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0화 〉 580화 과거와 미래
* * *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던 중에 이만석은 폰의 벨이 울리는 것을 보았다.
확인을 해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세린이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받았네요?]
“샤워하고 머리좀 말리던 중이야.”
[그렇구나...]
다소곳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이 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오늘 콘서트 와줘서 고마워요.]
“약속이니까.”
가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가는 것이다. 세린이 고맙다고 하지 않아 도 될 일인 것이다. 물론 이만석은 그런 세부적인 것에 대해서 설명을 구지 하지는 않았다.
[매니저 오빠와 우리 멤버들 때문에 당황스럽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그게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한 것도 있는 것 같았다.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어?”
[아니요.]
“오히려 신선했어.”
[신선 했다고요?]
“길거리 캐스팅 처음 받아봤거든. 콘서트도 처음 갔는데 그 자리에서 아이돌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 특별한 경험을 한 거지.”
길거리 캐스팅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해듣는 얘기일 뿐이지 직접 당한다는 건 어렵다.
그러한 경험을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신선하다.
[안 오실 줄 알았어요.]
티켓을 주기는 했지만 과연 세린은 걱정을 했었던 모양이다.
“네 얼굴도 볼 겸 해서 갔지.”
문자에서 보았던 것처럼 세린은 자신이 수찬의 말에 따라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타났으니 오죽 놀랐겠는가.
“많이 당황하더군.”
[솔직히 진짜 놀랐어요.]
“그러라고 간 거야.”
[......]
폰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이만석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 말에 기분 나빴어?”
[저 이 정도에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목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기분 탓이에요.]
“그런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갔다는 말에 놀림 당했다는 목소리에서 삐진 듯 한 음성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만석은 그게 마냥 귀엽게만 여겨졌다.
“노래 잘 하더라.”
[노래요?]
“왜 네가 메인 보컬인지 확실히 알았어. 나하고 만날 때와 무대에 섰을 때하고 완전히 다르던데? 특히 미련이라는 노래 부를 때 아주 도발적이었어.”
이만석은 자신이 보고 느낀점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상하진... 않았어요?]
세린 또한 자신이 어떤 이미지인줄 잘 알고 있어서 그에 대한 걱정이 좀 되었던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파격적인 안무에도 화장, 그리고 옷차림이었으니 그에 대해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이상하게 보았다면 어떡하나 생각도 했었나보다.
“충분히 섹시했어.”
[정말요?]
“그래. 제이니나 리나, 이런 멤버들과 비교하면 좀 부족해 보였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섹시해.”
[그 말 칭찬이에요?]
“물론이지.”
[그런데 왜 기분이 그렇게 좋지가 않을까요.]
“질투 나서 그렇겠지.”
[저 질투 안 해요.]
“그래?”
[네, 설마 제가 리나 언니하고 제이니 언니와 비교해서 부족하다는 말에 질투 할 정도로 그런 소심한 애 아니에요.]
“알았어.”
[진짜에요!]
“믿어.”
아무래도 리나와 제이니와 비교를 해서 그런 것이 확실해 보였다.
목소리에 다 들어나는데 무얼 숨길 수 있겠는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안무와 표정 연기를 생각하면 참으로 비교되었다.
‘프로의식인가.’
무대 밖과 위가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의식이 있어서라고 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잘 들어갔어?”
[네, 이제 씻으러 가려고요.]
“피곤할 텐데 쉬어.”
[저 걱정해주는 거예요?]
“그래.”
[기분 좋네요.]
아까 전엔 심통이 난 듯 한 음성이더니 이번엔 반대로 목소리에 웃음기가 실려 있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애가 참 단순한 면이 있어.’
백화점에 처음 세린을 만나 하루 동안 지낼 때도 상황마다 표정과 감정이 달라지는 것이 기복이 큰 것 같았다.
물론 기분 좋아서 웃고, 안 좋아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정도로 단순한 면도 없잖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또 매력으로 보였다.
[오빠도 푹 쉬어요.]
“그럴게.”
[잘 때 제 꿈 꾸는 것도 잊으면 안 돼요.]
“생각해 보고.”
[생각하지 말고 그러겠다고 해줘요.]
