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3화 〉 533화 대야망
* * *
“들어서 알겠지만 아버지를 흉보는 얘기. 어머니가 그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서 좋을 것도 없고 나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야. 그래서 영원히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어. 그런데 그 얘기를 너에게 그날 처음 해준 거야.”
“내가... 처음이라고?”
“그래.”
“......”
설마하니 자신이 처음일 줄은 몰랐었던 그녀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조금 놀란 듯 했다.
“같은 일일 수는 없지만 넌 충분히 내가 느끼던 고통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었고 감정을 진정으로 공유를 했어. 그래서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조금 아픔을 덜어 낼 수 있었어. 진정으로 네가 날 위해 가슴 아파하던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래.”
그래서 이만석은 그런 자신의 감정을 공유 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이 있었을 그녀의 마음을 이번엔 자신이 위로해 주고 싶었다.
혼자서 마음속으로 짊어지고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얘기하는 것 자체가 또 상당히 힘들었다.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얘기를 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만석은 자신이 잘 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도 가지고 있는 상태여서 성인이 되어서도 그 고통과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말하기 힘든 일이라는 거 알고 있어. 좋은 일이 아니니까 다시 꺼내는 게 쉽지 않을 거야. 그걸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한다는 건 더욱더 힘들지. 하지만 목도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을 때 네가 날 바라보는 눈빛은 뭔가 달랐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차이링 너에게 그 얘기를 꺼내게 된 것도.”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지워진 얼굴을 바라보며 이만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어느 정도 고통을 덜 수는 있었어. 그래서 오늘 지나씨에게 얘기를 할 때 연민이 깃든 눈빛으로 바라보는 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한 거야. 그렇게 잊으면 된다고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하다고 그 일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그렇게 말한 이만석은 입을 닫았다.
다음 말을 그녀가 하기 까지 기다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맴돌았을까. 침묵을 깨고 그녀가 대화를 이어갔다.
“알고 싶어?”
“그래.”
이만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차이링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진다.
“알았어. 당신이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줄게. 다만...”
“다만?”
아까 전에 얘기를 꺼낼 때도 다만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나갔는데 얘기를 할지 말지 망설였던 것 같았다.
“이 얘기를 하게 되면 당신이 날 더럽게 보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 돼.”
“더럽게 본다고?”
“그래서 망설였어.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솔직히 말해 상관없어. 하지만 이 얘기를 듣고 당신이 날 어떻게 바라볼지 그게 걱정이 되서 망설인 거야. 얘기를 하는 것도 당신 말대로 쉬운 게 아니고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지만. 당신이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날 이제 어떻게 생각할지 그게 더 걱정이 커.”
“얘기를 듣는다고 달라지는 것 없어.”
“정말로 그럴까? 난 어릴때 격은 일이지만 나와 유사한 일을 당한 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일하면서 알게 됐어. 아무리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다 꺼림칙해 하거나 돌아선 사람이 태반이야.”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나보군.”
“솔직히 말하면 그래.”
차이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이만석에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 얘기를, 그 시절 겪었던 일을 얘기하려는 것을 망설였고 결국에 비켜갔다.
하지만 이만석은 중간에 그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 했다.
“이렇게 말하는 대도 듣고 싶어?”
“네가 봐왔던 이들과 나를 같은 선상에 놓지 마라.”
기분 나빠하는 이만석의 대답에 잠시 동안 이만석을 바라보던 차이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이만석이 알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그가 듣고 싶어 하는데 더 이상 빼기는 힘들었다.
그도 자신에게 아픈 과거의 기억을 해주었지 않은가. 그것도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것이다. 듣는 차이링도 상당히 가슴이 아팠고 마음이 울컥할 정도였다.
여기서 또 다시 뺀다면 그건 이만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젠 숨김없이 말해주어야 할 때였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아갔어. 아까 얘기했던 대로 그런 시절을 보냈어. 난 정말로 그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다였어. 높이 솟아 있는 산과 밭을 일구는 농지, 그리고 이 작은 마을이 세상의 전부였어. 배고파도 뛰어 노는 것이 마냥 좋았고, 신기한 게 정말로 많은 그런 아이였어. 너무 어릴 때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그때는 그랬어. 하지만 8살이 되던 해에 모든 게 달라 진거야.”
