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9화 〉 659화 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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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훨씬 넘어 새벽1시가 다되어 가는 늦은 시각.
침대에 누워 뒤척이던 하란이 잠에 들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 안 와...”
크게 한 숨을 내쉬며 중얼거린 하란이 침대에서 일어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응접실로 나와 정수기가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싱크대 한 편에 엎어져 있는 유리컵을 들고 냉수 한 잔을 받아서 시원하게 들이킨 하란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식탁으로 이동해 의자를 꺼내어 몸을 앉혔다.
늦은 시간이라 조용해서 응접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의 시침소리만이 작게 들려올 뿐이었다.
‘언니가 아기를 가졌다니.’
아직도 하란이는 그 얘기에 대해서 찾아온 충격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속이 안 좋다고 해서 위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었는데 알고 보니 위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덧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잘 못 들었나 싶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로 놀랐다.
아니 충격이었다.
아기를 임신한다는 생각은 듣기전까지 전혀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오빠의 아기...’
이것이 진짜 현실인지 와 닿지가 않았다.
같이 살고 있고 이젠 많이 친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서로가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이만석이 일부일처의 법에 따라 이 중에 한 명을 택하는 그런 것에 대한 일은 은연중에 사라졌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이만석의 여자 친구는 자신이었으니 그에 대한 자부심은 가지고 있던 하란이었다.
헌데 차이링이 순식간에 이만석의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버렸다.
아기를 가졌으니 따지고 보면 한 걸음이 아니라 세 걸음 더 붙어 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그렇게 충격 받지 않아도 돼. 너희들 그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직도 그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잖아? 나야 그이의 아가를 가져서 좋긴 하지만 이걸로 특별대우를 바라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자신과 지나를 향해 차이링이 이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다고 충격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물론 하란이도 차이링이 말한 것처럼 이만석이 자신의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아주 심하게 특별대우를 한다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하란이도 이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도 않았고 임산부라면 기본적으로 큰일이 나지 않게 조심해야 했으니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차이링이 하란이 자신 보다 먼저 아기를 가졌다는 것에 있었다.
‘가져도 내가 먼저 가졌으면 했는데.’
만약 자신을 포함해서 셋 중에 아기를 가지게 된 다면 하란이는 그게 나였으면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달랐던 것이다.
‘오빠도 차이링 언니가 아기를 가졌다고 하면 좋아할까?’
일단 자신의 아기를 가졌다고 알게 된다면 놀라기는 할 것이다.
안 놀라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좋아 할지는 모르겠지만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링 또한 이만석에게 그저 그런 여자가 아니었고 한 지붕에서 오픈 마인드로 같이 살고 있으니 숨길 것도 없었다.
그러니 차이링이 이렇게 하란이와 지나에게 순순히 말한 것 아니겠는가.
다행이 아픈 것이 아니라 축하해줄 일이긴 한데 그보다는 사실 충격이 더 컸다.
그리고 여기,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은 하란이 뿐만이 아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사실로 드러나니까 충격이 크긴 하다...’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고 있는 것은 지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임덧이 아닐까 의심을 했었다.
그게 사실로 드러난것일 뿐이다.
‘하란씨는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 되면 차이링 언니보다 내가 뒤처지게 되잖아.’
차이링이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이만석의 성격을 보면 그걸로 하란이와의 사이가 조금이라도 멀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나가 보았던 이만석은 하란이에 대해선 좀 더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차이링이 아기를 가진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그걸로 공식적으로 두 사람 만의 커플반지를 끼고 있는 상황인데 그것만 보아도 바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이링이 아기를 가진 것에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지나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가지기 전 부터는 자신과 차이링은 같은 선상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이젠 그렇지가 않게 되었다.
그 사람의 아이를 가졌으니 그녀가 더 자신보다 앞서갔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하란이보다 충격을 좀 덜 받긴 했지만 사실 초조감을 크게 느끼는 것은 지나였다.
‘이걸 보면 나도 그렇게 착한 여자는 못 되는구나.’
이제 한 가족이라 해도 될 만큼 상당히 가까워진 사이였지만 아기를 가진 것에 축하는 해주지 못 할 만정 이렇게 초조감과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니 스스로에 대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초조감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지나가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마음도 먹었는데 솔직히 여러 감정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이만석은 다시 김종일과 만남을 가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확인 차 이렇게 잠깐 만남을가지는 것이다.
평양시 중구역 남산동에 위치한 국가방위위원회관에 마련된 집무실로 향했다.
김이성이 주석으로 자리 했던 때에 타개하고 주석궁을 무덤으로 개조를 하여 그곳은 사용하지 않고 국가방위위원회관에 위원장 집무실을 마련했던 것이다.
마주 앉아 있는 이만석을 바라보는 김종일의 표정은 여전히 편치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완전히 저당 잡힌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생이 얼마 남지 않아 예전보다 권력에 대한 미련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을 좋게 받아드린다면 그건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어제 나누었던 얘기대로 한 치의 실 수 없이 잘 이행해야 할 거야.”
“......”
“왜 대답이 없지.”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김종일에게 이만석이 다시 되물었다.
“알겠...네.”
그제야 김종일의 입이 열리며 그리하겠다는 대답을 해왔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숙청작업을 끝냈으면 좋겠군. 당신이라면 가능 하겠지.”
김종일이 쥐고 있는 북한 권력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지금은 핵심 수뇌부들 전체가 김종일을 도와 줄 테니 늦어도 일주일이면 일이 끝날 것이다.
그 후로도 간단히 확인 차 어제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서 다시 얘기를 나눈 후 이만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안나에게로 향했다.
“그럼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김종일은 이만석이 어떻게 38선을 넘어 왔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그래서 자연스레 궁금함이 얼굴에 드러났다.
“좋은 뉴스 기대하겠어.”
김종일이 드러내는 호기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만석이지만 그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는 않았다.
워프를 하여 사라지는 모습을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답변이 되기 때문이다.
“헉!”
순간 갑자기 옅은 산들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온다 싶은 순간 눈앞에서 이만석과 안나의 몸이 흐릿해 지더니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로 순간이동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에 김종일은 이것을 두고 순간이동이라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도 갑자기 나타나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지금 똑바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을 하니 뒷골이 서늘했다.
마치 이 자리에 없었다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만석과 안나의 흔적은 없었다.
‘저 자는 정말 사람이 아닌 것 같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종일 또한 이만석이 점점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안나는 순식간에 시야가 뿌옇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배경이 숲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련만 전혀 그렇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까 붙어있어.”
이만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안나가 손을 뻗어 이만석의 품에 안기었다.
원래라면 손을 잡는 정도겠지만 이젠 스스럼없이 그의 품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그녀였다.
그 행동에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손을 들어 안나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천천히 이만속의 몸속에 있는 서클의 고리들이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프 할 때와는 다르게 산들 바람이 아닌 돌풍이 두 사람 주변을 휘몰아 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순식간에 하얀 빛으로 감싸이더니 잠시 후 몸이 붕 떠오르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 다시 돌아온 시야엔 여전히 숲속이었지만 아까 와는 나무들이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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