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7화 〉 567화 과거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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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별 쓸모가 있는 진 모르겠지만 부탁을 하니 해드리긴 하겠습니다.”
방송국 기자에다 보는 눈들이 많아서 이만석은 하는 수 없이 팬을 받아 간단하게 싸인을 해주었다.
여기와서 싸인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세린이 부탁해서 왔는데 마치 자신이 연예인이 된 것마냥 이러한 상황이 웃겼다.
“여기요.”
이어서 옆에 있던 여학생이 노트를 내밀자 이만석이 그것도 받아서 싸인을 해서 넘겨주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여학생들이 달려가더니 갑자기 멈춰서 이쪽을 쳐다보았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연예계 데뷔하면 성공하실 거예요!”
연예계에 꼭 데뷔 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해온다.
“오빠 진짜 멋져요!”
목소리가 컸던 타일까.
더욱더 사람들이 이쪽을 시선이 몰리는 것 같았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귀찮게 됐군.’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것을 보면서 이만석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처다 본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고 이만석이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저, 저기요...”
“무슨 일입니까.”
그때 10대 후반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 한명이 말을 걸어왔다.
뒤에는 친구들로 보이는 이들도 함께 였는데 이쪽을 눈치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말하는 거들었는데 그럼 연예인 아니라는 거예요?”
“아닙니다.”
순간 무슨 생각인 것인지 표정이 밝아진 여고생이 당돌하게 폰을 꺼내 들어다.
“오빠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예?”
“연예인이라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시니까 알고 지내고 싶어서 그런데... 알려 줄 수 있어요?”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이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그 중엔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꾀 되었다.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함부로 폰 번호를 알려 줄 수 없는 입장이라서 말이죠.”
“거절 하시는 거예요?”
“그 쪽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물어 와도 똑같습니다.”
까였다는 생각에 어두워지는 표정이 이만석이 다른 사람이 해도 똑같을 거라는 말을 듣고서야 조금 얼굴이 다시 풀렸다.
“알려 줄 수 없는 입장이라는데 별 수 있나요.”
“그럼.”
대화를 끝내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목소리가 이만석의 귀에 다 들려왔다.
“봐.... 내가 안 될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게 뭘까?”
“뻔하지... 지금은 아니지만 연예계 데뷔를 앞두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는데?”
“그래 너도 아까 말하는 거, 들었잖아.”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지. 대놓고 데뷔한다고 하겠어? 어쩌면 여기 온 것도 얼굴 알리려고 온 것일지도 몰라.”
“정말로 그럴까?”
“하긴 저 정도 외모를 썩혀두기엔 너무 아깝지.”
“그런데 진짜 잘생겼다.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가 있을까?”
“나 저 오빠 팬 할래.”
“나도 데뷔하면 바로 팬클럽 가입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
보통 사람들 보다 귀가 좋으니 뒤에서 나누는 저 대화들이 그대로 다 들려왔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실망하겠군.’
이만석은 티비에 출연해서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까발리고 활동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스타파를 내세우고 박동구를 띄우는 것이었다.
활동하다 보면 얼굴이 팔릴 일이 있겠지만 스스로 연예계에 나서서 티비 앞에서 연기를 하며 활동하는 것은 이만석의 성격과 맞지가 않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이만석은 그렇게 콘서트 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가지는 콘서트인데 다들 긴장하지 말고 잘 해보자!”
메이크업을 점검하고 몸매와 섹시미를 그대로 살려주는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있는 로즈걸스맨버들을 향해 수찬이 박수를 치며 독려를 했다.
“비록 4500명이라고 하지만 이 무대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마치느냐에 따라 다음에 3만, 한 발 더 나아가 5만 팬들을 만날 수 있는지에 결정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걸 넘어야 국내에서 10만 팬들을 만나는 것도 꿈이 아니게 되니까 다들 성공적으로 콘서트 시작하고 끝내보자... 알았지?”
오랜만에 가지는 국내 콘서트인 만큼 정말로 의미가컸다.
“오빠가 제일 긴장한 것 같은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수찬을 보면서 희라가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
“내가 흥분을 한 것이 아니라 다 너희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점잖고 차분한 사람인데 이런 일로 긴장을 하겠어?”
“오빠가 점잖으면 진짜 점잖은 사람들은 다 죽었게?”
