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1화 〉 551화 실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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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아무 느낌도 없는데 오빠의 수행 비서로써 이렇게 함께하게 된 건가요?”
“수행비서와 느낌이 무슨 상관이지.”
“수행비서라고 하면 적어도 그 사람을 보좌하고 위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수행비서잖아요.”
“......”
“그리고 내가 보기엔 안나씨는 수행 비서를 할 스타일은 아닌 것처럼 보여요.”
오랫동안 본 것은 아니지만 하란이가 보기엔 안나는 별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것처럼 보였다.
성격도 얼음장처럼 차갑고 말투 또한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경호원이라면 모를까 현장에서 보좌를 해야 하는 수행비서로써는 잘 맞지가 않았던 것이다.
“집을 나갔다가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도 그렇고, 정말로 오빠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을 리가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 이예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
“아니요.”
안나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란이 바로 대답을 했다.
“안나씨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해요. 말수도 적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장담 할 수 있어요.”
“......”
“차갑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안나씨지만 그런 안나씨라도 오빠라면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해요.”
“과대평가는 좋지 않아.”
자신도 이만석이라면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는 하란이의 장담에 안나가 이번엔 정말로 나무라듯 말했다.
그 정도로 자신이 흔들린다면 CIA에서 지금까지 해결사로서 생활해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현장에서의 작은 실수는 큰 일을 그르칠 수가 있는 것이다.
“과대평가가 아니예요.”
그러자 역시나 이번에도 하란이는 생각 할 것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빠라면 세상 어떤 여자라도 유혹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제 말을 믿지 않더라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만큼 오빠는 그 어떤 남자보다 매력적이고 멋있거든요.”
하란이는 정말로 이만석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라도 유혹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을 두고 콩깍지가 씌었네 집착이네라고 해도 하란이는 자신의 생각을 굽힐 마음이 없었다.
그만큼 하란이에게 있어 이만석은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 멋지고 믿고 기댈 수 있는 듬직한 남자였다.
그러니 아무리 인기 아이돌 가수인 세린이라고 해도 이만석에게 빠져 들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빠라면 그럴 수 있다는 게 하란이의 생각이었다.
대화가 끝난 후 하란이가 다 먹은 찻잔을 가지고 싱크대로 향했다.
안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나도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안나는 조금 전에 하란이가 한 말에 대해서 어이가 없었다.
여자라면 이만석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그 말이 너무나 맹목적으로 들려왔다.
안나가 보기엔 하란이라는 저 여자는 맹목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만석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확실히 특별하긴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물론 외모도 잘생겼다. 말 그대로 이성으로써 첫인상은 호감 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나는 그런 연애나 사랑에 큰 관심이 없는 여자였다.
그래서 하란이의 말이 조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 느낌이 없다는 얘기엔 확신을 하지는 못하겠어.’
하란이가 물어보았을 때는 아니라고 했지만 안나는 사실 그에 대해서 정말로 아니라고 확신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에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이 많아진 것만 해도 그랬다. 그리고 그대부분의 생각이 이만석과 관련된 것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 느끼게 된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이런 사색에 잠기는 자신을 보고 안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놀랐다.
원래의 그녀는 사색에 잠기거나 감상에 젖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과는 당최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많이 나태해졌어.’
그런 자신을 두고 안나는 이런 평온한 생활을 하게 되어 마음이 느슨해 진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3시가 다되었군.”
“2시간 정도 같이 있었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보며 세린이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정말로 즐거운 시간은 금방 흐른다는 말이 체감이 된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까지 함께 있고 싶은데 내일이 콘서트니 푹 쉬라며 다시 숙소에 데려다 준 것이다.
“아쉬워?”
아무리 봐도 아쉬운 얼굴이었다.
“솔직히 그래요.”
세린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내일 또 보잖아.”
콘서트가 내일인 만큼 오늘 헤어진다고 해도 내일 다시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선 아는 채를 할 수 없잖아요.”
