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1화 〉 541화 실행력
* * *
그렇게 말한 이만석이 다시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지나는 다시 침묵을 지키며 기다렸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만석의 밝은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쫒아왔던 그런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만석의 멋진 모습이 아니라 알지 못하고 있던 그의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그런 것도 알지 못하면서, 멋진 모습만 보고 좋아한다면 그건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래서 지나는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침묵을 지키며 기다렸다.
“어릴 때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성격도 그렇고, 다른 것들도 다 그랬죠.”
이만석의 얘기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차이링에게 해주었던 대로, 이만석은 숨김없이 지나에게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무얼 하며 지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얘기가 길어질수록 지나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해갔다.
특히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서 얘기는 상당히 충격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서 구치소에 가고 어머니와 둘이 있었을 때의 얘기에선 지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고사하고 과자하나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보기만 하다 나왔다는 것은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지나는 이만석 앞에서 라면 한 봉지에 1200원이면 공짜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고 했던 자신에 대해서 상당히 후회스러웠다. 씁쓸한 정도를 넘어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다름없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만석이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런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았을 줄은 지나는 전혀 생각지 못 했다.
“하지만 그 소소한 행복도 오래가질 못 했죠.”
이만석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나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에서 풍족하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떻게 저런 삶을 살았을지 전혀 예상을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행복과 비교도 안 되는 소소한 행복도 오래가질 못 했다는 말에 지나는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왜... 오래가질 못했다는 거예요?”
“구치소에서 아버지가 돌아왔으니까요.”
이만석의 아버지가 어땠는지 이젠 잘 알게 된 지나로써는 돌아온 것만으로도 행복이 끝났다고 하는 말에 바로 공감이 되었다.
역시나 이어지는 이만석의 말대로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들어왔고 다시금 가정폭력이 이어졌다.
헌데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만석을 폭행하던 아버지를 말리던 어머니는 그대로 뒤로 밀쳐졌고 식탁 모서리에 크게 부딪친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머리에선 피가 흘렀고 그 모습에 당황한 아버지는 어찌 할 줄 몰라 했다고 했다.
결국 늦은 대처로 인해 119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 했고 어머니는 그 뒤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셨다고 말해주었다.
“......”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지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아니 하지 못한 것아 아니라 말 자체가 나오지가 않았다.
너무나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목도리를 껴안고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죠.”
영정사진 앞에서 이만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자신이 잘 못했다고, 잘 할 테니까 돌아오라며 많이 울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장례식이 지나가고 무덤에 관을 안치 시킬 때 이만석은 목도리를 그 위에 얹혀 주었다고 했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아서였다.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것이 바로 그 목도리 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이만석은 친척집에 맡겨졌고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처음엔 잘 해주던 사람들도 시간이 자나면서 부담스러워 했고 이만석은 외할머니 댁에 다시 맡겨지는 등 오랫동안 제대로 한 집에 정착하지 못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군대에 입대 했고 제대 후에도 나름 열심히 살며 지내왔다고 했다.
어느새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두 개나 더 추가 되었다, 얘기를 하는 중간에 두 개비를 더 꺼내 피웠던 것이다.
“미안해요, 민준씨.”
얘기를 전부 다 들은 지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니씨가 미안 할 게 뭐 있습니까.”
“그래도... 미안해요.”
1200원이 공짜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는 그 말이 이젠 얼마나 그에게 상처가 되었을지 알 것 같았다.
경제적 어려움뿐만이 아니라 그런 아픈 일이 있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 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이만석에게는 너무나 미안했다.
‘바보같이.’
그동안 이만석을 사랑한다며 비싼 팔찌나 이것저것 돈을 써가며 선물을 해주었던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한심하고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니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되니 해어지자고 했던 것도 다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설사 그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지나의 마음은 그렇게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옷걸이로 이동해 손수건을 꺼내서 다시 돌아와 지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만석이 주는 손수건을 받아든 그녀가 흐르는 눈물을 천천히 닦아 냈다.
지나의 우는 모습을 보니 이만석은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물론 이일로 인해 조금은 좀 더 마음을 넓게 가질 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었다.
“민준씨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아니에요. 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저 민준씨의 화려한 면만 보고 쫒았던 거예요.”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꼭 눌러서 닦아낸 지나가 고개를 들어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전 아직도 멀었나 봐요.”
그의 잘나고 멋있는 면만을 보고 반한건 맞았다.
지나가 보기엔 이만석은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능력도 있고 못하는게 없는 그런 남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함께하는 여자들만 봐도 그렇다.
전혀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
“멀었다는 게 혹시 절 좋아하는 걸 뜻하는 겁니까?”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지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모르고 그저 제 생각만 했던 거예요. 결국엔 민준씨가 해어지자고 했을 때도 내가 괴로워서 그런 선택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아요.”
이만석이 이제 그만 정리하자고 했을 때 지나는 가슴을 심하게 울렸다.
믿기지가 않아 농담으로 여겨졌는데 이게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며 여기서 끝내자는 이만석의 말은 심한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선물해준 팔찌를 테이블에 놔두며 돌려준 후 떠나간 후에 지나는 충격에서 해어 나오지 못했고 결국엔 괴로움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만석을 그만큼 가슴에 품게 된 것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그가 한 번이라도 더 자신을 생각해줬으면 하는 마음, 그것도 솔직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결국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다 자신의 마음이 그만큼 크기에 저지른 행위였지만 상처를 주면서 까지 그에게 자신이 남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난 내 생각만 한 거예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이만석은 닦고 있는 손수건을 지나의 손에서 가져와 직접 닦아주었다.
“지나씨는 이기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내 얘기를 듣고 가슴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그동안 절위해 지나씨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도 다 보았는데 그 모든 행위들이 이기적이라고 하면 안 되죠.”
“하지만 민준씨를 위해서 하는 행동들도 그만큼 나를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순간 이만석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지나씨는 재밌는 말을 하는군요.”
“네?”
“그렇게 보면 사랑을 하는 연인들은 다 이기적인 사람들인가 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나 세상에 화자 되는 로맨스도 다 개인적인 욕심에서 하는 행위들이네요.”
“그건 어니에요.”
나머지 오른쪽 눈까지 조심스럽게 다 닦아준 이만석이 손을 내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엔 그렇게 들리는데요. 지나씨가 저에게 한 모든 행위들이 다 자기 욕심이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하면 지나씨가 말한 저에 대한 마음은 진실 된 것이 아니었나 보군요.”
“......”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서 이만석이 다시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쥐어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