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8화 〉 588화 과거와 미래
* * *
“노래 말이야?”
“응... 그것도 우리 노래.”
세린은 제이니가 들었다는 노래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2집 타이틀곡인 그대생각일게 뻔했다.
그 가사만큼 지금 상황과 어울리는 것은 없었을 테니까.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었는데 꼭 내 얘기 같은 거 있지.”
제이니를 바라보는 세린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다.
제대로 감정이입을 한것 같았다.
그렇게 제이니가 나가고 혼자 남게 된 세린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언니를 속이려니까 마음이 편치가 않네.”
이만석에 대한 마음만 간접적으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지 다른 건 다 속였다고 봐도 되었다.
그래서 세린의 마음은 전혀 편하지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이니가 어떤 마음을 느끼고 있는지 공감을 하고 있는데다 자신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미안해 언니.”
자신보고 순진하다 착하다라고 하는데 세린은 전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엔 자신도 이렇게 모르는 척 제이니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게 뭔지 정말로 안하던 행동도 하게하고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저러한 모습을 보면 너무나 미안한 세린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뒤 자리에서 일어난 세린이 방을 나섰다. 그리고 리나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는데 방에 있을지는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일찍 일어났네?”
그때 문을 열고나서는 잠옷 차림의 유진과 마주쳤다.
“하아암~!”
양팔을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켠 유진을 향해 세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씻으러 가는 거야?”
자고나왔으니 세안을 하러가는게 보통이었다.
“아니, 화장실에 다녀와서 한 숨 더 잘 거야.”
“그렇구나.”
“넌 어디 가는데?”
“리나 언니에게 물어볼게 있어서.”
“물어볼 거?”
“응.”
“하아...”
물어볼 거라는 말에 유진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있어?”
한 숨을 내쉬는 모습에 세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음을 던졌다.
“어제 리나 언니의 말이 생각나서 말이야.”
“말?”
“그 남자 참 괜찮지 않았어?”
“그 남자라면...”
“민준이라는 사람 말이야.”
“응... 그런데?”
“리나 언니가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거든. 이미 지나라는 여자와 잘 되고 있으니까. 둘이 사귄 데나? 하긴 그런 연회에 같이 나타나고 팔짱도 대놓고 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친오빠의 생일 축하 연회자리다.
거기서 공식적으로 같이 입장한 것은 물론이고 팔짱까지 꼈다면 보통사이가 아니라는 걸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매력 있는 사람들은 다 임자가 있나보다. 어디서 그런 남자를 또 찾을까.”
그러고는 화장실 쪽으로 향해 걸어가는 유진을 보면서 세린은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유진이는 포기를 했나보네?’
저 말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유진은 이만석에 대해 포기를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자조적인 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세린이 걸음을 옮겨 지나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두어 번 노크를 하고 살며시 문을 열며 지나를 불렀다.
“언니 안에 있어?”
문을 열고 안을 바라본 세린의 시야에 방안의 한적한 공간만이 보일 뿐 지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서 뭐해?”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커피 잔을 들고 서있는 지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 커피 타온 거야?”
“응, 한 잔 마시고 노곤하게 자려고.”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할 수 있어?”
“얘기?”
세린이 대화 좀 나누자는 말에 반문을 했던 지나는 곧 그 얘기가 무엇일지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들어와.”
안으로 들어서는 지나를 따라 세린도 들어서 문을 닫았다.
“침대에 앉아.”
지나는 커피 잔을 들고 있어 흔들리는 침대가 아닌 의자를 하나 침대 쪽으로 가져와 몸을 앉혔다.
그 맞은편에 세린이 침대에 몸을 앉혔다.
입김을 불어 식힌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지나가 세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때문이지?”
하려는 대화가 무엇인지 지나는 바로알고 있었다.
“응.”
역시나 세린은 바로 그렇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나 전화통화 했어.”
“얘기 했나 보구나?”
“알아야 하니까.”
생각보다 빨리 전화를 한 것 같았지만 시간을 끄는 것 보다는 좋았다.
“뭐라고 하던데?”
제이니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었을 테니 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언니보고 제이니 언니한테 전화번호 알려주라고 전해주라 했어.”
