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8화 〉 678화 집들이
* * *
“크게... 다치진 않겠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하란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리로보아 밖에서 큰일이 치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심 걱정도 되었다.
저러다가 크게 다치는거 아닐까하고.
“맵집이 튼튼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훈련소에서도 심심찮게 얻어 터졌는데요 뭐.”
“아...네.”
고개를 끄덕이는 하란이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지나가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안나씨보고 교관이라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지나는 아직 안나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쌔 한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 그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려는 듯 먼저 나서서 물어보았다.
“잠깐 동안 했어.”
안나는 그런 지나의 질문에 별 거리낄 것 없이 소주잔을 들이키며 대답했다.
그에 이번엔 지나가 다시 현석을 바라보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안나씨 교관으로써 어땠어요?”
교관이면 가르침을 주었다는 건데 안나처럼 무뚝뚝하고 차가운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떻게 평가를 할지 내심 궁굼했다.
“교관으로 말입니까?”
“네.”
잠시 안나를 바라본 현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유일하게 여자 교관이셨는데 아주 상당했습니다. 첫 등장부터 보통이 아니셨죠.”
그렇게 현석은 안나와의 첫 대면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거기서 춘배가 깐죽거리다 대련을 하게 대었고 얻어터진 후 대짜로 뻗어 기절을 하였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그 얘기를 아주 맛갈나게 하니 듣는 지나나 하란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춘배 형님이 그래도 힘 하나는 아주 타고난 장사인데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당했습니다.”
“춘배 형님이 말이야?”
김민복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데르말로나 샤킵 또한 마찬가지였다. 훈련소 가기 전 까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 춘배는 상당히 강했던 것이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민첩성에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으로 내리치면 그 힘이 장난 아니었다.
타고난 강골에다 통뼈라 말 그대로 격투기에 타고난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 춘배 형님이 쪽도 못 써다고 하니 이거야 말로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평범한 여자는 확실히 아니지.’
얼핏 생각해보면 이집트에서도 안나를 두고 교관이라고 했었던 거 같기도 햇다.
무심한 듯 냉기를 풍기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위험한 냄새가 났다.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타고났다고 할까.
그날 해변의 별장을 점령하고 치안대와 대치를 하고 있을 때 이만석을 처음 만났었다.
어떻게 배치해 놓은 경계인원들을 아무 소리 없이 뚫고 온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뒤에 나타난 여자가 총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박에 있는 배치시킨 인원들이 다 당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바로 안나였고 눈앞에 있는 이 여자였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안나의 모습은 타고난 킬러, 그 이상이었다.
‘보스와 함께하기 전에 뭘 하던 여자일까.’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면 샤킵 또한 안나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의 실력이 되니까 교관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순간 그런 샤킵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든 안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그 무심한 눈빛에 샤킵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한기가 도는 듯 했다.
‘눈만 마주쳤는데도 이 정도라니...’
시리아 특전사출신이자 전쟁용병인 그도 안나의 저 눈빛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사격술도 사격술이지만 단검을 다루는 것 까지 하나하나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거기서 같이 훈련받은 사람들은 모두 교...관님을 잊지 못 하죠.”
교관이라는 말에 힐끔 바라 보긴 했지만 다행이 별 말은 없어 속으로 안 도하며 얘기를 마무리 짓는 현석이었다.
“안나씨 정말로 대단했나보네요?”
“민준이 빚 진 게 있어서 한 것뿐이야.”
“그래도 여자의 몸으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걸 보면 멋있어 보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란이 까지 동의 하듯 대답했다.
‘큰형님의 곁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평범한 여자가 없구나.’
얘기를 듣고 있는 김민복은 속으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이링만 봐도 그 유명한 삼합회의 지부장에다가 일성회에 와서 조직개편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지나라는 저 여자는 알고 보니 굴지의 대기업인 세진그룹의 정석환 회장의 딸이었다.
그리고 저 안나라는 여자는 이만석 만큼이나 대단한 실력을 소유한 여자로 느껴졌다.
