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7화 〉 587화 과거와 미래
* * *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뭘 꺼 같아?”
“나보고 맞춰보라는 말이야?”
“딩동댕!”
농담 섞인 대답에 세린은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더니 입을 열었다.
“설마 언니가 찾아보겠다는 거야?”
“정답!”
이번에도 퀴즈를 맞췄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탄성을 터트렸다.
“우리 세린이 많이 똑똑하네? 이정도의 힌트로 알아맞추고.”
“그냥 찍은 거야. 그런데 정말로 찾으려고 그래?”
“어쩔 수 없잖아. 리나 언니가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나서서 찾아봐야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되잖아.”
맞는 얘기였지만 세린에겐 참으로 난처한 대답이었다.
여기서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과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할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게 세린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난처했다.
“언니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
“두 말하면 잔소리지.”
세린의 물음에 제이니는 생각 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나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지다고 느낀 사람은 그 사람이 처음이야.”
“언니 말대로 보기 드물게 잘생겼잖아.”
“쯧쯧쯧... 뭘 모르는 구나?”
세린의 대답에 혀를 찬 제이니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그 사람을 멋지다고 한 건 외모도 물론 포함 되겠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럼?”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 너도 느꼈을 거 아니야? 뭔가 가볍지 않은 그런 분위기를 압도 하는 그런 거 말이야. 내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대충은 알 것 같아. 나도 비슷한 경험 했던 것 같아.”
“그렇지?”
세린도 그런 분위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처음 이만석을 만나고 함께 나섰을 때에도 자신에게 반말을 내뱉는 그에게 크게 따지고 할 수가 없었다.
뭔가 그게 자연스러웠고 대하는 것이 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부담스럽다하면 그런 것이 아닌데 분위기 자체가 주변을 눌러버리는 그런 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 이만석에게 세린이 반말을 하다 왜 그러냐는 듯 물어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 먼 타국에, 그것도 이집트로나는 중동권 지역의 나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전혀 쉬운 알이 아니잖아? 한국에서 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인 데. 외모뿐만이 아니라 그런 불모지의 땅에 가서 개척해 가겠다는 생각 하는 것을 보니 이 남자 진짜 멋지구나라는 걸 느꼈다니까.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래서 호감이 생긴 거야?”
“호감 정도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그 이상이야. 반했다고 해야 정답이라고.”
어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좀 생각을 하는 듯 한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리나 언니의 말대로구나.’
제이니를 보면 정말로 스스로 이만석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리나가 우려했던 것이 괜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때 제이니가 디시 입을 열었다.
“뭐가?”
세린이 의아해하며 다시금 물었다.
“네가 말한 것 말이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만나겠다고 한 거. 가볍게 만나는 건 난 별로라고 했던 거 말이야.”
제이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세린이 같은 애도 있다는 걸 보고 참으로 신기해했다.
귀엽고 인형같이 생긴 애라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았을 거고 실제로도 그랬다.
고백도 많이 받았다고 한데 남자친구를 한 명도 사귄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가볍게 만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귀겠다고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솔로로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제이니는 딱 한 번 남자친구를 사귀었었다.
중학교3 학년 때 고등학교 2학년 오빠와 사귀었는데 연습생 생활에다 바쁘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만남이 뜸해졌고 그렇게 헤어졌던 것이다.
1년 이상 오랫동안 사귀어서 당연히 성경험이 없지 않았다.
물론 제이니와 사귀었던 그 오빠도 동정이어서 둘 다 처음이라 많이 서툴렀었다.
처음이라 아팠고 제이니는 이걸 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프다고 듣기는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관계였다.
어릴 때 하면 원래 아픈 건지, 아니면 자신은 체질이 안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이니는 둘 다라고 생각했다.
나이도 어렸고 자신은 성관계가 별로 안 맞는 체질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팠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게 맞았다.
나중에 결혼하고나면 첫날밤이나 아기 가지고 싶을 때 그때 한 번 하면 되는 것이지 성관계 없이도 사랑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1살인 지금까지 제이니는 더 이상 성관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과는 맞지 않은 행위라고 생각을 해버렸기에.
물론 성관계만 가지지 않았을 뿐이지 본격적인 연습생 생활을 가지기 전까지 그 오빠와는 잘 사귀었다.
남자는 여자와 다르게 관계를 가질 때 처음이라도 기분이 좋다고 하지만 제이니가 원치를 않으니 그 오빠도 그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마도 첫 관계 시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던 모습이 인상에 박혀 그랬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오빠에다 죽이 잘 맞았고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친구를 통해 안부를 듣기로 제이니와 헤어지고 대학교에서 만나 3년 이상 사귄 여자 친구와 작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려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딱 한번 사귀어 봤지만 제이니는 하란이의 생각에 대해서 신기해했다.
옛날과 다르게 지금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추세였다.
마음이 맞고 뜻이 맞으면 오래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성격차이를 인정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아니면 외로워서 가볍게 만나는 이들도 있었다.
세린은 그런 것 자체를 스스로 거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사귀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제이니에겐 참으로 신기했다.
물론 제이니 또한 가볍게 만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그녀 또한 여러 번 고백을 받았었지만 딱 한 번 사귀었을 뿐이었다.
1년 동안 만나면서 관계를 가진 것도 첫 경험을 한 그것이 전부였고 그 후로는 자신과는 맞지 않는 다고 생각해서 아예 그쪽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기를 가지고 싶을 때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첫 경험의 아픔이 제이니에겐 상당히 큰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었다.
“네가 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 알 것 같아.”
사람은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제이니는 이제 확실하게 세린이 말했던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 마음이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었다.
‘오빠를 진짜 좋아하게 된 건가.’
세린은 제이니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설레임에서 이만석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지 알 것 같았다.
자신도 지금 그걸 느끼고 있는데 모른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말하는 걸 보면 호감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언니한테 미안하네.’
그런 제이니를 대놓고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세린은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미안해 세린아.”
그런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을 모르는 제이니가 오히려 세린에게 사과를 해왔다.
“뭐가?”
세린이 의아해하하며 물었다.
갑자기 자신에게 사과를 해오니 당황스러웠다.
전혀 사과할 일이 없는데 말이다.
“저번에 네가 한 말을 듣고 좀 더 생각을 넓게 가지는 게 좋다고 했던 거 말이야.”
“괜찮아. 그런 말 많이 들었는데 뭘.”
“오히려 생각을 좁게 잡았던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던 거 있지. 사람은 자신이 그 상황을 격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고 이제야 네가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알게 됐어.”
“언니말도 맞아. 나처럼 생각하는 애들 지금까지 본 적이 없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다만 내 기준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거지.”
“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제이니가 침대에 뒤로 넘어지듯 몸을 뉘었다.
그러자 시트가 흔들리며 출렁였고 양쪽으로 팔을 뻗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던 제이니가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사랑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 같아. 누굴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건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사나 환상속의 세상에서나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노래가사가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고 내용이 공감이 되었다.
노랫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인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나 많이 들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제이니가 대기실에서 보았던 이만석을 떠올리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세린을 바라보았다.
“나 어제 있잖아. 계속해서 반복하며 들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