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1화 〉 661화 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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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사를 받아보니 정말로 임신이라고 하는 거 있지?”
생각지도 못한 임신에 놀랐던 차이링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제대로 검사에 임했다.
그 결과는 역시나 앞서 진료를 받았던 소화기 내과의사의 진단 대로 임신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초음파 검사를 해서 모니터 화면으로 짚어주는데 보는데도 신기했어.”
이만석은 차이링 얘기를 들으면서 내심 놀랐던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켜나갔다.
“그러니까 결국엔 임신이다 이 말이지?”
차이링의 설명은 그렇게 모든 검사를 끝마친 결과가 바로 임신했다는 사실이라는 얘기였다.
“그렇다니까~”
고개를 숙인 이만석의 시선이 차이링의 배로 향했다.
큰 변화 같은 것 없이 그녀의 몸은 여전히 늘씬하고 뱃살이라곤 차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평평했다.
옷을 입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차이링을 많이 안아왔고 봐왔던 이만석이서 옷태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었다.
5주차라고 하니까 아직 별 다른 티가 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란이와 지나가 잠을 설쳤던 게 차이링 너 때문이라고 한 게 임신 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런 거군.”
“응, 어젯밤에 두 사람 다 알게 되었어.”
“네가 알려준 거야?”
“어차피 알게 될 테니까 숨기지 않으려 했는데 지나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거 같아.”
“지나가?”
“그렇다니까. 내가 음식냄새만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그렇지 않으면 괜찮아 하니까 아무래도 짐작을 하였던 것 같아.”
“두 사람 다 충격이 컸겠군.”
“그러니까 잠을 설쳤겠지?”
임신사실을 알았다면 밤잠을 설쳤다는 게 이해는 갔다.
두 사람 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차이링이 먼저 아이를 가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 게 틀림이 없었다.
‘나조차도 놀랐으니 당연한 일인가.’
차이링이 아기를 가졌다는 것에 이만석도 놀라고 있었다.
그러니 지나와 하란이는 오죽하겠는가.
솔직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니까.
“남자아이인지 딸인지 언제 알 수 있다고 했어?”
“12주가 지나면 어느 정도 알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확실한건 15주가 지나야 알 수 있다고 말해줬어.”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보며 차이링이 다소곳하게 입을 열었다.
“만 저 볼래?”
“배 말이야?”
“응.”
잠시 동안 차이링을 바라보던 이만석이 고개를 숙여 배를 보았다.
‘저기에 내 아이가 자라고 있단 말이지.’
막상 차이링의 배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고 하니까 이만석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나가 그때 왜 그렇게 과감하게 행동했는지 알겠군.’
금요일 밤 조용히 방으로 찾아 들어왔던 지나의 그런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서 이만석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야 알 수가 있었다.
차이링이 임신을 했을 거라 짐작을 했다면 딴에는 불안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안에 사정해달라고 했었어.’
질외사정이 아닌 질 내 사정을 바라던 이유에 대해서 이제 확실해 졌다.
아기를 가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했지만 그 이면엔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런 행동 없이 가만히 배를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에게 차이링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아무것도 아니야. 만져 볼게.”
생각을 접은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차이링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느껴져?”
“아니.”
“역시 5주라서 별 느낌이 없겠지? 잠시만.”
웃음을 지으며 말한 차이링이 이만석의 손을 잠시 떼게 하더니 입고 있는 상의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절록한 허리에 누가 봐도 매끈한 복부가 그대로 눈앞에 드러났다.
“옷 위에 만지는 것보다 살결에 직접 닿는 것이 더 느낌이 있을 거야.”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이만석이 다시 차이링의 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역시나 옷 위에 만졌을 때처럼 별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차이링의 살결을 통해 그 너머에 자신의 아기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느낌은 색다르긴 했다.
차이링은 자시의 배를 쓰다듬는 이만석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리 아기 아빠의 손길이 느껴지니?”
