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7화 〉 677화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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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을 켜기가 무섭게 물어오는 데르말로의 말에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무안했던 게 속으로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양주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데르말로가 이만석에게로 향하더니 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지나 형수님은 어쩌다가 형님을 만나게 된 겁니까?”
“저요?”
“신분이 신분인지라 평범하게 만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디다?”
이원종은 이에 대해서 많이 궁금한 듯 했다.
사실 이 자리에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세진그룹의 정석환 회장의 딸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런 집안의 딸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험한 일을 하는 이만석의 여자로, 그것도 임자가 있는 남자의 여인으로 온다는 것이 절대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흔한 말로 재벌들은 집안끼리 결혼한다는 말이 있듯이 위치를 생각하면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결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무리 이만석이 대단하다고 해도 집안 내력이 뛰어 난 것도 아니고 이쪽 바닥에서는 잘나간다고 하지만 하고 있는 일 자체가 인식이 좋지 않은 그런 험한 일들이었다.
기사가 잘 못 나기라도 하면 그룹 이미지도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그런 상대와 만나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이에 대해서는 이원종 뿐만이 아니라 데르말로나 샤킵, 그리고 안영만 현석, 김민복까지 가릴 것 없이 다 관심을 드러내며 바라보았다.
그저 그런 기업도 아니고 한 나라의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세진을 이끄는 오너집안의 딸인데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회장에서 만났어요.”
“연회장?”
“거기서 이 사람을 보았어요.”
지나는 이만석과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지 대략적으로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거기서 보았던 이만석의 태도, 그리고 찾아가서 골려주려고 하였다가 이 상황에 오게 된 것까지, 간추려서 알려주었다. 하지만 지나는 안 좋았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말할 얘기도 아니고 해서 좋을 것도 없는 얘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야... 그러니까. 결국엔 그 만남이 이렇게 이어졌다는 건데 형님도 참 대단합디다.”
“그 현호라는 사람만 불쌍하게 됐네.”
“둘 다 마음이 맞지 않아서 헤어진 거니 그렇게 가슴 아파할 일은 아니에요.”
불판에 오려져 있는 고기를 뒤집는 사이 이만석이 맥주병을 땄다.
“한 잔 받아라.”
이만석이 술 한 잔 따라주려고 하자 춘배가 잔을 들더니 이만석에게로 다가갔다.
황금빛의 액체가 컵에 가득 따라지며 탄산과 함께 거품이 차올라 막을 형성했다.
거의 넘치려고 할 떼쯤 바로 새운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기와 술은 넉넉하게 준비 되어 있으니까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해.”
깔끔하게 벌컥 이며 잔을 비운 춘배가 새워져 있는 맥주병을 들었다.
“이번엔 제가 한잔 따라 드리겠수, 형님.”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잔을 내밀자 춘배가 조심스럽게 잔에 술을 채웠다.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고개를 집개로 뒤집어 놓는 사이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여러 얘기를 나누며 술잔을 가볍게 한 잔씩 기울였다.
소주병을 딴 김민복이 샤킵에게 한 잔 따라 올리며 이게 한국에서 잘 팔리는 술이며 독하지 않아 마시기 좋다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작은 유리잔에 따라진 맑은 액체를 바라보던 샤킵이 가볍게 목으로 넘기니 부드러운 끝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나도 한잔 따라드리지.”
“그러면 저야 영광이지요.”
고개를 끄덕인 샤킵이 이번엔 자신이 병을 드렁 한 잔 따라주었다.
아직 고기는 익지도 않았지만 벌써 술잔이 오고가며 분위기가 달아 올라가기 시작하고 이었다.
이만석에게 대충 듣기는 했지만 이집트에서 생활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한 번씩 물어 보았다.
거기서는 저마다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래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자신은 예비역 출신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느니 하는 등 춘배나 이원종이 서로 침을 튀기며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술잔이 오고가고 한 잔이 두잔 되고, 두 잔이 세잔이 되면서 나중엔 폭탄주도 만들어 이만석에게 건네주기도 하면서 분위기가 한 참 물어 익어갔다.
“역시 누님이 따라주는 술이라 그런지 맛이 기가 막힙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니?”
마무리로 소주잔에 양주를 따라서 매주잔 안으로 침몰시킨 뒤 건네주는 차이링의 잔을 받아든 춘배가 눈을 부릅떴다.
“어허! 누님 저 춘뱁니다 춘배! 이 정도 폭탄주는 저에게는 갈증해소음료지요.”
