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1화 〉 671화 집들이
* * *
“제이니 언니만 있는 게 아니잖아. 전에 보았던 그 언니들은 함께 살고 있잖아.”
지금 여기서 마음을 약하게 먹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랠때 일 수록 확실하게 해야한다고 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한 세린이 곧장 폰을 꺼내어 이만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신호를 기다리며 잠시 정차해 있던 이만석은 폰에서 전화가 울리자 확인을 했다.
‘세린이로군.’
걸려온 이름을 보고는 그대로 전화를 연결했다.
[오빠 저에요.]
받자마자 바로 세린의 음성이 들렸다.
“잘 지냈어?”
[네... 오빠는요?]
“나야 늘 똑같지. 그보다 밤늦게까지 cf찍었다며.”
[제이니 언니에게 들었어요?]
“제이니?”
이만석은 세린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들려오자 저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제이니 언니하고 만난 거 알고 있어요.]
세린에게서 제이니가 거론 되어 놀랐던 이만석은 곧 그녀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얘기를 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니는 자신과 세린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얘기 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세린이 알고 있다는 게 전혀 놀랄일은 아니었다.
“그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면 이제 하지 않아도 돼.”
[네?]
“어디까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제이니하고는 더 이상 관계 발전은 없을 테니까.”
이만석은 세린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
“다음 주에 쉬어?”
폰에서 세린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자 이만석이 화제를 돌렸다.
[다음 주에요?]
“쉬면 시간 내서 만나자.”
[오빠는 바쁘지 않아요?]
“안 만 난지 좀 됐잖아. 바빠도 시간 내야지.”
[......]
이번에도 세린에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이니에 대해서 혹시 걱정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 이제 특별한 일은 없을 테니까.”
[네, 네...]
뭔가 긴장 하면서도 떨리는 듯 말을 더듬는 세린의 음성이 들려온다.
“휴일인데 푹 쉬어.”
[오빠도 조심해서 돌아가요.]
그렇게 통화를 끝낸 이만석이 유유히 집으로 향했다.
“후아...”
전화 통화를 끝낸 세린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떨려서 혼났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전화를 했는데 막상 목소리가 들리니 상당히 긴장이 되었던 세린이었다.
긴장해서 약하게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놓고 제이니를 거론 했는데 마치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해왔다.
그래서 세린은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더욱더 당황스러워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그럼 제이니 언니에게 마음이 없다는 얘기인 걸까?”
세린은 이만석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아라고 해야하나...”
뭔가 모르게 안도의 마음이 느껴졌다.
혹여나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다면 이보다 더 낭패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떨 결에 데이트 약속도 잡아버렸네.”
이어서 다음 주에 이만석을 만난 걸 생각하니 묘한 설렘이 느껴지는 세린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십니까?”
뒷짐을 진 채 창밖을 올려다보는 김현수 대통령을 향해 종원찬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그 친구 생각을 하고 있었네.”
“서민준 말씀입니까?”
“과연 북에 가서 무엇을 하고 왔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대통령께서 원하시면 제가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은 김현수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알아서 연락을 하겠지.”
이쪽에서 연락을 하지 않아도 이만석 쪽에서 해올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 친구가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정말로 북에 다녀왔을지 실감이 나지 않아...’
이만석이 특별한 존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여권과 비자만 있으면 갈 수 있는 일반적인 외국도 아니고 어떤 나라의 정부 관계자도 함부로 갈 수 없는 땅이 바로 북한이었다.
물론 이만석이 거기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은 잘 와 닿지가 않았다.
‘일부러 그 날짜를 골라서 간 것일까.’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만석이 북으로 간 날짜가 바로 최고인민회의가 개최한 날이었고 그 날은 김종일이 병색을 털어내고 오랜만에 회의에 참석을 한 날이었다.
우연이라 생각 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김현수 대통령은 이만석이 그날을 맞춰서 간 것이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연락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소식을 가져 왔으면 좋겠어.’
일요일이고 오늘은 특별한 업무가 없는 날이었지만 김현수 대통령은 마음은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사실 지금같은 상황에 마음이 편하다는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라 볼 수가 있었다.