일성회에서 제일 장사인 춘배가 쪽도 못 쓰고 당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김민복은 안나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 그렇다면.’
하나하나가 모두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소유했거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김민복의 시선은 하란이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평범하지 않은데 저 귀엽게 생긴 그녀도 뭔가 특별한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 형수님의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게 김민복이 하란이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열고 이만석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춘배와 이원종이 따라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상으로 돌아온 이만석이 몸을 앉았다.
“너희들도 편히 앉아.”
“예.”
동시에 빠릿빠릿하게 대답한 춘배와 이원종이 원래 자리에 앉았다.
혹시 멍이라도 들었나 살펴봤는데 다행이 멍은 없어 보였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찜질했나본데.’
그걸 보고 유추 할 수 있는 건 얼굴이나 이런 드러난 부분이 아닌 보이지 않은 몸을 따끈하게 찜질을 해줬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담배는 잘 피우고 왔어?”
“예, 누님.”
춘배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기도 너무했네. 담배 안 피운다는 애 끌고 가서...”
“아, 아니우, 누님.”
나긋한 차이링의 말에 춘배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이 앞이라고 그렇게 말할 것 없어. 다아니까. 자기도 피기 싫다는애 억지로 데려가지 마. 담배 그거 안 좋은 거잖아?”
“주의하도록 하지.”
나직하게 이만석이 대답을 하는 순간 춘배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진짜 아니오, 누님! 오랜만에 피우니까 맛 이 좋아서 지금 당장에라도 한 대 더 피우고 싶은 심정이요.”
괜히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춘배는 어떻게든 변호하며 한 대 더 피우고 싶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춘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 그래?”
놀란 표정을 지은 차이링이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 못 생각했네... 아까 거절 하려는 거 보고 싫어하는 줄 알았지... 자기 한 데 더 피우고 싶다네?”
“한 대 더 피러갈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만석의 모습에 순간 춘배의 얼굴이 푸리 죽죽 하게 변했다.
“뭐해? 안 따라오고.”
저 한 마디가 춘배의 가슴을 심하게 덜컹하게 만들었다.
“예, 예...”
“원종이 너는 어떠니?”
“저는 괜찮습니다! 몸에도 안 좋은 거 한 대면 충분하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절을 하는 이원종을 보면서 차이링이 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몸에 안 좋으 거 더 펴서 뭐하겠어? 춘배 재도 담배 줄여야 할 텐데...”
차이링은 정말로 춘배가 걱정이 된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가자.”
몸을 돌려 나가는 이만석을 따라 춘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음을 옮겼다.
그런 힘없는 등을 차이링이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 이 여자 뭐야?’
‘저런 식으로 저놈들 숨통을 조이네.’
데르말로는 당황했고 샤킵은 차이링을 보면서 속으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아니, 좀 소름이 돋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천사라는 춘배의 말에 틀린 것 하나 없이 정말로 어여쁘고 그림같이 예쁜 외모를 소유한 여자라 눈도 호강하고 묘하게 가슴도 설레었는데, 이제 보니 그런 천사의 얼굴 뒤에 숨겨진 섬뜩한 면모를 본 것 같았다.
그건 두 사람 뿐만이 아니라 현석이나 김민복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안나씨보다 언니가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일지 모르겠어.’
저렇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춘배를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차이링의 행동에 놀란 지나였다.
전에 차이링의 잔인한 면모를 본적 있던 하란이라고 해도 이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님 앞에선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다행이 두 번째 타작에서 참여하지 않고 빠져나온 이원종은 안심이 되기 보다 등골이 서늘했다.
정신 바짝 안 차렸다가 저렇게 춘배 꼴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살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다들 편하게 식사하세요. 혹시 더 필요 한 거 있으면 말하고.”
밖에서 들려오는 타작 소리와 다르게 생긋 미소 지으며 말하는 차이링의 목소리는 상당히 나긋하고 듣기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