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2화 〉 552화 실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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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 뜨거운 물을 받고 나온 하란이는 지금 이만석의 말에 자신이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만석은 곧장 입고 있는 팬티를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높은 위치의 설치되어 있는 걸대에 걸려 있는 샤워기 밑에 서서 그대로 손잡이를 위로 올렸다.
쏴아아
순식간에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차가운 냉수가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를 적신다.
7월 말을 한 여름이어서 밖은 30도가 웃도는 더위가 계속 되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차가운 냉수로 더위를 씻겨내는 것은 당연한 행동일지 몰랐다. 그렇게 몸 전체를 가볍게 씻어내고는 다시 샤워기를 끄고 뜨거운 물이 가득 담김 욕조에 걸음을 옮겼다.
먼저 발부터 담가 보니 뜨거운 느낌이 바로 발목을 지나 다리 전체를 타고 올라와 열기를 전해주었다.
“딱 좋군.”
냉수로 몸을 씻어낸 뒤로 바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자극이 심할 텐데도 이만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대로 탕 속으로 들어섰다.
양쪽 발전체를 담군 후에 몸을 앉히니 욕조 안에 가득 담겨 있던 뜨거운 물이 흘러넘쳐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들어 갔다.
사람이 들어가면 어쩔수 없이 물이 넘치는 법이다.
천천히 등을 기대고 어깨까지 푹 담군 후에 이만서기 천천히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이대로 약 20여분을 담구고 있으면 이마에서 땀이 흘러나오고 몸이 나른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자주가진 못 했지만 목욕탕에 가면 이렇게 탕욕을 즐기며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는 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집에 욕조가 있고 목욕을 할 수만 있었다면 매일 같이 즐겼겠지만 그 때는 그럴 돈도 없었고 겨울에도 차가운 물에 몸을 떨며 쭈그려 앉아 물을 받아놓고 샤워를 해야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참 팔자가 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만석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뜨끈한 물에 탕욕을 즐겼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이 나른한 시간이 나쁘지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감고 있던 이만석의 두 눈이 다시금 떠지더니 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엔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3분의 1쯤 열리고 나자 반바지에 티 하나를 입고 있는 하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몸 담구고 있었네?”
이미 시간이 20여분이 훨씬 지났기 때문이었다.
욕조 안에서 이쪽을 처다 보고 있는 이만석을 향해 하란이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탕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더니 살며시 문을 닫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이만석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하란이 다소곳하게 입을 열었다.
“오빠 등 밀어줄까?”
“그건 문 닫기 전에 말해야지.”
“그런가...?”
귀엽게 웃음을 짓는 하란이를 보고 피식 거린 이만석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욕조의 물이 출렁이며 바닥에 흘러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뜨거운 물로 인해 욕탕에 수증기가 차있었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이만석의 몸을 보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욕탕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하란이의 두 눈에 이만석의 딱 불어진 상체와 길게 뻗어 근육이 제대로 잡혀 있는 하체, 그리고 커다란 남성의 상징이 가운데에 있었다.
자주 보았던 물건이지만 이렇게 보니 그래도 좀 부끄러웠는지 하란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 물 밖으로 나온 이만석이 목욕 의자를 한 쪽에 놔두고는 하란이에게 등을 내보이며 몸을 앉혔다.
하란이 앞에서 보이는 행동은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그제야 다시 시선을 바로 한 하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한 쪽에 놓아져 있는 때수건을 들고 이만석의 뒤로 향했다.
“오래 담그고 있었으니까 잘 나올 거야.”
“응...”
작게 대답을 하곤 무릎을 꿇고 앉은 하란이가 손에 때수건을 조심스럽게 착용했다.
그러고는 왼 손으로는 부드럽게 이만석의 등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러다 단단한 근육이 생동감 넘치게 그대로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왔다.
등으로 때수건이 끼어져 있는 오른 손을 가져다 대고는 천천히 문질러 대기 시작했다.
쓱쓱...!
그러자 살과 때수건의 마찰음이 들려오며 조금씩 엿가락처럼 회색의 때들이 뭉쳐서 나오기 시작했다.
“시원해?”
이만석에게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좋네.”
하란이는 그렇게 이만석의 등을 정성스럽게 때를 밀면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느린 속도로 내려갔다.
