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7화 〉 597화 여름
* * *
“뭐가 말입니까.”
“저 이러는 거 처음이에요.”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 이러는 거 알면 아주 놀랄 거예요. 특히 팬들이.”
“당연하겠죠.”
“믿기지 않나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만석도 충분히 제이니의 말을 믿는다. 로즈걸스의 인기가 어느 정도 인데 그 중에 한 명인 제이니가 이런다는 것을 알면 놀라지 않겠는가. 세린이 팬들이 진짜 많다고 해도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하면 제이니 또한 인기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로즈걸스 전체의 인기가 다른 아이돌 그룹 보다 많다는 건 그만큼 개인들이 데리고 다니는 팬들도 많다는 증거였다.
다만 멤버들 사이에 그 숫자가 차이가 날 뿐인 거지 결국엔 제이니 또한 팬들이 많았다.
그러니 이렇게 좋아해준다는 건 팬들의 입장에서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여자 친구 때문인가요?”
이만석에게 지나라는 여자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남자가 자신을 가지고 놀리는 것일까.
분명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다면 맞는 거지 꼭 그렇지 않다는 건 뭐라는 말인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제이니는 질투심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자 친구가 아니라도 좋아요.”
“예?”
“그러니 여기서 그만두자 그런 말 하지 말자고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쪽이 저를 가볍게 저를 대해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순간 이만석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이니의 말이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농담? 제 말이 농담으로 들리시나요?”
“그럼 아니란 말입니까.”
“갓길에 차를 세워줘요.”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죠.”
이만석이 천천히 속력을 줄여 갓길로 핸들을 꺾어 천천히 속도를 줄여 깜박이를 키고 멈춰섰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십시오.”
갓길로 가달라는 것이 내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이만석이 얼굴을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저도 솔직하게 질문 할 테니까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이니의 눈빛이 상당히 진중하게 변했다.
“말해 보십시오.”
이만석 역시 제이니와 시선을 똑바로 맞추어주었다.
“제가 별로에요?”
“제이니씨 정도면 충분히 매력적인 여잡니다.”
“그럼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안 들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정말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
“그렇습니다.”
생각 할 것 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하는 이만석의 모습에 제이니는 다시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솔직히 이만석이 콘서트에 온 것을 보았고, 로즈걸스 팬이니까 왔던 게 분명했다. 물론 자신의 팬은 아닐 지라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반응이었다.
“대기실에서 했던 그 말... 정말이에요?”
“어떤 얘기 말입니까.”
“세린의 팬이라고 했던 거요.”
“구지 관심이 간다면 세린이라고 했지 팬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만석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이니가 듣기엔 다섯 명 중엔 세린에게 관심이 제일 많다는 걸로 들렸다. 구지라고 했지만 다섯 명 중에 뽑으라면 세인일게 분명하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만약...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
“만약에 제가 아닌 세린이었다면 어땠을 거 같아요?”
“세린이라...”
“저와는 다른 대답을 들었을까요?”
이건 물어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미 세린과는 나쁘지 않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달랐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다고 대답 할 줄 알았던 제이니는 이만석의 이 말에 다시금 항 말을 잃고 말았다. 내심 다를 거 없다고 하길 기대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답을 듣다니 솔직히 말해 충격이었다.
“제 어디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그러니 더 조바심이났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이라도 좋다고 했잖아요.”
“제이니씨가 상처를 받겠죠.”
“상처 안 받아요.”
“고집이 세시군요.”
“고집 아니에요. 왜 제 마음을 고집이라고 매도하는 거죠?”
제이니는 이만석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한 편으론 이렇게 자신을 밀어내는 모습이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전 그날 그쪽보고 정말로 가슴이 설레었단 말이에요. 지금은 그 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말 했잖아요. 가볍게 시작해도 좋으니 밀어내지 말라고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듯 말한 그녀는 이만석의 이 태도가 정말로 좋지가 않았다. 특히 세린이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제이니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뭐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거죠?”
“제이니씨가 그렇게 까지 해서 저와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을 텐데요.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더 기회가 말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틀렸습니까.”
“네, 틀렸어요.”
물어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이니가 딱 잘라 말했다.
“멋진 남자라면 그쪽 말대로 충분히 보았어요. 말대로 잘생긴 사람도 많이 봤죠. 하지만 이게 없잖아요.”
제이니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살며시 얹었다.
“그 사람들에게선 두근거림이라는 게 없단 말이에요.”
“저에게는 있단 겁니까.”
“말했잖아요. 제대로 설레었다고. 사실 심장이 이렇게 두근거린 적도 처음이에요.”
첫 남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도 제이니는 그렇게 가슴이 뛰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으로 사귀는 거니 설레이기는 했지만 그때는 죽이 잘 맞고 편하고 좋으니 자연스레 사귀게 되었던 것이지 정말로 사랑했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사귀는 것에 그렇게 깊이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세린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을 때 이해를 하지 못 했던 것이다.
가볍게 만나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세린은 그 반대였다.
그러니 지금은 충분히 그 말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뛴다는 것이 뭔지, 진짜 설레인다는 것이 뭔지 지금은 제대로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쪽과 만나면 상처 받는다고 했는데 오히려 이대로 끝내는 쪽이 나에게 더 상처 받을 거예요.”
“섣부른 판단은 좋은 게 아닙니다.”
“섣부르지 않아요. 왜 그렇게 밀어내려고만 하나요?”
제이니가 정말로 모르겠냐는 듯 답답함을 다시 토로했다.
“제가 어떤 마음인지 그쪽에게 보여줘요?”
손을 뻗은 제이니가 이만석의 손을 감싸 쥐었다.
“갑자기 손을 왜 잡는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여기 말고...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으로 가요.”
“조용한 곳?”
“네, 여긴 간간히 차량이 지나다녀서 눈에 띄어요.”
이만석은 제이니의 이 대답을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듣고는 적잖이 놀랐다.
‘이런 반응을 예상 한 건 아닌데...’
차량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하는 얘기는 길게 생각 할 것도 없이 답은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오른손을 감싸고 있는 제이니의 손을 떼어낸 이만석이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말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요.”
이만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이니가 다시 말을 받았다.
“못 들은 걸로 하지 말아요.”
그러더니 다시 손을 뻗어 이번엔 이만석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전 진심이니까.”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충분히 알아요. 제가 그 정도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나요?”
처다 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제이니는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두 눈은 진지했고 농담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발하고 있었다.
“통제 불능이 군요.”
“여기서 더 밀어내지 말아요. 그러면 저 진짜로 상처 받아요.”
만약 거절을 하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니 이만석은 별 말 없이 한 동안 제이니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 그렇게 좋은 놈이 아니라고 말 했습니다.”
“아까 그렇다고 얘기 했잖아요.”
“내가 그렇게 점잖 빼는 놈이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죠.”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주겠다는 듯 이만석이 다시 갓길에서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달려 이만석이 향한 곳은 서울 외각에 위치한 비포장도로의 한적한 길이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 깔려서 주변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차량이 멈춰 서자 제이니가 하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생각 잘 하셨어요.”
이만석 또한 어느새 안전벨트를 풀어버렸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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