렇게 이만석은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서 얘기를 풀어놓았다.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는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얘기기 이어질수록 하란이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고 어떻게 어린 아이였던 이만석에게 가정폭력을 휘둘러 왔는지에 대해서 말을 들었을 때는 손으로 입을 가려다.
허리띠를 풀어서 채찍처럼 휘두르거나 발로 배를 걷어차고 뒤통수를 쌔게 후려갈기는 등 몸 여기저기를 구타를 당했었다. 하루는 배를 심하게 걷어 차여서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였던 적도 있었다. 그에 놀란 어머니가 만류 했다가 같이 얻어맞은 얘기를 하였을 때 하란이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차이링도 그렇고 지나도 표정이 좋지가 않아다. 안나는 무표정 했지만 이만석에게서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이만석은 차이링과 지나에게 말해 준 것처럼 숨김없이 다 알려주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그때의 상황과 보다 못한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일, 그리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 때의 그 행복했던 순간까지.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 했어. 출소를 한 아버지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고 어떻게 자신에게 이럴 수 있냐며 성질을 내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지. 난 하지 말라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러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만하라고 말하며 날 지켜주려 하다가 밀쳐버린 행동에 넘어지면서 뾰족한 상 모서리에 머리를 강하게 찍혀버리셨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아버지도 많이 당황해 했고 119에 신고를 했지만 결국에 그대로 돌아가셨고 다시 경찰서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허나 이만석에게 더 이상 어머니는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영정사진에서 미안하다고, 용서만 빌 뿐이었다.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죄책감에.
그 후로 이만석은 친척진에 전전하며 지내다 성인이 되어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사에 대한 얘기가 끝났을 때 응접실은 작은 정적만이 맴돌았다. 이미 알고 있는 차이링도, 지나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안나는 여전히 이만석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많이...힘들었겠구나.”
“다 지난 일이야.”
“지난 일이라고 해도 그런 일이 잊혀 질 리가 없잖아...”
순간 하란이 손으로 눈 주변을 닦아냈다.
“미안해 오빠.”
웃으면서 말했지만 오히려 흘러내리는 눈물의 양이 더욱더 많아진다.
“오빠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차이링도 있고 지나도 있었다. 그리고 안나도 있는 자리다. 하란이는 다시 눈을 닦아내지만 이상하게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다.
“잠시만...”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하란이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나가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충격이 큰가봐.”
“당연히 그럴 거야.”
차이링 또한 하란이 향한 화장실 쪽을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쏴아아!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해보지만 그런다고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화장실로 달려온 것이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쉽사리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지 않았구나...’
하란이는 지금가지 이만석과 만나고 지내면서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것에 의아해 했다. 하지만 자신처럼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 묻지를 않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이만석에게 물어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은 하란이는 전혀 생각지 못 했다. 차이링이 임신을 했다는 얘기처럼 충격이었다. 아니 이건 그 이상이었다.
‘불쌍해...’
이만석의 얘기를 들으면서 하란이는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이만석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저아진 앞에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비는 모습까지. 너무나 불쌍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오빠에게 그런 아픔이 있는 줄 몰랐어...’
너무 미안했다. 그 아픔을 감싸주지 못 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파왔다.
자신은 이만석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여자친구로써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하란이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이렇게 바로 잡아준 것도 이만석이고 마음의 상처를 위로받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해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팠다. 마음이 쓰라려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하란이는 그렇게 한 동안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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