“이렇게 보니까 오빠 등 정말로 넓다.”
생각보다 더 넓다고 느껴진다.
“기댈 댄 좋지만 이럴 땐 좀 별로지.”
등이 넓을수록 때를 밀어야하는 면적이 더 넓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듬직하고 보기 좋아. 좀 넓다고 해서 힘든 거 아니야.”
“그래?”
“응.”
짧은 대화를 끝내고 하란이는 그렇게 정성스럽게 등을 밀어주었다. 약 5분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열심히 밀었던지 이마에 땀이 한 방울 맺혀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란이 걸려 있는 샤워기를 떼어 내더니 물을 틀어서 조심스럽게 한 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이만석의 등에 뿌려 주었다.
세기를 약하게 해놓아서 사방으로 물이 튈 일을 없었다. 왼 손으로는 등을 쓸어주면서 오른 손으로는 샤워기를 들고 물을 넓은 부위를 골고루 씻겨 내려 갈 수 있게 뿌려 주는 것이다.
“다 됐어 오빠.”
깨끗하게 등을 헹구고 나니 밀었던 때가 말끔하게 다 씻겨 나갔다.
“고맙다.”
“고맙긴 뭘.”
“이제 나머지는 내가 할게. 나가서 쉬어.”
충분히 됐다고 생각한 이만석이 그렇게 말했다.
“오빠.”
“응?”
“다른 곳도 내가 밀어 줄까?”
하지만 하란이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귀찮을 텐데 쉬어.”
고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만석은 당연히 쉬라고 말했다.
“귀찮지 않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니라고 대답을 하는 하란이의 목소리에 이만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만석에게서 허락이 떨어지자 하란이가 안도를 했다. 이어서 샤워기를 다시 틀어 이만석의 어깨부터 시작해 나머지 부분도 다시 물로 적셔주었다. 그리고는 오른팔부터 시작해 천천히 등과 마찬가지로 때를 밀기 시작했다.
하란이는 말없이 다시 팔부터 시작해서 몸 구석구석 정성스레 때를 밀어주었다. 중간에 제법 많은 양의 때가 나오면 샤워기를 이용해 다시 헹구어 주는 것을 반복하면서 씻어주었다.
“나 이렇게 한 번씩 오빠 몸 씻겨줄 때가 기분 좋더라.”
“씻겨 줄 때가 기분이 좋다고?”
“응. 내 손으로 오빠를 씻겨서 깨끗해지면 마음이 뿌듯해.”
“이상한 취미네.”
“이상한 취미 아니야~!”
이만석의 농담에 하란이가 가볍게 손으로 등을 한 대 찰싹 하고 때려버렸다.
찰싹!
젖어 있는 상태라 그런지 맞는 소리가 찰지 게 울려 퍼졌다.
“젖은 몸 때리면 따갑잖아.”
“놀린 벌이야.”
그러고는 다시 하란이 이만석의 몸 구석구석을 다시 정성스레 때를 밀어갔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한 참 때를 밀던 하란이 샤워기를 틀어 밀었던 자리의 때를 씻겨 내었다.
“나 오빠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몰라.”
다시 때를 밀기 시작한 하란이 나긋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오빠를 만나지 못 했다면 어땠을까 떠올려 봤는데 생각하기도 싫더라.”
그날 한 참 방황할 때 우연히 클럽에서 이만석을 만나지 못 했다면 자신은 아직도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석을 만남으로써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다시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달랐지만 언제나 헤실 거리며 자신을 보고 기뻐 손을 흔들던 이만석을 볼 때면 하란이는 그렇게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때와 비교하면 이만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듬직한 남자로 느껴져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다 오빠 덕분이라고 생각해.”
이만석은 때를 밀어주면서 말하는 하란이의 이 얘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에 찾아갔을 때 윤정호 의원이 내막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란이의 어머니는 친 어머니가 아니고 오빠들도 배다른 오빠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오빠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고 혼자 동떨어진 채 생활을 해왔다고 했었다. 다 자신이 잘 못해서 그런 거라며 사랑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에 자신이 친 딸이 아니라는 것을 듣고는 심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 오빠와 어머니가 지신에게 차갑고 쌀쌀맞게 구는지 그때서야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그에 대해서 물었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로 들어났다.
당연히 하란이는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자신을 속여 온 것에 상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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