제이니가 끼어들어 다시 농담석인 핀잔을 주자 수찬이 인상을 찡그렸다.
“얘들 앞에서 뭔 말을 못해요 말을... 거 뭐냐. 여튼 국내에서도 이번에 새로 나온 신곡도 좋고 반응도 좋았고 하니까 하번 제대로 즐겨봐~!”
로즈걸스 하면 원래 섹시보다 산뜻하고 발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아들의 이미지 였는데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타이트한 스키니 진에 가슴볼륨을 잡아주는 딱 달라붙은 회색 티, 그리고 하늘 한 흰색 셔츠를 걸쳐 아랫부분을 끌어 올려 묶어 올려 쫙 빠진 허리 라인과 매끈한 복부가 그대로 다 드러나는 의상이었다.
거기다 붉은 색 립스틱을 바르고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는 등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여아들의 이미지인 로즈걸스를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중에 제일 섹시한 느낌을 잘 살려주는 여자를 뽑으라면 당연히 리나와 제이니를 들 수 있을 것이었다.
리나는 산뜻하면서도 섹시미를 은근히 풍기는 컨셉을 잡았고 실제로 그 이미지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제이니는 원래 의도치 않았지만 워낙 몸매가 유별나서 섹시아이콘으로 자리 잡혀 버린 캐릭터였다.
2월 달에 발표한 이 파격적인 컨셉과 의상에 팬들에게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애들인 줄 알았는데 이런 정렬 적이고 섹시한 면도 있다는 것에 신선함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원래의 로즈걸스의 그런 산뜻한 이미지는 버린 게 아니었다.
이번 컨셉은 자신들도 충분히 도발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제작되고 기획했던 일이었다.
“그 사람 생각해?”
리나자 조심스럽게 세린의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응.”
“온다고 했으니까 왔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해 언니... 다만.”
“다만?”
“내가 좀 긴장이 되어서.”
“그 사람 앞에서 처음 공연 하니까?”
“응.”
“너 보러 많은 팬들이 왔을 텐데 그 사람들이 불쌍해지네. 그 사람만 생각하니까.”
“나도 팬들 좋아해. 그런 거 아니야.”
순간 당황하는 세린의 모습에 리나가 웃음을 지었다.
“뭐야 뭐?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나누는 거야?”
유진이 다가와서 대화에 끼어들자 리나가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공연을 앞두고 세린이 좀 긴장한 거 같아서.”
“콘서트 처음 아니잖아. 오랜만에 가지는 국내 공연이라서 그래?”
“그런가 봐.”
“긴장 풀어. 늘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러고는 어깨 주물러주는 유진의 행동에 세린은 어색한 웃음만을 지어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7시가 다되어 갈 때쯤 이만석은 어느새 콘서트장 안으로 들어서 자리를 잡았다.
바리게이트가 처져 있고 플로어석 양쪽 앤 가수들이 걸어갈 수 있게 무대와 연결 되어 있는 긴 로드워가 중앙까지 양쪽으로 일자로 뻗어 있었다.
11번째로 번호순대로 입장한 이만석은 2열의 맨 앞에 자리를 차지 할 수가 있었다.
플로어 객석과 로드워 사이로 작은 길이 하나 있었고 가드레일 형식으로 안전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통로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화장실이나 급할 때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놓은 것으로 보였다.
4500명이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콘서트장 안이 꽉 차니 후끈한 열기와 인파가 대단하게 다가왔다.
이런 콘서트 장엔 이만석은 처음으로 온 것이라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두고 웅성이는 사람들과 바라보는 이들이 있어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특히 그들 중에 뚫어 저라 쳐다보는 이들도 있어 더욱 그랬던 것이다.
‘시간이 다되었군.’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7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시작 시간은 7시 였으니 이제 곧 콘서트가 시작 할 터였다.
그렇게 앞에 펼쳐진 무대를 처다 보고 있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콘서트 장의 밝았던 조명이 그대로 꺼져버리며 어둠이 찾아왔다.
‘이제 시작인가.’
그때 무대 쪽에서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은 서울 도심 속의 고층빌딩에서 말쑥하게 차려 입은 샤프한 한 남자가 서류가방으로 회사를 나서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멋지고 대단했는데 다음으로 법정으로 넘어가더니 열띤 목소리로 변호를 이어가는 영상이 나왔다.
것을 미루어보아 영상의 남자는 변호사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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