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1화 〉 531화 대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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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지나는 거울 맡에 앉아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사고가 있은 뒤로 푸석했던 머릿결이 다시 관리를 꾸준히 해온 덕분에 풍성하고 매끄러운 머릿결로 변했다.
언제나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녀였지만 이 머리가 지나에게 가장 잘 어울렸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머리를 말려가던 지나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
여전히 헤어드리이기의 뜨거운 바람이 나오며 돌아가는 소리도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틱!
헤어드라이기의 올라가 있는 가동 버튼을 아래로 내려 꺼버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
‘도대체 뭘까.’
자신의 입장에서 두 달을 본 거면 상당히 좋게 본 것이라 말했던 이만석에게 이유를 물었었다.
두 달이 좋게 본 것이라 생각하면서 왜 15일이라는 날짜로 다시 줄여서 보게 되었냐고 말이다.
그녀는 물었고 이만석은 그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었다.
지나가 바라보는 경제 불황과 시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말이다.
라면 하나를 예를 들어 질문을 던진 이만석의 물음에 지나는 자신의 생각했던 바를 그대로 알려주었다.
한 끼를 해결하는데 1200원이면 상당히 좋은 가격대였고 라면 한 봉지를 그 정도 가격대면 공짜라고 해도 다르지 않냐고 말했었다.
실제로 천원의 가치가 지나에게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너무나 풍족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 그런 1000원의 가치에 대해서 이상한 점이나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나는 자신의 생각 그대로 이만석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헌데 이어진 이만석의 얘기는 그녀로 하여금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혀 생각을 해보지 못 한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해준 것이다.
100원을 아끼려고 그보다 더 싼 곳으로 찾아 간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운 말이었다.
생필품을 사는 대 소비가 줄어든 것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쓸 것이 없어 그렇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관심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은 그것이 곧 먹고사는 중대한 문제였기에 그렇다고했다.
라면 한 봉지를 살 돈이 없어 굶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경제 불황에 해법에 대해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한다고 했다.
먹고 사는 문제, 즉 살고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 얘기들을 하는 이만석에게서 지나는 애환을 느꼈다. 이만석의 물음에 전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는 이만석의 모습은 그저 얘기를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나는 이만석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 하지 못 했다고, 몰랐다고 하는 것이 변명을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다.
1200원이면 공짜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는 말에 지어지는 이만석의 쓴웃음이 지나의 마음을 걸리게 했다.
‘그저 생각이 달라서 짓는 웃음이 아니었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대답이 나와서 그런 웃음을 짓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생각만 다르다고 그런 씁쓸한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다.
100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세일을 하는 곳을 찾거나 더 싼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웃음이 지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씁쓸한 웃음은 그런 것으로 느껴졌다.
설거지를 하면 서도, 방에 있으면서도, 샤워를 하고 지금 머리를 말리던 순간에도 지나는 이만석이 했던 얘기와 씁쓸한 웃음을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고 씹고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나는 한 가지 사실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일을 경험했던 게 분명해.’
자신이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저런 씁쓸한 웃음이, 설명 속에 애환이 깃들어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얘기만 듣고 저러한 웃음을 지을수가 없었다.
그와같은 삶을 살아온 경험이 있으니 저러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내 앞에 나타나기 전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지나는 이만석의 화려한 면 밖에 보지 못 했다.
그가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인생을 지내왔는지 알지 못 했다.
그녀가 보고 있는 이만석은, 그녀가 알고 있는 이 남자는 언제나 성공가도를 달리며 누구보다 멋지고 당당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보니 자신이 몰랐던 그의 삶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행복하고 풍족한 삶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난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지내왔는지도 몰라.’
사랑한다면서, 목숨을 던져가면서 까지 가슴에 품게 되었으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유년시전을 보냈는지 하나도 알지 못 했다.
아니,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나씨가 체감하는 경제 불황과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황은 다른 겁니다.}
자신이 체감하는 경제 불황과 시민들이 겪고 있는 불황이 무게가 다르다고 했을 때 지나는 이만석과의 거리감을 느꼈다.
지나는 이만석과 벽 하나를 두고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화려한 면만 쫒았던 걸까.’
그녀가 보고 있는 이만석은 누구보다 멋지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자였다.
생활의 궁핍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내인 것이다.
그러한 겉모습만 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지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를 사랑한다면서 진정 그의 진면목을 보려했는지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히 찹찹한 마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잠자리에 들려던 이만석은 자신을 찾아온 차이링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흐음... 슬프네? 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찾아올 수 있니?”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온 차이링이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는 이만석의 목을 긴 팔로 휘어 감더니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내 남자 내가 찾아오는데 이유가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군.”
맞는 말이었으니 이만석으 수긍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온 것 같은데.”
“흐음~!”
하지만 다시 이어진 이만석의 말에 차이링의 입에서 시무룩한 숨소리가 다시금 작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당신 말이 맞아. 오늘은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 덤으로 뜨거운 시간도 보내면 좋고~”
“물어보고 싶은 게 뭐지.”
목을 휘어 감고 있는 차이링의 두 눈을 바라보며 이만석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서두를 것 없어...”
목을 휘어감은 팔을 사르륵 풀더니 조심스럽게 이만석의 뺨을 어루만지며 타일렀다.
“왜 그렇게 서둘러~ 밤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인데...”
“......”
별 말 없이 가만히 처다보는 그 시선에 뺨을 어루만지던 차이링의 손이 멈췄다.
여전히 이만석은 침묵을 지키며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휴우~ 알았어. 그럼 바로 물어볼게.”
김이 샜다는 듯 한 숨을 내쉰 그녀가 바로 얘기를 꺼내었다.
“아까 꼬마아가씨에게 질문을 던지진 후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왜 그냥 지나친거야. 나에게도 물어보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랬지.”
“그럼 왜 하지 않은 거야?”
“네 눈을 보고 그럴 필요성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거야.”
“눈?”
“지나씨와 하란이와 다르게 넌 이미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얘기를 하는 나를 바라보는 너의 시선을 보니 더욱 그랬어.”
“흐응~ 내 시선이 어땠다는 걸까?”
전혀 모르겠다는 듯 콧소리를 내며 딴청을 부리는 차이링의 말에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연민.”
“연민?”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군.”
“내다 자기를 그렇게 처다 보았다는 얘기야? 이상하네? 난 그런 적 없는데~”
“그 눈빛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야.”
전혀 모르겠다는 듯 말하는 차이링의 말에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녀는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발칙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면 내가 또 언제 그런 눈빛을 지었다는 걸까?”
“네가 선물해주기 위해 만들었던 목도리, 어렸을 때의 내 가정사를 너에게 해주었을 때.”
“그때 내가 그런 눈빛을 지었다는 말이구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이만석이 손을 들어 아직도 한 쪽 팔로 목을 감고 있는 손을 아래로 내려 바로 해주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넌 이미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 할 정도의 일이 있었다는 얘기야. 연민을 느낄 정도의 추억이 너에게도 있었다는 거겠지.”
“그렇게 보였어?”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는 차이링을 향해 이만석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차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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