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5화 〉 545화 실행력
* * *
“그렇습니까?”
이만석의 입가에 작은 쓴웃음이 지어졌다.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분위기가 형성이 됐어. 레임덕 이후로 오랜만에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 받고 있지 않나.”
스스로 레임덕이라고 말 하는 것 자체가 뼈아픈 일이지만 현실이 그러했으니 김현수 대통령도 순순히 인정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정치권을 움직일 건지 보았더니 박동구라는 초선 의원이 나섰더구만.”
최근에 제일 핫한 정치인을 꼽으라면 당연 박동구일 것이었다.
여론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민감한 문제를 두고 먼저 이일을 직접 거론하는 것에 꺼려하던 와중에 대놓고 날이 서린 한 마디를 던지며 찻잔속의 태풍을 일으킨 박동구는 검색어 순위에 순식간에 오르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거기다 윤정호 의원까지 그 후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면서 대세를 이끌었고 지금에 가서는 북한을 어떻게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올 것인지, 개방을 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 둘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론뿐만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젠 제대로 화두가 잡아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남은 건 정부의 생각과 행동이었다.
아무리 여론이 높아도, 정치권에서 대화를 나누어도 결국에 정부가 나서서 일을 추진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청와대에 하루가 다르게 시선이 몰리고 있으며 기자회견이 열려 어떤 식으로 입장발표를 해올지 귀를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네가 물론 주도했겠지?”
“그렇습니다.”
“박동구 그 친구 보니까 김철중 의원의 사위더구만.”
“유능한 인재죠.”
“알아보았는데 능력은 있어 보였어.”
초선의원들을 모아 정치개혁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혁신을 내세워 젊은 아이콘으로써 제대로 입지를 구축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 보더라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사내였다.
“정치권을 띄우기 위해서 내세운 게 전부는 아닙니다.”
이만석은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했다.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소린가?”
“북한에 갈 때 박동구를 데려갈 생각입니다.”
“그 친구를?”
“놀랐나 보군요.”
김현수 대통령은 초선 의원이자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그를 내세워 말을 꺼려하는 중진 의원들을 압박할 수 있게 내세운 것으로 알았는데 북한에 데려간다고 하는 얘기에 놀란 마음이 일었다.
“마음만 먹으면 제가 당장에라도 이 나라를 어떻게 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텐데 이정도의 일을 심각하게 보고 계신단 말입니까. 정말로 독재를 해서 좌지우지 하려 했으면 이런 시간이 걸리는 일도 꾸미지도 않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키우려는 거지?”
“내실이 튼튼하고 골격이 바로서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듯이 이 나라또한 그렇게 되야 내가 마음 놓고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자네의 말에 충실히 따르는 자를 대통령에 앉히겠다는 의유인가?”
“그렇지요. 윤정호 의원도 물론 잘 하겠지만 그 후에 대통령으로써 적당한 인물을 찾아보니 박동구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마음에 들기도 하니 키워보려고 하는 겁니다.”
결국엔 독재를 하지 않겠다 뿐이지 결국엔 바지사장처럼 박동구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놓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혹시 제가 세계3차대전을 벌여 혈 난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김현수 대통령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만석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
솔직히 그러한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대답이 없으시니 맞는 것 같군요.”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만석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자네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이만석이 박동구를 새우겠다고 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입장에서 순식간에 대세론을 부각 시킬 수 있는 힘을 지고 있는 게 이만석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곧 정보가 힘이고 권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론을 잡는 사람이 곧 권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독재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언론 길들이기가 1순위인 것이다.
“참... 그전에 저 혼자 북한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뭐라고했나.”
“저 혼자 북한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잘 못 들은 건가 싶어 재차 물음을 던진 김현수 대통령은 그대로 몸이 경직 되고 말았다.
어째 만날 때마다 이렇게 놀라운 얘기들만 가지고 오는지 이렇게 충격을 받아서야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 것 같았다.
“자네 혼자서 다녀오겠다고?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지?”
북한이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그곳을 편하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는 이만석의 모습에 김현수 대통령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지금 자신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와 닿지 않을 정도였다. 북한을 한 번 다녀오겠다니, 이보다 충격적인 말이 있을까 싶었다.
“일단 국내 상황을 보면 분위기는 다 잡혀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이제 잘 말만 하시면 협상에 들어갈 준비는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북한입니다.”
“제대로 말해보게.”
정신이 번쩍 드는 얘기가 아닐 수 없어 김현수 대통령의 얼굴은 상당히 심각해져 있었다. 물론 이만석의 능력을 생각하면 다녀올 수 있기는 할 것이다. 순간이동 비슷한 그 초능력을 이용하는데 거리의 제약이 없다면 북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다만 거기에 가서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김정일을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알고 있다시피 국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북한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사들만 찾아서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긴 하지.”
북한처럼 자국 내에서만 사이트에 접속을 할 수 있게 차단해 놓은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들어올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어를 할줄 알고 한글만 읽을 수 있다면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사를 검색하고 찾아 볼 수가 있는 일이다.
“지금 보면 북한은 가만히 있는데 한국만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는 상황이지요. 물론 바란 일이긴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달아오른 것 같습니다.”
청화대의 입장 발표에 시선이 모이기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만큼 시기상으로 보면 참으로 여론이 빠르게 움직였다고 봐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엔 급한 쪽은 한국이 되는 것이지 북한은 아니게 된다는 겁니다.”
“그에 대해선 나도 우려를 느끼고 있긴 하네.”
김현수 대통령이 아직 대변인을 내세워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정부의 입장을 보고 북한이 또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올지 알 수가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면 결국에 한국이 원하고 급하게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어 이쪽에서 지고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놓이게 된다.
협상 자체가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는 입장에서 해야 제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지 지고 들어가서 하는 것 자체는 손해를 볼 공산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제가 비공식적으로 한 번 다녀오겠다고 하는 겁니다.”
“목을 치기라도 하겠다는 셈인가?”
“급변사태를 바란 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중국이 개입해 들어올 수가 있었다.
이쪽에서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그러니 이만석은 먼저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 하게 좀 만나고 오겠다는 얘깁니다.”
“김정일을?”
“그럼 누굴 만나겠습니까.”
“......”
참 너무 놀라서 말이 다 안나올 지경이었다.
“급변사태는 일어나지 않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믿고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지요.”
이만석은 마치 친구집 다녀오는 것 처럼 말한다.
“자넬 보면 이 사안에 대해서 그동안 몇 십 년 동안 역사적 숙명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이 나라의 분단 역사가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 같네.”
지방 출장에 한 번 다녀오겠다는 듯이 북한에 한 번 다녀오겠다, 김정일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는 이만석의 모습은 어느 누가 들어도 전혀 현실성으로 와 닿지 않을 이야기였다.
농담으로라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인 것이다.
정말로 혼자서만 딴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현수 대통령은 저 말이 전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만석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자가 어떤 자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농담으로, 허황된 말로 생각 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인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