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3화 〉 643화 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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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층 이상 올라가는 것인지 아까 얘기를 한 것대로 3번정도 엘리베이터를 갈아탔다.
높이가 높이이다 보니 평양직할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넘어 시야가 확 트여 다른 곳들도 눈에 들어왔는데 조금만 멀리 넘어가도 농경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개발이 된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과 확연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렇게 97층에 당도 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여기서 내리시면 됩네다.”
지배인이 먼저 내리고 그 뒤를 따라 이만석과 안나, 그리고 강수복이 보좌를 하듯 따라 붙었다.
이집트에서 머물었던 웨스턴나일호텔과 마찬가지로 천장엔 샹들리에의 형식의 전등이 달려 있었고 바닥에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길게 뻗은 복도의 양 옆엔 방과 호실의 문패가 적혀 있었는데 그렇게 쭉 뻗어 걸어 들어간 지배인이 안쪽의 양쪽 문을 열고 들어서는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여기가 바로 저희 류경호텔의 특별실입네다.”
이만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수복이 눈치를 주었고 지배인이 조심스럽게 양쪽 손잡이를 잡아 문을 밀어 젖혔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30평도 넘어 보이는 넓은 응접실고 멋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탁자와 한 편의 찬잔엔 양주들과 와인 등 술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올 것 같은 안쪽의 자리에 최신식 텔레비전과 소파 그리고 그 사이로 테이블이 자리해 있었다.
‘나쁘진 않군.’
생각 외로 갖추어 져 있을 것은 모두 갖추어 있는데다 시설만 놓고 보면 웨스턴나일에서 머물렀던 스위트룸보다 더 고급스럽고 넓어보였다.
‘특별실이라고하니 신경을 많이 썼겠지.’
침실은 왼쪽에 있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되고 맞은편 끝에 두 번째 문이 욕실입네다.
침실 쪽에서도 욕실이 또 하나 있으니 목욕을 하고 싶으시면 그 중에 한 군대를 골라서 들어가시면 됩네다.“
이만서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강수복이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십네까?”
“나쁘지는 않아.”
응접실을 둘러본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채널은 북한에서 보여주는 것만 나오나?”
“지금은 그렇습네다. 따로 영화 채널이 있어 중국이나 미국에서 만든 영화를 보고 싶으면 골라서 볼 수가 있습네다. ”
“미국 영화를 보여준다고?”
의외의 말이라 이만석이 이채를 띠었다.
“이곳은 특별실이라서 편의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습네다. 안 그런가?”
“그렇습네다!”
강수복의 물음에 지배인이 힘차게 대답했다.
“식사는 룸 서비스로 받도록하지.”
“룸 서비스?”
강수복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식당에 가지 않고 여기서 해결하겠다는 얘기야.”
“아... 그 말씀이였습네까?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사글사글하게 웃는 강수복을 보며 지배인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인민군원수인 김종일이 아닌 다른 이에게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앞에 있는 이 사람이 김종일 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내 목숨은 끝이갔어.’
강수복만 해도 목숨이 왔다갔다할 판인데 그런 그가 이렇게 깍듯이 모신다는 것은 마치 김종일을 대하듯 행동거지를 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나가봐.”
물러가라는 듯 이만석이 대답을 하자 지배인이 최대한 정중히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은 저기에 있는 전화기를 들고 1번을 누르시면 됩네다.”
“그러도록 하지.”
“편히 쉬시지요.”
“그럼 물러가 보갔습네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물러나자 이만석은 안나와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어때?”
이만석은 안나에게 물어보았다.
“뭐가 말이야?”
그러자 안나가 반대로 물었다.
“여기 말이야.”
당연히 이만석은 이 호텔에 대해서 물은거였다.
“호텔치고 나쁘지는 않아.”
안나의 무미건조한 대답이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이가 높이인지라 창문 밖의 풍경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럼 곧장 병원으로 갑니까?”
“응...”
“병원으로 돌려.”
“아겠습니다 형님.”
차이링의 대답에 김민복이 곧장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말하자 차량의 반향을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로 무슨 병이라도 걸렸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아랫배를 쓰다듬는 차이링이 속으로 좀 걱정이 되는 듯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이 다 되도록 속이 낫지를 않으니 아무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녀라도 좀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병원에 가보라 해서 이렇게 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막상 가게 되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이면 나을 거라 생각했던 속이 며칠이 지나도 그렇지가 않으니 걱정스러운건 당연한 일이었다.
혹여나 큰 병이라도 걸렸으면 어쩌하는 불안감은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는 걸 의외로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건강하다 생각했는데 건강검진에서 큰병이라도 들어나면 그것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차이링은 증상이 있어서 가는거라 다른거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것도 맞았다.
그렇게 한 참을 달려 대학병원에 도착한 차이링은 애들에게 기다리라 말하고는 내려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김민복이 따라 들어갔다고 했지만 차이링이 혼자서 가겠다고 해서 함께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접수처에 접수를 한 후 자신을 부를 때 까지 기다리다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과로 들어가 검사를 받았다.
증상을 말하고 위염이 있는 지 등 시키는 대로 검진을 받고 다시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막상 검진을 받으니 더 걱정이 되었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별거 아니라고 했다가 그래도 막상 이렇게 병원에 와서 검진을 받게 되면 누구나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하는 정기검진은 물론 병원에 가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병이나 진단을 받게 될 까봐 걱정이 되어서 많이 아프거나 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차이링은 긴장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녀도 생각지도 못 했던 큰 병이나 다른 병에 걸린 것에 대해서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다시 간호사가 자신을 호명 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던 차이링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소화기내과로 향했다.
10여분이라는 생각 이상으로 꾀나 오래 기다렸는데 혹시나 다른 뭔가가 발견 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흰 가운 차림의 의사가 앉아서 컴퓨터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간호사의 말대로 마주보는 자리로 이동해 몸을 앉히자 의사가 차이링을 바라보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다는 듯 대답하는 차이링을 향해 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사 결과를 보았는데... 이게 아무래도 좀 이상해서 살펴보느라 늦었습니다.”
“이상하다니요?”
“위 내시경에 검사의 소견을 봐도ㅛ 특별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네?”
“검사결과를 보면 위염이나 장 쪽으로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제가 속이 불편 한 거죠?”
위나 장에 이상이 없다는 얘기에 차이링이 의문을 표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속이 안 좋다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차이링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도 충분히 의아할만 한 일이다.
“설마 신경성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자신의 속이 이렇게 좋지 않은 것이 신경성과민이라고 진단을 내릴까봐 물어보았다.
“아닙니다.”
차이리의 말에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요?”
잠시 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의사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검사결과를 말씀드리면 몸이 아픈 게 아닙니다.”
“네?”
의아한 표정으로 물음을 던지는 그녀를 향해 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축하를 드려야겠네요.”
“축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임신하셨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차이링은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 저도 모르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환자분이 아픈 게 아니라 어머님이 되신다는 겁니다.”
“제가 엄마가 된다고요?”
“산부인과를 가서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제 소견으로는 임신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라 차이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검진결과를 듣고 문을 연 후에 밖으로 나온 차이링은 한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내가... 엄마가 된다고?’
믿기지 않는 얘기에 차이링이 한 동안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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