그러고는 단번에 벌컥이며 잔을 비워버리는데 입가에 뭍은 거품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캬~ 죽인다! 누님도 한 잔 말아들입니까?”
“됐어 나는.”
“보니까 별로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처음 따라준 맥주 한 잔을 이제야 다 마셔가는 차이링을 보면서 춘배가 입맛을 다셨다.
“누님도 원래 말아먹고 그랬잖수?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맥주 한 잔을 깨작깨작 거리시우? 누님답지 않습니다.”
“누가 깨작거렸다고 그래? 오늘은 안 주인으로써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니까 그런 거지.”
순간 춘배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니?”
“누님 혹시...”
말끝을 흐리며 눈빛이 달라지는 춘배의 반응에 차이링은 자신이 임신한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나 싶었다.
“혹시 그날이우?”
빡!
“아야! 이 자식이 미쳤나? 왜 뒤통수를 치고 그래?!”
순간적으로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울림과 충격에 춘배가 손으로 문지르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반쯤 뺨이 빨개져 있던 이원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술이 됐나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대놓고 그날이 뭐냐 그날이?”
“그렇다고 뒷퉁수를 치는 게 어다 있어? 너도 한 대 맞아볼래?”
“정신 차리라고 한 대 친 거다. 아무리 네가 차이링 누님이라 친하다고 해도 그렇지 형님도 앞에 계시고 형수님들이랑 다른 애들도 있는데 그날이우?가 뭐냐 그날이우가?”
“아니 그러면 뭐라고 해야 돼? 마법에 걸린 날이우? 라고 해야 하냐?”
“아이구 멍청한 놈아...쯧쯧쯧......”
춘배의 말에 혀를 끌끌 찬 이원종이 한 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때는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뭐?”
“옛날에 한 참 선전했던 거. 날개달린 그거. 이름이...아, 그래. 위스펀가 뭔가 그거 있잖아. 그걸 이용해 돌려서 물어보면 되지. 오늘 위스퍼 사용하는 날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냐? 그날이우가 뭐냐 그날이우가?”
“아... 그런 거야?”
순간 뭔가 수긍했다는 듯 대답하는 춘배의 모습에 이원종이 그래서 넌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이 멍청한 놈아. 오늘 위스퍼 하는 날입니까? 하고 친절하게 말을 돌려서 하면 되지 그날이라고 말하면 차이링 누님이 얼마나 무안하겠냐? 앞으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될 때는 잘 기억해 뒀다가 그날이우, 라고 하지 말고 위스퍼 착용하는 날입니까 라고 말하면 부끄러울 것도 없고 얼마나 좋아? 생각을 해봐라 너보고 조루냐 라고 하면 기분 좋겠냐?”
“당연히 안 좋지.”
“오늘은 좀 민감한가봐요라고 그나마 남자의 입장에서 듣기가 괜찮잖아? 수치심도 안 느껴지고.”
“듣고 보니 그렇네?”
뒷머리를 긁적이는 춘배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그거랑 같은 거다. 오늘이 그날이우?라고 하면 차이링 누님도 기분이 안 좋지. 그러니까 앞으로 그날이우? 라고 하지 말고 위스퍼 착용하는 날입니까라고 센스있게 돌려서 말해. 안 그렇습니까 누...”
차이링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이원종은 순간 그대로 말을 멈추고 말았다.
“아, 아니 누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굳어 있는 차이링의 얼굴에 순간 이원종이 의아해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분우기도 뭔가 쌔하게 변해 있었다는 것을 느끼곤 몸을 돌려 현석을 바라보았다.
“야,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속삭이듯 묻는 이원종의 말에 현석이 한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님이나 춘배 형님이나 거기서 거깁니다.”
“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원종이가 춘배를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탁.
그때 양주잔을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새한 분위기를 깨고 작게 들려왔다.
“아, 아니... 갑자기 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오, 형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만석을 보고 뭔가 불길함을 느낀 이원종이 말을 더듬었다.
“원종아.”
“예, 예 형님.”
“술 도 좀 들어갔겠다, 슬슬 담배가 좀 땡기지않아? 난 좀 땡기는데.”
“아니 전...”
“한 대 피우러 가자.”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던 이만석이 갑자기 멈추더니 춘배를 바라보았다.
“춘배 너도 한 대 줄 테니까 따라나와.”
“전 담배 끊었...”
“가자.”
“예.”
자리에서 일어난 춘배와 이원종이 말없이 이만석의 뒤를 따라 현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간 지 얼마 디지 않았을 때 뭔가 둔탁한 소리가 밖에서 작게 들려왔다.
중간에 들려오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는 물론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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