배를 쓰다듬고 있는 손을 바라보던 차이링은 아가를 어우르고 타이르듯 나긋한 음성으로 작게 말했다.
‘아빠라...’
이만석은 차이링이 하는 말에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아빠의 손길이 느껴지느냐는 저 말이 정말로 자신을 지칭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부담스럽거나 싫은 것은 아닌데 막상 차이링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오니 기분이 말 그대로 이상했던 것이다.
잠시 동안 배를 쓰다듬던 이만석이 손을 다시 떼어내자 차이링이 걷어 올렸던 옷을 바로 했다.
“느낌이 어때?”
“옷 위에 만졌을 때보다는 다르긴 했어.”
“아직 5주라서 발을 굴리거나 그런 것은 느끼지 못 할 거야. 아직 배도 별다른 변화가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불러 오겠지?”
“그럴 거야.”
차이링이 다시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다.
그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차이링은 벌서 엄마가 다됐구나.’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차이링의 모습에서 이만석은 그녀가 한 여자가 아닌 한 자식에 엄마로써 비춰졌다.
자신이 아빠가 된 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었으나 차이링이 엄마가 된다는 것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당신 아기를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놀랐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기뻤어.”
이만석은 그 이유에 대해서 짐작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날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도 있지만 예전부터 생각 했었거든... 만약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가져 엄마가 된 다면 이 아기만큼은 누구보다도 사랑으로 보살피고 아껴줄 거라고.”
“......”
“부모에게 버림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잘 아니까.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내 자식에겐 그런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지가 않아.”
차이링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있었는지 이만석도 잘 알고 있어 그녀가 하는 저 말이 잘 와 닿았다.
“당신도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 마음 이해할거라 믿어.”
그 뿐만이 아니라 이만석 또한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씨달 렸고 그러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을 하였다.
그 뒤로 아버지와 결별을 하였고 이만석은 친척집을 전전하다 독립을 해서 혼자 살게 되었다.
‘아버지.’
이만석의 기억속에 있는 아버지는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고 취하지 않은 날도 무뚝뚝하게 대하며 별다른 관심도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머니 혼자서 이만석을 엎어 키웠다고 하는 게 맞는 얘기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당사자이자 가정폭력을 휘두른 상처뿐인 존재였다.
이만석이 차이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하란이와 지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란씨 충격이 컸나 봐요?”
“좀 그래요.”
지나는 하란이 자신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했지만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생각 이상으로 충격이 컸나보네.’
자신은 그래도 예상을 하고 있어서 받는 충격이 적었을지 몰라도 하란이는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이 여린 아가씨니까.’
어쩌면 이만석과 공식적으로 만나고 사귀어 여자 친구가 되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문에 받는 충격이 더 클 수가 있었다.
바람 핀다, 양다리 걸친다,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사라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대 먼저 임신을 했다는 것은 여자 친구라는 신분에서는 참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나보다 상처받기 쉬운 타입니까.’
새삼스레 하란이가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지나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엔 초조감이 커서 자신의 위주로 생각을 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안정시킨 뒤에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따지고 보면 커플반지 까지 끼고 있는 하란이가 충격이 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난 한 번 헤어졌다가 만났으니까.’
따지고 보면 자신은 이만석과 이미 한 번 헤어졌었다.
물론 다시 이만석과 이렇게 만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헤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결과가 어떻든 잘 못된 행동이었다.
그리고 헤어지려고 한 이유도 바로 눈앞에 있는 하란이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차이링이 임신이 했다는 것에 제일 큰 충격을 받는 것은 여자 친구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하란이가 더 클 것이 분명 했다.
“이미 짐작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괜찮아 보였는데 지나씨도 보니까 많이 충격을 받았나 봐요.”
“예상한 것과 사실이라고 듣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니까요.”
“그렇긴 하네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하란이었지만 금세 얼굴에 근심이 묻어 나왔다.
그런 하란이를 바라보던 지나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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