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4화 〉 624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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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려 곧바로 확인을 하니 거기엔 짤막한 답장이 적혀 있었다.
저 말을 보면 지금도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늦게 출발 했나보네?”
지금쯤이면 서울에 올라와 집에 갔을 줄 알았는데 보니까 생각보다 늦게 출발을 한 것 같았다. 2박3일도 아니고 1박2일로 갔으니 좀더 놀다오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여서 제이니는 그러려니 하고 웃어 넘겼다.
그렇게 답장을 보낸 후 화면을 껐다.
“누구?”
간단히 문자를 주고받는 이만석을 보면서 안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이니.”
“제이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잠시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던 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이니가 뭐하는 여자지?”
“로즈걸스.”
그 후에 다시금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안나가 이만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왜 너한테 문자를 보네?”
“나한테 관심 있으니까.”
안나의 물음에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을 해준 이만석이 갑가지 쓴웃음을 지었다.
“너답지 않게 질문을 많이 하는군.”
“......”
“신경 쓰여?”
대답이 없는 안나를 향해 이만석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아니.”
“그런데 왜 물어봐?”
“......”
이번에도 대답이 없는 그녀의 반응에 이만석이 이젠 이빨을 보이며 작게 웃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그 웃음 기분 나빠.”
그런 이만석의 웃음이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허나 그럼에도 이만석의 웃음은 지워지질 않았다.
그 후로 서울에 들어서 집에 도착 할 때까지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만석 자체가 그렇게 말을 주저리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안나 역시 차가운 분위기와 어울리듯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저택에 도착 할 때까지 잔잔한 음악이 깔린 상태로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에 편안하게 올라왔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군.”
별다른 대화가 없다보니 운전에 집중 할 수 있었고 상황에 맞춰 액셀을 밟아 시원하게 달리다보니 생각보다 집에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서울까지 오는데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집에 도착하고 차를 정차시키고 나서야 30분정도 소요 됐을 정도니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서울에서도 운이 좋게도 상당히 수월하게 온 편이었다.
먼저 조수석에서 내리는 안나를 따라 시동을 끄고 같이 내려선 이만석이 현관 쪽으로 향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과 응접실의 불을 먼저 켰다.
“목욕물 좀 받아 줄 수 있겠어?”
안방으로 향하기 전 이만석이 대뜸 안나에게 목욕물 좀 받아 달라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이만석이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안방으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켠 이만석은 지갑과 차키, 그리고 담배를 한 쪽에 놔둔 후 입고 있는 옷을 벗었다.
‘안 받아 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거절 할 것을 예상하고 던진 말이었는데 의외로 안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모습에 이만석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이만석이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안 안나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물이 차오르는 욕조를 보면서 안나는 자신이 욕조에 물을 채워주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 의문을 느꼈다.
원래 그녀의 성격이라면 단박에 거절을 하는 것이 맞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욕조에 물을 채워 달라는 말에 거절은커녕 별 거부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이 자리에 와 있으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물론 욕조에 물을 채워 준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것도 없는 일이다.
부탁 정도는 할 수도 있는 일이고 들어준다고 해서 이상 할 것도 없다.
어차피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그 정도도 못 해줄게 어디 있단 말인가.
허나 안나가 느끼는 의문은 이것 하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정신이 많이 해이해 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너무 한국에서 편하게 지냈기에 그런가 싶어 이만석에게 상대를 해달라 한 것이지만 거의 반죽음이 되도록 부상을 입고 살아난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니 본인이 생각해도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르겠어.’
물이 차오르고 있는 욕조를 보면서 생각을 해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서 좀 더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만 날 뿐이었다.
어느 정도 물이 다 차오르고 수도꼭지를 잠근 안나가 몸을 돌려 샤워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자 이만석이 팬티 차림으로 응접실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물은?”
“다 채워놨어.”
“고맙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나에게 웃음을 지어준 이만석이 그렇게 샤워실로 들어섰다.
욕조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수증기를 보니 상당히 뜨거워 보였다.
그냥 뜨거운 물만 받은 모양이군.’
이정도만 해도 감사한 일이니 이만석은 가볍게 넘어갔다.
쏴아아!
샤워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로 간단하게 몸을 씻겨낸 후 다시 잠그고 나서 욕조로 향했다.
손을 넣어 온도를 확인해 보고는 찬물을 틀어 조절을 한 후에 들어갔다.
“좋구만...”
가슴어리까지 몸을 담그고 욕조에 머리를 기댄 이만석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탕에 들어가기 전에 테라스에서 담배 한 대를 피며 지나에게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을 전화를 해보니 좀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가 운전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니 하란이가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급하게 오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한 뒤 전화를 끊은 이만석이 탁자에 폰하고 담배 갑을 놔둔 후 샤워실로 곧장 향한 것이다.
탕에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나오면 도착했을 테니 그때 가서 무거운 짐을 옮기면 될 일이었다.
이만석이 그렇게 탕에 들어가 있는 동안 안나는 주방으로 향해 냉 수 한 컵을 받아 마시고 컵을 씻은 후 엎어두고 있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다사 거실로 나오는데 응접실 쪽에서 작게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응접실 쪽을 바라본 안나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지나치려다 다시 멈칫했다.
그리곤 무슨 생각인 것인지 걸음을 옮겨 응접실 쪽으로 향했다.
위이잉~!
그때까지도 쉬지 않고 울리는 진동소리에 탁자에 놓여 있는 이만석의 폰을 들어 확인을 해보니 제이니라고 적혀 있었다.
잠시 동안 폰을 바라보던 안나가 계속해서 진동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요? 아직도 서울 아니에요?]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대자마자 제이니의 투정어린 음성이 안나에게 들려왔다.
“제이니?”
[오빠가 아니네? 누구세요?]
안나가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자 폰 너머에서 놀란 제이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군 진 알 필요 없어.”
[네? 그보다 당신 진짜 누구에요? 혹시 지나라는 그 언니에요?]
“그 사람에겐 이미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으니까 사적인 감정으로 전화하지 마.”
[아니 내가 사적인 감정으로 전화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보다 당신 누구...]
거기까지 말한 안나가 그대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뭐야? 지금 전화 끊은 거야?”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으로 폰을 바라보던 제이니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허나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더 이상 받지를 않았다.
“나참... 어이가 없네?”
종료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끝낸 제이니가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느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게 어디 있어? 아무리 여자친구라도 그렇지.”
내심 불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던 제이니는 방금 전의 통화로 계속해서 궁시렁 거리며 불평을 늘어놓다 말고 갑자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떠올리고는 의문을 느꼈다.
“가만... 지나라는 그 여자가 맞나? 분명히 좋아하는 여자들이라고 했는데.”
처음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린 전화에 내심 불쾌했던 제이니였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의 내용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여자친구면 여자친구지 좋아하는 여자들이라는 말은 뭐야?”
그 사람에게 이미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으니까 사적인 감정으로 전화하지 말라는 그 말이 상당히 의아스러웠다.
“지나라는 그 여자가 아닌 거 같은데...”
그 사람에게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으니 사적인 감정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뜻은 곧 지인이나 삼자의 입장으로써 말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 일이었으면 좋아하는 여자들이라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청도 이상했어.”
감정의 기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목소리였다.
좀 소름이 돋는 목청이라고 해야 하나, 제이니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도대체 뭐야?”
참으로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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