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4화 〉 644화 대업
* * *
‘아직은 확실 한 게 아니야.’
소화기내과 의사는 임신이 맞는 것 같다고 했으나 확실한 것은 산부인과로 가서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차이링은 곧장 산부인과가 몇 층에 있는지 물어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내려서 접수처에 접수를 한 후 호명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가슴이 많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진짜..일까?’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가슴이 너무나 떨리는 그녀였다.
원래의 그녀라면 어떤 일에서든 잘 흔들리지 않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그녀라고 해도 이만석과 관계 된 일이라고 하면 사실 또 얘기가 달라지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이건 정말로 큰 사건이었다.
‘그럼 그동안 음식냄새만 맡아도 속이 좋지 않았던 것이 입덧이었나?’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고 음식냄새만 맡으면 울렁거리니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음식이나 그런 것이 아니면 또 평소처럼 괜찮았던 것이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랫배를 쓰다듬는 차이링의 눈동자에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이 임신이라니.
이건 전혀 생각하지도, 그렇게 예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그 사람의 아이가 여기서 자라고 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차이링씨?”
그때 진료실의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나와 차이링을 호명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차이링이 안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산부인과라 그런지 30대 후반의 젊은 여의사가 사람 좋은 얼굴로 차이링을 맞아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속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임신인 것 같다고 해서요.”
“그래서 검사를 밭으로 온 것이군요?”
“네, 맞아요.”
알겠다는 듯 말한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이링을 대리고 검진실로 향했다.
거기서 임신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 검사를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검사를 하기 전에 차이링의 매끈한 복부에 젤을 바르고 그렇게 검사기를 대고 화면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의사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 이거 보이세요?”
“네?”
화면속에 회색과 검은색의 흐릿한 그림이 보이기는 했는데 뭐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 작은 동그란 거 보이시죠?”
그러자 여의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른쪽 아랫 보분에 동그런 뭔가를 가리켰다.
“이게 바로 아기집이에요.”
“아기집이요?”
“아직 임신초기라서 태아가 형성되고 있는 과정인데 보니까 확실하네요.”
순간 차이링이 놀란 표정으로 양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런 차이링의 모습에 간호사는 물론이고 여의사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정말로 제가... 임신을 한 건가요?
“네... 축하드려요.”
“......”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차이링의 모습에 여의사가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많이 놀라셨나보네요?”
“네...”
“보통은 대개 그런 반응을 보여요.”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여의사가 차이링이 진정이 될 때까지 잠시 동안 기다려 주었다.
“제가 그럼 진짜 엄마가 된다는 소리인가요?”
“네, 맞아요.”
그녀로써는 너무 놀라운 얘기라 이게 현실인지 와 닿지가 않았다.
“여기에 혼자 오셨어요?”
“네...”
“따로 얘기는 하고 왔나요?”
“속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녀오는 걸로만 알고 있어요.”
“그럼 환자분처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런 셈이에요...”
“돌아가서 놀래 켜줘 봐요. 아빠가 됐다고 하면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화면속의 저 작은 것이 태아라니 차이링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한잔 하겠어?”
이만석이 양주 한 병을 꺼내어 들더니 닫혀 뚜껑을 열어 마셨다.
입속에 들어오자마자 양주 특유의 맛이 퍼져나갔다.
“아니.”
이만석의 물음에 안나가 괜찮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거기에 서있지 말고 여기 앉아.”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안나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그냐가 몸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품에서 담배 갑을 꺼내어 입에 한 개비를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쉰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점심때 까지는 시간 남았으니까 침실에 가서 잠깐 눈 좀 붙여둬.”
“.....”
그녀에게선 별다른 얘기가 없었지만 이만석은 더 이상 물어 보지 않고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켰다.
“그래도 고급호텔이라고 좋은 거 썼네.”
하지만 채널을 돌려보고는 금세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오는 채널도 몇 개 없군.”
북한 공영방송 말고 골라서 볼 수 있는 영화 채널 말고는 딱히 다른 채널은 나오지도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북한에서 보여주는 체제선전방송이나 뉴스 말고 다른 것을 장마담이나 이런 대서 비밀리에 구입했다 보면 불법이라 이정도만 해도 양호한 편이었다.
외국 영화를 구해서 보다 잡히면 엄벌에 처해 질 수 있는 게 북한이라 호텔에서 이렇게 외국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의외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일반인이 여기서 묵을 수는 없으니 배려를 한 것일지도 몰랐다.
티비를 다시 꺼버린 그 때 한 작은 원형 테이블에 놓여 있는 유선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걸음을 옮겨 전화를 받으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수복입네다.]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자신을 이곳까지 안내해주었던 강수복이었다.
[혹시 적적하시기라도 하면은 삼삼한 애로 골라다가 올려드리려 하는데 어떻습네까?]
“예뻐?”
[실망시켜드리지 않은 애로 골라서 올려드리갔습네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고 시간은 많으니 이만석은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올려봐.”
[예!]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소파로 돌아온 이만석이 양주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안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전화야?”
“안내를 해주었던 그 자가 삼삼한 애로 올려보내주겠다고 하더군.”
“삼삼한 애?”
“여자 말이야. 아마도 기쁨조인거 같은데.”
“......”
“안 그래도 볼 것도 없는 참에 잘 됐지.”
말로만 듣던 기쁨조라면 충분히 미녀들로 선발해서 뽑았을 테니 충분히 기대를 해볼 만 할 것이다.
“보내라고 했어?”
“올려봐라고 하는 거, 들었잖아.”
바로 앞에서 전화 통화를 했으니 물론 들었다.
“왜 싫어?”
“아니.”
그렇게 말한 안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침실 쓸 거야?”
“여기서 만나도록 하지.”
“알았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침실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문을 닫아버린다.
“좀 쌀쌀 맞은 것 같은데.”
원래부터 그녀는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성격이고 차가운 성격이라 착각 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양주의 양이 반쯤 비워졌을 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큰 소리로 이만석이 말하자 닫혀 있던 양쪽 문이 중에 한 쪽이 열리더니 북한에선 큰 키인 160정도의 여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강수복이가 보냈나?”
“그렇습네다!”
절제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짧게 자른 커트머리에 또렷한 눈매에 갸름한 턱선에 미인 형이었다.
눈동자는 짙었고 살짝 솟아 있는 콧대는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확실히 예쁜 얼굴이었다.
헌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기쁨조를 올려줄 줄 알았는데.”
올라온 여자는 아무리 봐도 기쁨조에 속하는 그런 여자로는 보이지가 않았다.
“기쁨조는 지도자 동지에게 편 속되어 있어 아무리 강수복 동지라고 해도 지도자 동지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할 수 없습네다.”
역시나 생각이 맞았다.
“그래서 내가 온 건가?”
“아닙네다.”
“그것도 아니라고?”
“기쁨조는 아니지만 접대를 위한 또 다른 여자들은 따로 준비되어 있는데 제가 직접 강수복 동지에게 말씀을 드려 자원했습네다.”
“스스로 올라오겠다고 말했다고?”
“그렇습네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기합이 넘쳤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계급이 어떻게 되지?”
“대위입네다.”
대위라는 말에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민군 군복차림의 그녀는 여군이라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여군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몸매가 늘씬하고 쫙 빠진 것이 괜찮았다.
“혹시 제가 마음에 아드십네까?”
아무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만석의 시선에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가까이 오도록.”
“예!”
이만석의 말에 그녀가 걸음을 옮겨 소파로 다가갔다.
소파 앞으로 걸음을 옮겨 삼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선 그녀는 긴장 한 얼굴 부동자세로 다시 멈추어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