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8화 〉 538화 실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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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조율하고 연습한다고 힘들었을 테니까. 내일은 콘서트를 대비해서 푹 쉬도록 해. 그러다 탈나면 큰일 이니까 안정이 최우선이지.”
“휴가 아닌 휴가네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휴가가 아니야.”
“그냥 농담 한 건데 너무 깐깐한 거 아니에요?”
제이니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수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연차야.”
“......”
“.....”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농담 받아 준건데 뭐?!”
순식간에 싸해 지는 분위기에 당황하며 소리치는 수찬을 두고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내는 목청이 들려왔다.
그런 멤버들을 보면서 세린은 품속에 소지하고 있는 티켓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만지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 저녁 이만석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테라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는 와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확인을 해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세린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갑자기 왜 전화를 했을지 머릿속에 떠오른 이만석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되니 그녀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오랜만에 전화하네요?]
“그렇군요.”
[바쁜데 제가 갑자기 전화 한건 아니에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작게 대답을 하며 꾸물거리며 말을 잊지 못하는 모습에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콘서트 때문에 전화 했습니까?”
[네, 네... 맞아요.]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말 더듬는 것이 다 들려왔다.
[혹시... 어떻게 됐어요?]
콘서트에 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말하는 목청만 들으면 참으로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자신은 잠시 동안 그 일에 대해서 잊고 있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쯤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이번 전화를 거는데도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거절을 하면 상처를 크게 받을 것 같았다.
자신이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지 못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더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습니까?”
[현장에서요?]
“그날 시간은 될 것 같은데 표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순간 목청이 커지는 음성에 이만석은 그녀가 흥분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만 들어도 얼마나 콘서트에 오기를 바랐는지 알만했다.
가겠다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표라면 제가 준비해 뒀어요!]
“세린씨가 말입니까?”
[네!]
“정성이 대단하군요.”
[......]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 그 순간 더 이상 폰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부끄러운가 보군.’
왜 대답이 없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만한 상황이었다.
이만석은 그렇게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었다. 자신이 흥분을 했었다는 것도 깨달았을 테니 좀 당황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시 이만석이 담배를 태우고 두 어번 연기를 뿜어 낼 때 쯤 세린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혹시 내일 시간 되나요?]
“콘서트가 내일로 변경 되었습니까?”
[그게 아니라... 저 내일은 아무 일정 없이 휴식을 취하거든요. 몸 관리를 위해서요.]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잠시 볼 수 있으신가 해서 그러는데 시간 되나요?]
“음...”
[언제 시간 나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맞출게요.]
내일 당장에 바쁘게 움직일 일은 없으니 시간이야 적당한 때에 내면 되는 일이었다.
‘어지간히도 내가 와주었으면 하는가 본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세 아이돌인 세린이 지금 한 남자를 위해서 저렇게 시간까지 맞춰서 만나러 가겠다고 하는 것을 팬들이 알게 된다면 아주 기가 차는 것을 넘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허나 아쉽게도 지금 이 자리엔 그런 세린의 팬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 있는 이만석과 그 너머의 세린 단 두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1시쯤에 보는 것으로 하죠.”
[1시요?]
“제가 숙소 근처로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괜히 저 때문에 그러면...]
“제가 가는 것으로 하죠.”
다시 이어진 이만석의 말에 세린이 결국 수긍을 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할게요.]
“저녁은 드셨습니까?”
[아직이요. 민준씨는요?]
“먹고 담배한대 피우는 중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식사를 못 할 정도로 바쁜가 보군요.”
[지금 숙소에요. 이제 먹으려고 해요.]
“맛있게 드십시오.”
[......]
바로 이어진 이만석의 말에 아까와 같이 전화 너머에서 세린의 대답이 다시금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20여초의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네, 네... 저 그럼 끊을게요.]
그러고는 이만석이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끓어버리는 세린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가.’
보면 남자와 별로 만난 적도 없는 것 같고 첫경험이었으니 더 그런 것 같기는 했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처음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는 그래도 좀 뻔뻔한 면이 있어 보였는데 몇 번 만나지 않아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만 저럴지도 모르지.’
마지막 남은 한 모금까지 깊이 빨아서 다 피운 이만석이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잠시 밤하늘을 올려보다 몸을 돌려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오빠 차 다 식겠어.”
이미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그녀들은 이미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소파로 이동해 몸을 앉힌 이만석이 포크로 사과 한 쪽을 집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이빨에 의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오물거리며 먹고 있는데 지나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니까 전화 받고 있는 것 같던데 누구에요?”
“세린입니다.”
“네?!”
“세린이라고?”
“세린이라면 전에 왔던 아이돌 말이니?”
안나를 제외한 세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이만석에게로 몰렸다.
“응.”
아삭!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을 한 이만석이 다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오물거렸다.
“갑자기 그 애가 오빠한테 왜 전화 걸었데.”
“정말로 민준씨 좋아하게 된 거 아니에요?”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엔 이미 그 아이 넘어갔어.”
“인기 아이돌가수 인데요?”
“아이돌이랑 사랑이 무슨 상관이야? 매력 적인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당여한 일이란다~”
세린 정도면 대중들에게 상당히 많은 인기와 팬 층을 보유하고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이었다. 거기다 연예계에서 활동하다보면 멋진 남자들 많이 만날 텐데 참 놀랄만한 일이었다.
‘하긴 외모만 봐도 오빠만큼 멋진 남자도 많이 없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잘 생겼다는 남자 연예인들 중에 이만석 보다 나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다. 조각미남이라는 소리를 듣는 완빈이나 강동건 같은 그런 인물들이 아니면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만 놓고 보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린이 저렇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연예계에서 활돌을 하다보면 매력적이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을 자주만나고 접하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남자들은 눈에 차지도 않고 시선도 가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정말 인가봐.’
전에 한 번 찾아왔을 때 그녀가 세린이라는 것에 놀랐기도 했지만 그래서 최근에 연락이 없어 내심 안심도 했었다. 연예인이다보니 대중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연예계에도 괜찮은 남자들이 많았으니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래주었으면 하는 게 하란이의 마음이었다.
지금 차이링이나 지나, 그리고 아직 애매한 입장에 놓여있다고 해도 엄연히 같이 살고 있는 여자였으니 안나 까지 포함하면 자신을 제외해도 3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세린까지 늘어나면 참으로 심란한 상황이었다.
옛날에는 왕이나 영웅들도 삼첩 사첩을 거느렸다며 차이링이 그런 말을 떠들기는 했어도 현시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하란이로써는 좀 심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만석을 독차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물 건너갔다지만 더 이상 늘어나는 것은 그녀로써도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오빠의 여자 친구는 나야.’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이 커플반지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었다. 차이링도, 지나도 이만석에게서 차지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커플반지였다.
내심 이만석과 맨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에 하란이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부심도 강했다.
“그런데 세린씨가 오빠에게는 왜 전화를 했데?”
하란이 전화를 한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혹시 또 만나자고 연락이 온 건가요?”
동시에 물어오는 하란이와 지나를 두고 이만석은 남은 사과 반쪽을 머자 입에넣고 다 씹어서 꿀꺽 삼키고는 포크를 내려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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