그날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인천국제공항의 게이트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특히 앞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크다는 말이 나오는데 187이 넘어가는 정장 차림의 거구의 남자와 그 못지않은 덩치를 지닌 남자가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보면 그저 덩치만 큰 것이지 그렇게 살은 찐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허리는 나름 덩치에 비해서 슬림 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비만과는 전혀 다른 체형들이었다.
그 중에 곰 상을 한 남자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크흐흐흐흐흐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밟아 보는 한국 땅이냐.
“그러게 말이다. 햐~ 여긴 우리가 갈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구만.”
“한 1년 됐지?”
“아마도 그럴 거야.”
“역시 고국이 좋구만.”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그을린 피부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갈색의 눈동자의 외국인이 영어로 입을 열었다.
“여기가 한국이야?”
“그래 한국이다.”
“그렇단 말이지?”
한국이 아니라면 공항에 내렸을 리 없을 테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봐도 한국인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호기심을 드러내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 저 여자 예쁘게 생겼네?”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단발머리에 여자 한 명에게 눈길이 갔는데 갸름한 턱선에 둥그런 눈동자가 눈길이 가는 그런 여인이었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어 늘씬한 다리와 엉덩이가 절로 눈길에 사로잡혔다.
“저 여자한테 마음이가냐?”
그에 곰 상의 남자가 실실 쪼개며 시선을 떼지 못 하는 비니를 쓴 사내에게 말했다.
“가서 말이라도 걸어 보든가.”
“그, 그럴까?”
“남자는 용기지.”
그에 곰 상의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부추기듯 말하자 용기가 생겼는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좀 들고 있어봐.”
여행용캐리어를 맡긴 사내가 서둘러 그 무리의 여자들에게 달려갔다.
“저 자식...진짜 갔다.”
“한국어도 잘 못 하는데 잘 될까?”
“외모를 봐라. 잘 도 먹히겠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여자들을 불러 멈춰 새운 사내가 웃음을 지으며 뭐라 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중간에 몸짓을 하며 하고 싶은 말도 표현하고 하는 것 같은데 잠시 후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다시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만 봐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짐작이 되었다.
“딱 봐도 까였지?”
“크흐흐흐흐... 저걸 보고도 모르겠냐?”
“하하하!”
“형님들은 데르말로를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습니까?”
그에 한 쪽에 서있던 훈남 소리 꾀나 들을 것 같은 준수한 외모의 청년 한 명이 떡대 두 사람을 보며 핀잔을 주었다.
“우리가 가라고 했냐?”
“그냥 용기 좀 내라 했을 뿐이지 가라하진 않았다.”
“말이라도 걸어보라면서요.”
“그냥 말이라도 걸어보라고 한 거지. 가라고 한 게 아니지.”
“그게 그 말이잖습니까?”
“뭐가 그 말이야? 다르구만.”
한 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청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러났다.
“뭐냐 그 눈빛은?”
“햐~ 현석이 너 많이 컸네?”
“그 말만 이제 한 100번은 넘게 들은 것 같습니다.”
그때 이쪽으로 걸어온 사내, 아니 데르말로가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야, 남자친구 있다는데?”
그에 곰 상의 남자 춘배가 데르말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까였다고 기죽지 말고 힘내라.”
“이걸로 뭘 기가 죽어?”
눈살을 찌푸리는 데르말로를 향해 이원종이 조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고도 모르겠어? 남자친구가 있는게 아니라 네가 부담스러워 있다고 거짓말 한 거지.”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는거 아닙니까?”
“그건 희망사항이고.”
“때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거다.”
말하면서 실실 쪼개는 춘배와 이원종을 보면서 데르말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개자식들... 나 놀리려고 부추긴 거지?”
“부추기긴 다 잘 대라고 한 건데.”
“우리 못 믿냐?”
“믿을 놈을 믿어야지.”
순간 데르말로가 그대로 춘배를 향해 발을 까버렸다.
“어이쿠~!”
허나 덩치와 다르게 젭싸게 옆으로 피해버리는 행동에 데르말로의 발은 허공만 가로질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