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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563화 (563/812)

〈 563화 〉 563화 과거와 미래

* * *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폰을 들어 확인한 하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

현호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도 돼.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오빠는?”

“나도 가봐야지. 안 그래도 약속이 잡혀 있어서 말이야.”

현호가 손목시계를 확인하엿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하란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가볼게 오빠.”

“그래, 앞으로 시간 나면 종종 연락하자.”

“알았어.”

“만약에 혼자 나오기 뭣하면 네 남자 친구도 같이 데려와도 돼.”

“응...”

“다음에 보자.”

그렇게 현호는 하란이를 떠나보냈다.

점점 멀어져가는 발소리와 함께 잠시 후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랑­!

‘갔구나.’

현호는 떠나가는 하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니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마음이 찹찹하다.

‘잘 했어... 잘 한 거야 임마.’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눈가에 흘러내리는 액체.

눈을 다시 감았다가 떠도 시야가 흐려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젠장.”

손을 들어 현호는 눈에서 흐르는 물기를 닦아 냈다.

그러고는 폰을 꺼내들더니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잠시 동안 신호음이 가고 얼마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혜리야, 나 술 한잔만 사줘라.”

[술 먹고 싶으면 혼자 먹으면 되지 왜 전화 했어.]

틱틱거리는 목소리에 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특별한 날이라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그래.”

[특별한 날?]

“그래... 특별한 날......”

말을 끝낸 현호가 마음이 복받쳐 올라 깊이 숨을 들이 마쉬었다가 내쉬었다.

“사줄 거야 말 거야.”

[너 혹시...]

“혹시 뭐?”

[아니야. 아무것도.]

“저녁에 전화 줄 테니까 네가 술 상대 해주는 거다?”

[나 그러겠다고 말하지도 않았거든?]

“알았어. 아무튼 저녁에 전화 줄게.”

[나 아직 화 안 풀렸어 전화 하지마 바보야.]

“그럼 만나서 풀지 뭐.”

[흥... 다 자기 마음대로야.]

“원래 그렇잖아.”

그렇게 전화를 끝낸 현호가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다시 닦아 냈다.

“잘 했어 임마.”

하란이를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현호는 스스로가 내린 이 결정에 대해서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이러한 산택이 하란이를 힘들지 않게 할 수가 있었다.

“짜증나게 왜 자꾸 나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잘 한 선택인데도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쪽팔릴 텐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는 것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호와 헤어지고 밖으로 나온 하란의 마음도 별로 편하지가 않았다.

반년이다. 고백을 거절 한 후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보면 지금도 마음의 정리가 된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호는 다시 예전의 친했던 오빠와 여동생 사이로 돌아가자고 했다.

마음과는 다른 말임에 틀림없었다.

겉으로는 웃음을 지었지만 하란이는 그 웃음이 억지미소라는 것을 잘 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하란이 또한 자주 그런 웃음을 어렸을 때부터 지었었는데 말이다. 어머니에게 사랑받기 위해, 오빠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우울한 모습이 아닌 긍정적인 아이, 밝은 아이로 보이려 맣이 노력을 했었다.

그래서 슬퍼도 슬프지 않아 했고 차가운 시선과 냉대에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다 자신의 잘 못으로 인해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 반성하고 고치려 노력했던 것이다.

실은 잘 못한 것이 없는 대도 말이다.

걸음을 옮기던 하란이 멈춰서 카페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현호는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하란이는 모르지 않았다. 손으로 눈가를 닦아 내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오빠.’

그날, 현호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다면, 아니 그 후로도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확신을 보였다면 지나와 만나기 전에 현호와 연락을 취해 잘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하란이는 그러지 않았다. 현호가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할지 몰랐기에 그랬다.

만약 현호는 그저 자신을 친한 여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고백을 하였다가 어색해지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렇게 하란이는 현호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고 방황기를 겪으며 안 좋은 시간도 보냈다. 그러다 이만석을 만나 하란이는 다시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다.

하란이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나나 오빠, 두 사람 중에 한 명이라도 자신이 느끼는 마음에, 상대에 대한 확신에 대해서 믿었더라면 어쩌면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지금 하란이의 마음에 현호가 들어올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예전 이라면 충분히 놀란 것을 넘어 가슴이 먹먹해지고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호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하란이는 더 이상 현호를 사랑하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만 보면 밝게 웃으면서 바보처럼 해맑게 웃던 이만석의 행동에 하란이는 저도 모르게 따라 웃으며 만날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며 응해주었다.

좀 어색해 하면서도 외모와 다르게 어리 숙한 면이 있는 그 남자가 하란이에게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다 호감이 생겼고 나중에 가선 저도 모르게 폰을 꺼내들어 그 남자의 번호를 보고, 문자를 확인하며 생각에 젖어들게 되었다.

호감을 넘어 현호 말고 하란이의 마음에 다른 남자는 담아 둘 수 없을 줄 알았던 그 공간에 이만석이라는 새로운 사람이 차지하고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큰 사단이 벌어져 납치가 벌어지고 강간을 당할 뻔 했다.

그때 하란이가 마음속으로 찾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만석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 사람은 눈앞에 타나났다. 그렇게 화가 난 모습도 처음이었고 잔인하게 폭행을 벌이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그런 이만석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 할 수도 있었지만 하란이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납치 했던 외국인 들을 때려눕힌 그 현장이 상당히 잔혹해 눈살이 찌푸려 질 수도 있었지만 하란이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묶여 있던 끈을 풀어주고 살며시 안아주는 그 순간 하란이는 이만석의 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납치를 당한 일에 대한 공포와 강간을 당할 뻔 한 수치감에 대한 서러움과 두려움이 복받쳐 올랐기 때문이다.

방황기에 찾아온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얘기로 받았던 심적 고통이 이만석이 살며시 안아주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누르고 있던 서글픔이 표출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하란이는 이만석에 대한 마음이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자신을 안아 주었던 그 품이 너무나 포근했고 넓어 보이는 등이 듬직해 보였다.

어떤 일이 생기든 이 남자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란이의 마음의 공간에 그렇게 이만석이 제대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오빠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보다 더 괜찮은 여자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란이는 더 이상 현호가 자신 때문에 마음을 아파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보다 훨씬 괜찮은 여자를 만나서 행복했으면 했다.

그렇게 하란이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도중 인도 옆의 차도로 검은색 세단 차량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 속력을 줄이더니 멈추어 섰다.

갑자기 걸어가는 인도의 옆의 갓길로 차량이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멈추어서니 하란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덜컥­

그때 조수석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운전석에서 눈에 들어왔다.

“어, 언니?”

“타.”

운전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차이링 이었다.

멈췄던 갓길을 빠져나오고 다시 도로로 들어선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하란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틀어놓았던 음악을 작게 줄인 차이링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카페에서 만났던 그 사람 현호라는 남자지?”

“다 봤어요?”

“창가에 앉아 있었으니까.”

“......”

다시 잠시간의 침묵이 차안을 맴돌았다.

그렇게 약 10여초의 시간이 더 지나가고 이번엔 하란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하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그러자 차이링이 의아해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이 현호오빠라는 거.”

“전에 조사를 좀 했어.”

“조사?”

조사라는 말에 하란이가 놀란듯 보였다.

“그이의 여자 친구인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래서 조금 알아봤지.”

당연히 차이링은 이만석을 들먹이며 별거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랬구나.”

어떻게 보면 상당히 놀랄만한 고백이었지만 하란이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보았던 차이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차이링이라면 그럴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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