이만석은 차이링이 아까 전에 얘기를 하면서 비켜갔던 일에 대해서 이제 하려는 것임을 알아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던 차이링이 이만석에게 만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 일은 풀어놓게 되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런 날이었어. 동네 여자애들과 밖에서 놀다 해가 지면 집에 들어오는 거지. 그런데... 돌아오니 집에 손님이 와있었어.”
“손님?”
“응.”
고개를 끄덕인 차이링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나 봐오던 이들인데, 친근하게 인사를 올린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거야. 밖에서 뛰어 놀아 피곤했던지 곧장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걸로 기억해 늦은 저녁 시간에 아버지가 날 깨웠으니까... 잠든 게 맞을 거야. 일어나보니 그 사람들은 없었고 아버지는 날보고 갈 때가 있다고 했어. 어딜 가나고 물어도 좋은 곳이라고만 했어. 그렇게 난 좋은 곳이라는 말에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을 나간거야. 그렇게 내가 도착한 곳은 농기구들을 재어놓은 마을 뒤편의 허름한 헛간이었어.”
차이링은 이만석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씁쓸한 웃음이 더욱더 진해졌다.
“여길 왜 왔냐고 물어보니 아버지가 웃으면서 손에 사탕을 쥐어 주었어. 난 너무 놀라 손에 올려 있는 사탕만 바라보았어. 한 번 먹기도 힘든 귀한 알사탕을 쥐어주니 믿을 수 없었던 거야. 아버지는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면서 숫자를 10까지 반복해서 다시 열 번 만 새면 사탕을 또 준다는 말에 난 정말이냐고 물었고 그렇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 어둡고 무서웠지만 사탕을 하나 더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난 안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다시 나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어.”
그렇게 말한 차이링의 입가에 지어져 있던 씁쓸한 웃음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어둡고, 추운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나오라고 부르지 않았어. 그저 손에 쥐어져 있는 사탕만 꽉 지며 속으로 숫자를 샜어. 일부터 십까지 한 번 반복하면 손가락을 구부리면서 잊어먹지 않기 위해 그렇게 샌 거야. 그렇게 다섯 번 정도 반복했을 때 였을 거야. 닫혀 있던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 아버지라고 생각한 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지만 거기엔... 낮에 손님으로 왔었던 아저씨들이 있었어.”
여기까지 얘기를 들은 이만석은 차이링이 무슨 일을 당했을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 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다. 굳어 있는 이만석의 얼굴을 보면서 차이링은 떠올리기 싫은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계속해서 얘기를 풀어나갔다.
“저 아저씨들이 여기에 왜 왔는지 나는 몰랐어. 아버지, 아니 우리 아빠 밖에 있어요라고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어. 가까이 다가온 그 아저씨들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 하지만 언제나 처럼 날 예뻐 해주던 그런 손길과는 다르게 뭔가 무서운 기분이 들어 사탕 하나를 못 받아도 나가고 싶어 인사를 하고 그대로 나오려 했어. 하지만 난... 거기서 나오지 못 했어.”
그 후로 차이링이 들려준 얘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팔을 붙잡아 나가지 못 하게 막아 처다보는 그 순간 우악스런 손길로 차이링의 입을 막아 소리를 치지 못 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 명이 입고 있던 점퍼를 바닥에 펼쳐 놓고 그 위에 차이링을 눞이고는 양팔과 다리를 결박하면서 티와 바지를 벗겨냈다.
무서워서 하지 말라며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옷을 벗긴 그들은 팬티마저 망설임 없이 벗겨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성폭행은 한 명의 어린소녀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나의 거기를 혀로 빨면서도 더러운 성기를 집어넣지는 않았어. 왜 그런지 몰랐는데 나중에 팔려가면서 알게 된 거야. 상품가치가 떨어지니 그건 하지 못하게 한 거지.”
입으로, 그리고 손으로 성기를 쥐게 하고 빨게 하며 정말로 오만 짓을 다 하게 했다.