“싫다.”
[너무 냉정해요.]
“원래 이래. 몰랐어?”
[네, 몰랐어요.]
“그럼 이제 알았으니까 됐네.”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씻으러 가.”
[네... 잘 자요 오빠.]
“어.”
[쪽!]
폰을 끓으려다 발고 들려오는 뽀뽀 소리에 이만석은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줍어 하면서도 또 이러한 애정행동을 하는 것 보면은 놀라웠다.
‘감정 기복이 있어 애가.’
아무래도 걱정 해준 것 하나에 기분이 좀 업 되어 있어보였다.
그 전엔 심통을 부리더니 참 재밌는 애였다.
헤어드라이기로 다시 머리를 마저 다 말린 이만석이 그렇게 자기 전 담배 한 대 피러 테라스로 나섰다.
“어떡해... 나 이런 애 아닌데.”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만석의 말에 너무 설렌 나머지 저도 모르게 전화상으로 뽀뽀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런 건 뮤직비디오 촬영 할 때나 했던 행동들인데 지금 자신이 진짜로 그러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웠다.
실제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적이 없었던 세린은 뮤직비디오 촬영 내내 엔지를 몇 번 냈었는지 모른다.
어색한 게 많아 애를 많이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대생각 뮤직비디오를 다시 촬영한다면 세린은 엔지 없이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지금 자신의 마음이 뮤직비디오 속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오빠라면 정말로 매일 같이 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을 거야.’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고 난 후에 정말로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면 그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젠 그에 대한 의심은 없는 세린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떠오르고, 기다린다고 하는데 촬영을 하면서도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가 힘들었다.
막연하게 그에 대한 느낌을 설명을 받은 대로, 보고 들은 대로 이럴 것이다라고 가정만 해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게 무엇인지 세린은 정말로 잘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그대생각을 불렀을 때 세린은 정말로 여느때 보다 더 잘 부를 수가 있었다.
감정이입이 너무나 잘 되었고 실제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어 설렘을 느끼면서 부를 수 있었다.
작년에 나온 곡이지만 지금까지 부른 그대생각 중에 오늘이 아주 잘 불렀다고 자부하는 세린이었다.
그걸 팬들 또한 느꼈는지 호응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감정이 잘 잡히니 무대에서의 집중도 상당히 되었다.
팬들도 그걸 느끼고 있었기에 그러한 호흥을 해주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전화 통화를 끝낸 세린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기분 나빴으면 어쩌나 했는데...”
길거리 캐스팅이 사실 기분 나쁠 일이 뭐가 있겠냐만 세린이 보기엔 이만석은 기분이 나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그런 쪽으로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로즈걸스의 멤버인 세린이라는 것도 몰라보지 않았던가.
콘서트도 처음인데다 몰랐다고 해도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면 놀라는 게 당연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연예계 쪽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번 일로 인해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많이 신경이 쓰였다.
전화를 해서 말해보니 다행이 그런 것 같지가 않아 안심이 되었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조마조마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린은 거기서 했던 제이니의 말이 걱정이 되었다.
‘제이니 언니 진짜 오빠에게 반한 것 같던데.’
세린이 보기엔 제이니는 호감을 넘어 정말로 이만석에게 반한 것처럼 보였다.
맘을 터옿을 수 있는 오빠가 있었으면 한다는 말부터 진한 사심이 느껴졌는데 그게 정말로 드러났다.
거기다 제이니 뿐만이 아니라 유진이나 희라 또한 이만석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만 보더라도 제이니 언니가 호감과 관심을 보였다고 생각하는게 맞았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자신이 이만석과 만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절대적으로 비밀로 해야 할 판이었다.
이미 세 사람은 자신이 이만석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요라는 말을 꺼낼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알게 된다면 분명 파장이 클것이다.
그러니 비밀로 해야했다.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리나 언니라서 다행이야.”
오늘 거기서도 그렇고 리나는 확실하게 비밀에 대해서 함구를 하며 지켜주었다.
맏언니이자 리더로써 동생들을 챙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 더 그런지 모른다.
똑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세린아 뭐해?”
문 쪽을 바라보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이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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