이만석이 내일 콘서트에 온다고 해도 결국엔 아는 척을 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보는 사람들의 눈이 많았고 그러다 멤버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주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둘이서 만나는 것과는 천지차이라 할 수가 있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그럼 다음에 또 둘이서 볼 수 있는 거예요?”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 말에 세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시간 봐서.”
“네...”
하지만 이내 다시 풀이죽어버렸다.
“너 그런 모습 팬들이 보면 기절한다.”
“괜찮아요. 오빠하고 저 둘 뿐이잖아요.”
수줍게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세린을 보고 이만석이 작게 피식 거렸다.
기분이야 오후 늦게까지 같이 있고 싶기는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이젠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가면 푹 쉬어.”
“네, 오빠도 조심해서 돌아가요.”
그러고는 세린이 이제 가려는 듯 안전벨트를 풀었다.
“어라?”
“왜 그래.”
“이게 안 당겨지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조여 있는 안전벨트를 풀려고 버튼을 누르고 빼서 당겨도 어디에 걸린 것인지 전혀 당겨지지가 않았다.
“안 당겨져?”
“네, 뭔가 걸린 것 같아요.”
두어 번 더 당기는 시늉을 해보지만 여전히 줄이 꿈적도 하지 않는다.
그에 이만석이 확인을 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틀어 안전벨트의 줄을 잡았을 때 세린의 얼굴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쪽!
“저 그럼 진짜 가볼게요!”
순식간에 뺨에 입을 맞춘 세린이 이만서이 뭐라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가 그대로 숙소 쪽으로 서둘러 달려가 버린다.
“노렸군.”
안전벨트가 갑자기 고장이 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여겨 확인해보려 하니 역시나 고장이 아니었다.
‘준비를 했구만.’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어보였다.
“당돌한 면이 있어.”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 같더니 애가 당돌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
“하긴 남자 화장실에도 대놓고 들어올 정도니.”
여러모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또 해버렸다!’
골목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세린이 손으로 뺨을 수줍게 감쌌다.
전에처럼 갑자기 뽀뽀를 하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떨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엔 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빨리 헤어지게 되어 많이 섭섭해 마음을 크게 먹은 덕분이었다.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골목 너머로 아직도 차량이 서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세린은 그 마음을 애써 눌러 참았다.
‘이미 해버렸는걸.’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기발한 행동이었다. 안전벨트가 풀리지 않아서 잠시 봐달라고 하고 가까이 다가왔을 때 뺨에 뽀뽀라니.
“조금씩 힘내는 거야.”
드라이브를 하였다고 해도 진한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빨리 헤어졌는데 이번 뽀뽀로 인해 그나마 마음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세린의 발걸음은 성공적인 뽀뽀로 인해 상당히 가벼워졌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3시 반이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한 이만석을 두고 하란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표 받고 식사만 했는데 늦게 올 이유가 없잖아.”
“표라면 콘서트?”
“응.”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선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밥은?”
“안나씨하고 둘이서 먹었어.”
“그래?
“식사는 제때 제때 챙겨먹어야지.”
“하란아 오빠 물 좀 받아 줄래?”
“오빠 목욕 하려고?”
“응.”
“알았어.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안방으로 향하자 하란이 생기 띤 얼굴로 욕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만석이 빨리 돌아와서 하란이의 기분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아보였다.
탕 안으로 들어간 하란이가 물 온도를 적당히 맞춰놓고는 욕조에 채워 넣었다.
더운 여름에 온탕에 들어갈 만 하냐고 물어 볼 수 있지만 이만석은 뜨끈한 물에 몸을 찜질하며 땀을 빼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어서 계절을 따지지 않았다.
“영화라도 한 프로 보고 올 줄 알았는데.”
점심 먹고 영화 안 프로 보고 가볍게 대화 좀 나누다 보면 저녁때이니 하란이는 이만석이 밤에 올 줄 알았었다.
헌데 생각 이상으로 예상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뜻밖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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