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9화 〉 539화 실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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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말에 콘서트를 한다는군요.”
“이번 달 말이면 내일 모래잖아.”
“그런 셈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과는 다르게 하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콘서트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는 소리야?”
“전에 듣긴 했는데 오늘 확인 차 전화 한 거야.”
“확인 차?”
“와줄 수 있냐고.”
“뭐?!”
“진짜에요?!”
“자기에게 말이니?”
놀라거나 이채를 띤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에도 이만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찻잔을 들어 코로 향을 마시며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을 맴도는 그윽한 향과 쌉쌀한 맛이 퍼져나가며 목으로 넘기는데 미지근한 것이 확실히 좀 식은 듯 했다.
“진짜 그랬어?”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재차 물어오는 하란이의 물음에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야.”
“민준씨를 콘서트에 초대를 하겠다니 간도 크네요.”
팬들이 많이 몰려올 그런 콘서트에 좋아하는 사람을 부른다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만약 그 사실을 팬들이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아찔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후후훗...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라도 역시 여자라는 것은 별수 없네~!”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짓는 차이링의 모습에 지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언니는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지나는 차리링이 웃음을 짓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들어도 황당한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못 웃을게 뭐 있어? 그 아이가 이 사람 좋아한다는 거, 전에 이미 알았잖아?”
하지만 차이링은 오히려 지나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렇긴 하지만...”
물론 지나도 알고 있기는 했었다.
“그래서 오빠는 뭐라고 답했어?”
세린이 초대를 했다고 해도 역시 중요한 것은 이만석의 마음이었다. 아무리 초대 했다고 해도 이만석이 거절을 했다면 말짱 꽝인 것이다.
“간다고 했어.”
“정말?!”
“진짜에요?”
“사실입니다.”
두 여인의 놀라는 모습에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건 이미 예상을 하고 있던 바였기 때문이다.
“당신만 초대 한 거지?”
“어.”
“흐응~ 역시 그렇구나.”
세린이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결국엔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는 이기적인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전에 이 자리에서 이미 자신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렇다는 것은 그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빠 어쩜 우리 앞에서 그렇게 간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너무해요!”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하란이와 새침하게 바라보는 지나의 모습에 이만석이 다시 포크로 사과 하나를 찍어서 베어 물었다.
아삭!
입안에서 퍼지는 아삭한 식감과 단물의 맛을 느끼며 씹어서 삼킨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보니까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더군.”
“생각이요?”
“난 별 생각 안했는데 혼자서 고민을 참으로 많이 한 것 같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가기로 한 거야?”
“따로 티켓까지 준비를 해놓은 것 같은데 한 번쯤 가는 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민감할 수 있는 얘기를 저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남얘기 하듯 할 수 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자기 콘서트 가본 적 있어?”
“아니.”
“그럼 한번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거야.”
“언니!”
“난 그렇게 반대를 표하거나 거부 할 필요는 없다고 봐.”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
지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물어오자 차이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이 세린이라는 그 아이를 만나고 온다고 해서 우리에 대해서 마음이 달리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하지만...”
“또 한 사람 늘어나는 거에 대해서 신경이 쓰인다는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흔들린다면 그이 옆에 어울리는 여자가 아직 되지 못 했다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전에 말 했잖아?”
“언니가 한 말은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더 늘어나는 건 좀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지나에 이어 하란이 또한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말 했다는 게 뭐지.”
“별거 아니야~”
“뭔데?”
다시금 물어오는 모습에 차이링이 두 사람이 같이 나갔을 때 하란이와 지나에게 얘기해 주었던 것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 주었다.
“삼첩 사첩 거늘였다고 했거든.”
“첩?”
“왕이나 영웅들 말이야.”
대충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저 말만 들어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 이만석의 입고리가 살며시 위로 올라갔다.
“그거 나쁘지 않은 얘기로군.”
“오빠!”
“민준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게슴츠레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에 이만석이 남은 사과 반쪽을 입에 넣고 씹어 먹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가볍게 말하는 이만석과 다르게 그 말을 드는 그녀들에겐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야...”
침대에 누워 있는 세린의 얼굴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앞자리가 매진이 될 까바 미리 한 장 구해놨는데 그게 헛 일이 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전화를 하는 데만도 참으로 긴장이 많이 되었다. 혹시 바쁜데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닐까 생각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바쁜 시간 때에 전화를 건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콘서트에 오겠다는 확답을 듣게 된 것이 중요했다.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생각을 해본다고 했지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날에 일이 있어 오지 못한다고 한다면 상당히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실 전화를 거는데 망설였던 이유 중에 하나가 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다.
헌데 다행이도 이만석은 콘서트에 가겠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물론 티켓을 구해놓은 덕분에 내일도 얼굴을 마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 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있을까?’
이만석이 콘서트에 오겠다고 하자 세린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오겠다고 한 것은 아닌지, 실은 그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떡해...!‘
그러다 문뜩 전에 이만서과 모텔에서 몸을 섞었던 것이 떠오라 얼굴이 화끈거려 주체 할 수가 없어 베개 옆에 기대어 있는 곰인형을 껴안은 채 얼굴을 파묻으며 발을 굴렸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웠고 믿기지가 않았다. 대담하게도 어떻게 처녀를 주겠다는 얘기가 나온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에게 놀라워했다.
곰인형에 얼굴을 파묻었던 세린이 다시 몸을 옆으로 뉘인 채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얼굴이 그려지며 생생하게 떠오른다.
“빨리 보고 싶어.”
내일이면 볼 텐데 그 때까지 시간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졌다.
확실히 신겨을 쓰고 기다림이 클수록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도 세린은 너무나 행복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콘서트에 오느냐 마느냐 였는데 오겠다고 했으니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던 그 날부터 세린은 계속해서 이만석이 정말로 올까 오지 않을까에 대해서 지금까지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콘서트날짜가 다가올수록 공연보다도 이만석이 올지, 않올지에 대해서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행복해~!’
이대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이란 게 참 생각대로 따라 주지가 않네.”
온탕에 반쯤 몸을 담구고 있던 지나가 한 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만석이 자신을 다시 받아 주었을 때는 질투를 하지 않고 좀 더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쉽지가 않았다. 처음으로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다보니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가 좀 더 자신을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들 때가 많았다.
오늘도 세린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또 다른 여자로 인해 작아 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라 여자 친구로써 제일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란 또한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나려 하는데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하지만 지나는 자신이 생각하고 가졌던 다짐처럼 마음이 따라오지 않고 좀 더 그를 차지하고픈 이기심만 커져가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차이링 언니 말대로 그런다고 민준씨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세린을 만난다고 해서 자신에 대한 이만석의 마음이 차갑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지는 않아다.
이만석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생각은 그렇다고 해도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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