소녀였던 그녀의 샘에 성기를 박지 않았을 뿐이지 변태적인 행위는 다 시켰던 것이다.
그날 차이링은 정신의 놓아 버렸다. 아주 큰 충격을 받아서 기절한 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뒤에도 차이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는 몰랐었다. 걱정을 하는 아버지가, 자신을 팔았다는 것을. 걱정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안겨 하염없이 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차이링은 팔려 가기 까지 계속해서 그 사람들에게 헛간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해야 했다.
“너무 무서웠어. 아무것도 몰라서, 죽는 다는 것이 뭔지도 몰랐던 때여서 그냥 무서우니까, 괴로우니까 하염없이 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
“그러다 내가 10살이 되었을 때 팔려가게 된 거야. 그러다 장차오 그 분을 만났고 난 시창가로 가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여기까지 말한 차이링이 굳어 있는 이만석을 향해 평소에 늘 지어오던 미소를 다시 지으며 어두웠던 목청대신 밝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나도 당신에게 비밀이 없게 되었네? 말하기 전에는 좀 그랬는데 그래도 당신 말대로 이렇게 말하니까 후련하긴 하네.”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차이링은 밝게 웃었다.
“흐음~ 당신 계속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으니까 나 무서워지려고 하네?”
손을 든 차이링이 이만석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표정 짓 지마. 당신이 듣고 싶어 해서 얘기를 해준 거야. 아까 기분 나빠하며 나에게 말 해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날 보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와락
“어머?”
말을 하다말고 어느새 이만석의 품에 안겨든 차이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렇게 안으면 나 당황스럽잖아.”
당황스럽다는 말과는 다르게 차이링의 얼굴에 장난기 스러 운 예의 그 미소는 그대로였다.
“힘들었겠구나.”
“자기?”
이어진 이만석의 말에 차이링이 반문을 하듯이 그를 불렀다.
“괴로웠을 거다. 아주 힘들었을 거야.”
“괜찮아~ 당신 나 어떤 여자인지...”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돼.”
차이링의 등을 안아주고 있던 이만석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을 손으로 어루듯 쓰다듬어주었다.
“이제야 물어봐서 미안하다.”
그날 자신의 얘기를 듣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녀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임을 알아채게 되었다.
그녀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고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받게 되었을 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물어오지 않아고 오늘 지나와 얘기를 할 때 차이링의 연민이 깃든 눈빛을 보고 조만간에 정말로 물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때마침 그녀가 찾아와 물어봤고 얘기를 들은 지금 이만석은 심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차이링이 어렸을 때 그런 일을 당했을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8살의 나이에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을 거라고는 꿈에서라도 생각지 않은 일이다.
“많이 힘들었을 거다. 그때 죽는 게 뭔지 알았다면 죽고 싶었을 거야.”
“......”
“미안하다.”
이만석의 품에 안기어 있는 차이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맞을 거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조금씩 떨려 왔다.
“미안해.”
다시금 들려오는 말에 차이링이 그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손차이링이 이만석의 눈가를 떨리는 손으로 닦아주었다.
“왜 당신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나 괜찮아. 이런 말 들으려고 당신에게 말한 거 아니야.”
“......”
안쓰러운 눈으로 처다보는 이만석의 눈빛에 차이링이 웃음을 지었다.
“당신 이런 사람 아니잖아. 약한 모습 보이는 그런 남자 아니잖아. 그런데 왜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거야.”
“......”
“나... 괜찮아. 당신이 날 더럽게 보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해.”
“더럽지 않아.”
“응.”
“넌 누구보다 좋은 여자다.”
“그런데 왜 눈물이 고여 있어.”
차이링이 다시금 이만석의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사람들이 잘 못한 거지 왜 당신이 나에게 미안해해야 해? 그러지 마. 나 정말로 괜찮으니까...”
이만석이 다시금 조심스럽게 차이링의 등을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토닥여 주었다.
‘울면서 애써 미소 지으며 말하면 그게 더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걸 모르나보군.’
괜찮다며 자신의 눈을 닦아주며 웃음을 짓는 차이링의 두 눈에선 많은 눈물이 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