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1화 〉 561화 과거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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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가고 현호는 한국에 돌아왔다.
유학을 끝마치고 이제 완전히 입국을 한 것이다.
그래서 현호는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 줄 겸 놀래 켜 주기 위해 하란이에게 말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런데 하란이는 한 참 공부로 인해 독서실에서 밤늦게 온다고 하여 마치는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찾아가 놀래 켜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돌아온 것을 알면 충분히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기뻐한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크게 놀라고 기분좋아 했으니까.
오랜만에 본 하란이는 어릴 때의 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층 더 성숙하고 예뻐져 있었다.
오뚝한 콧날에 또렷한 눈동자는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할 정도로 검은색 긴 생머리에 청순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더 하란이가 더 물이 오른 미모를 보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하란이를 바라본 순간 현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나에게서는 느끼지 못 했던 그런 설렘을 다시 느꼈던 것이다.
전에는 이걸 친 여동생처럼 너무 아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그게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상황이어서 느낌이 달랐다.
그저 귀엽고 여동생같아서 그랬던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란이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좋았고 행복했다.
중간에 미소를 지을 때 정말로 천사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현호의 눈에 하란이 너무나 아름답고 예뻤다.
마음먹은 대로 현호는 하란이는 자신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연회에 대한 축하 파티에 초대를 했다.
다시 하란이와 제대로 만남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가 자신을 축하하는 연회가 시작점을 좋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호는 하란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이미 하란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던 것이다.
씁쓸하고 마음이 아파왔던 현호였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 남자도 같이 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달라고 했던 것이다.
당연히 하란이가 만나고 있는 남자가 어떤 자인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땐 너무나 아꼈던 동생에다 지금은 마음에 품게 된 여자를 빼앗아 간 남자가 누구인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현호는 연회를 하는 내내 그에 대해서 신경이 쓰였다.
하란이가 올지, 그리고 그 남자도 같이 오게 될지에 대해서.
그렇게 현호는 기다렸다.
다행이도 하란이는 연회장에 찾아왔다. 그녀를 발견한 현호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예쁘게 차려 입은 모습을 보니 정말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잠깐의 좋은 시간이 자나가고 현호는 그런 하란이의 옆에 서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첫 인상은 정말로 잘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누가 봐도 커 보이는 훤칠한 키, 그리고 시원한 이목구비에 딱 벌어진 어깨는 순식간에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나역시 하란이의 남자친구를 보고 호기심을 보이며 차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란이를 빼앗아간 남자가 과연 누구인지 보고 싶기도 했고 이런 자리에 초대를 하여 기를 한 번 눌러 주려했던 현호는 이만석을 보고서는 반대로 자신이 기가 눌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현호 또한 180이 넘어가는 키에 잘생긴 외모였지만 하란이의 옆에 서 있는 남자에 비하면 아니었다.
그렇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악수를 한 후 짧은 대화를 해보니 의외로 기자라는 것을 알고는 현호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처럼 미래의 사업가나 그와 유사한 일을 하고 있을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자였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가선 기자가 본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동에서 사업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줄로만 알고 정말로 놀랐었다.
지나는 하란이의 남자친구에게 관심이 가는지 여러 질문을 던지며 눈길을 주었고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현호는 다 지켜보았다.
그렇게 연회가 지나가고 시간이 흐른 후 현호는 그때 느꼈진 지나의 호기심이 그저 호감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자신이 하란이에게 가있는 것처럼 지나도 서서히 그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약혼식을 앞두고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각자 마음에 두게 된 사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헤어진다고 해서 다 잘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하란이의 마음속에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게 된 대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알콩달콩 하게 지내는지 디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하란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고백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오랫동안 소꿉친구 이상의 가까운 오빠와 여동생 사이로 지내서 그걸 깨는 것일 수 있는 일이라 심적인 부담도 컸다.
그래서 현호는 맨 정신으로 도저히 고백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술의 힘을 빌려 하란이에게 고백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란이의 마음속에 그 남자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 되었던 일이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는 거야.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하란이는 현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보가 아니야, 그리고 오빠의 잘 못도 아니야.”
한란이 현호를 향해 스스로 잘 못 되었다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고, 오빠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던 것뿐이야. 단지 그것뿐이야.”
“확신이라...”
하란이의 말에 현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랬을지도 모르겠네.”
외동아들인 현호는 그저 하란이를 친 여동생처럼 아끼는 아이라 그런 줄 알았었다.
특히 하란이의 사정에 대해서 알고 난 후로는 더욱 그랬던 것이다.
“서민준은 알고 있어?”
“알고... 있냐니?”
“네 일에 대해서.”
“......”
현호가 말하는 일이란 게 하란은 무엇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걸. 하란이도 현호가 그 일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았다.
“아직 몰라.”
“......”
“내 마음은 오빠가 계속 몰랐으면 해.”
“그 사람이 힘들어 할 까봐?”
“응.”
그렇다고 대답을 하는 하란이의 말을 들으니 현호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저 말속에서 이만석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다 묻어날 정도였다.
“여전히 그 사람 사랑하고 있나 보구나.”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야.”
잠시 뜸을 들인 하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그 사람 없으면 안 돼.”
‘......“
현호에게 이 말은 너무나 가슴을 시리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자신 앞에서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하란이의 대답이 너무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리고 지내다보니 친남매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다.
진짜 하란이가 여동생으로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보고지내며 어울리면서 사이가 애틋했었다.
어쩌면 그런 하란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길 거라는 걸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올 때도 하란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을 것이라는 걸 생각지 못 했다.
고백도 한 뒤라서 하란이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매달리지 말고 좋은 사람 찾아서 가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이젠... 정말로 내가 들어갈 빈자리는 하나도 없나 보구나.’
너무나 씁쓸하고 가슴이 아파온다.
그렇게 다시금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현호도, 그리고 하란이도 별다른 말없이 그렇게 침묵을 지켰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현호가 하란이를 향해 이어지던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확인하고 싶었어.”
“확인?”
“응.”
현호의 입가에 지어진 씁쓸한 웃음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
고개를 든 현호가 하란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에게 다 이상 내가 있을 만한 빈자리가 없다는 걸.”
“......”
“서민준... 그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현호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날 고백을 하였다 차인 날, 현호는 하란이를 기다리겠다고 다짐을 했다.
언제까지가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에게도 한 번쯤은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을 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기다리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지금까지도 그랬는데, 그런 현호를 향해 질타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질타는 그냥 자신을 정신 차려라 한 말이 아니었다.
{또 여기에 있었어?}
그날도 주말을 맞아 혼자서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걸치고 있던 현호는 자신의 맞은편 테이블에 몸을 앉히는 혜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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