“진짜?”
“응.”
세린도 이 말에 좀 놀란 듯해 보였다.
“별일이네. 제이니보고 전화번호를 다 알려주라고 하고.”
“아무래도 언니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보겠다고 했던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아. 혹시나 나중에 그 때문에 소란스러워지면 큰일이잖아.”
“다른 사람에게 얘기가 나돌지 않게 하라는 거구나.”
“응.”
스스로 찾겠다고 했지만 분명히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게 뻔했다.
그게 사람을 찾아 주는 곳이든 어떤 곳이든 간에 결국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네 얘기 듣고 불편해 하지 않았어?”
“그러진 않았어.”
“그 사람도 생긴 것 답게 성격이 시원시원하네.”
좀 난처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의외인 듯 했다.
“하긴... 그 정도 외모면 여자들 많이 따랐겠다.”
그런 일이 어쩌면 처음이 아닐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당황하거나 난처해하는 기색이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알고 있다는 걸 말했어.”
“그에 대해서도 별말 없었어?”
“응.”
“별일이네. 조금이라도 놀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는 대답에 제이니는 이만석의 그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 차분한 말투가 떠올랐다.
‘큰 일이 아니면 별로 놀라지도 않나보지?’
이정도의 일에는 그 사람에게는 별일 아닌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리나였다.
“무슨 생각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려주라니까 알려주지 뭐.”
제이니가 따로 찾아보겠다며 나서는 것 보다는 괜찮을 것이다.
생각이 있을거라고 보았다.
“너는 걱정이 안 돼?”
“걱정?”
“전화번호 알려주면 두 사람 만날 수도 있잖아.”
“큰 걱정은 안 해.”
“호오~ 그러셔? 어디서 그런 자심감이 다 나오는 거야?”
“그 사람에게 이미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는 걸.”
“지나 언니?”
“응.”
“하긴... 그렇겠네.”
지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만석에게 그 외에 세 명의 여자가 더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았던 세린은 이 정도의 일에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 외에 정말로 없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제이니 걔 좋아하겠네.”
“안 그래도 아까 전에 내 방에 찾아왔었어.”
“제이니가?”
“응. 언니 말대로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아보였어.”
“쉽게 포기 할 게 아니라니까.”
이만석이 그렇게 일을 보고 있는 동안 안나는 개인 휴게실에서 천을 깔아 놓고 오랜만에 자신의 총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10. 4mm구경에 대인저격용 총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m200 체이탁이었다.
이 총으로 여러 명의 요인들을 암살하였고 안나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와서 그녀에겐 일반적인 저격총이 아니었다.
인숙한 손놀림으로 총기를 하나하나 불리해서 수입도구로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나하나 점검하고 닦아냈다.
늘쌍 해오던 것들이어서 막힐 것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온 뒤로 총기를 쓸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안나여서 수입을 하면서도 느낌이 조금 색달랐다.
‘앞으로도 쓸 일이 많지는 않을 거야.’
이만석을 따라 간다고 해도 이 저격총을 쓸 일은 크게 없을 것이라 보았다.
주로 사용한다면 권총을 많이 만지게 될 것이라 보았다. CIA에서 해결사로 활동 할, 때나 저격총을 많이 이용했지 이만석과 함께하면서는 이 총보다는 권총을 더 많이 이용했고 써왔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안나는 총기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언제 사용할지 모르지만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미지의 공간이라도 있는 건가.’
총기를 닦으면서도 안나는 이만석이 허공 속에서 보관함 가방을 꺼내 드는 것은 그녀로써도 참으로 신기했다. 일종의 아공간으로 균열의 틈을 만들어 그곳을 보관함처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데 과학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녀로써는 그런 기이한 능력은 신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노리쇠뭉치 까지 전부다 점검과 수입을 끝낸 안나가 익숙한 동작으로 총기를 다시 조립했다.
분해를 할 때처럼 점검을 하는 것도 상당히 빨라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보관함에 자신의 애총을 잘 넣어둔 안나는 이번엔 두 개의 소음기가 부착되어 있는 권총을 꺼내들어 분해를 하기 시작했다.
이왕 하는 김에 자신이 사용했던 권총 두 자루도 손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