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0화 〉 530화 대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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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때우는데 1200원이면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거 아니에요?”
이만석의 입가에 작게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1200원이 공짜라...’
작년에 그는 그 1200원이 없어서, 아니 그보다 몇 백원 싸게 파는 마트에서도 라면 한 봉지를 살 수가 없어 손가락을 빨던 적이 상당히 많았다.
일당을 벌지 못 하면 그날 하루는 단칸방에서 물로 배를 채울 때가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생활이 비참해서 소주로 달랜 적이 길었고 몸을 전혀 돌볼 여력도 없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암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돈을 모아서 겨우 한 갑사서 조금씩 아껴가며 하루에 한 개비를 피는 것도 아까워하던 담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결국에 길에서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가 병원에서 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알게 되어 인생을 끝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1200원이면 공짜라거나 상당히 싸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얘기에 옛 생각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지나씨는 라면을 먹어 본 적은 있습니까?”
이만석은 그런 지나를 향해 라면을 먹어본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먹은 적은 있어요. 하지만 몸에 좋지도 않고 그보다 먹을 게 많으니 거의 손을 댄 적은 없어요. 하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지나씨의 입장에서 두 달이면 상당히 좋게 보았다고 한 겁니다.”
“자세히 얘기해 줘요. 민준씨가 뭘 얘기 하려는건지 요점을 제대로 파악을 못 하겠어요.”
답답해하는 지나의 모습에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드리죠. 정성확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어서 체감하게 됐고 저 방송을 보게 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즉 지나씨의 아버지인 회장님도 경제가 불황이라는 걸 느끼고 계시다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지나씨의 아버지가 누구죠? 정성환 회장님입니다. 그분의 지금 위치가 어디쯤이라고 보면 좋을까요.”
“위치요?”
“쉽게 말해 이 나라의 계층에서 어디에 포지션을 두고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여기에 있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보통 어느 나라든 대 부분 세 가지의 계층으로 구분을 하죠. 잘사는 상류층, 그리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력이 되고 나라의 소비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중산층, 그리고 먹고 사는데 생각을 깊이 하게 되는 서민층이 존재합니다. 헌데 거기에 하나의 계층을 보통은 더 포함해서 말들을 하곤 하죠. 상류층들 중에서도 나라의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으면서도 상위권에 존재하는 이들. 이 사람들을 흔히 1프로, 또는 그들을 최상류층으로 표현하면서 따로 분류를 하지 않습니까.”
다들 알고 있는 얘기여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니씨의 아버지는 누구나 알다시피 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세진그룹의 회장님입니다. 대기업들 중에서도 제일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기업이죠.”
한국하면 떠오르는 게 세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표기업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지금 이만석이 하고 있는 이 얘기도 누구나 알고 있는 말들인 것이다.
이 나라에서 세진보다 잘 나가는 그룹은 없다고 보아야 했다.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세계적인 부자 순위에서도 매년 이름을 올리는 분이 정석환 회장님이십니다. 다른 나라들의 최상류층에 속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누구다라고 대답이 나오는 것처럼 이 나라에서 최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세진그룹의 정석환 회장님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요?”
“지나씨가 회장님을 통해서 제대로 체감을 하였다는 말은 그런 이 나라의 대표기업이라 불릴 정도의 세진을 책임지고 있는 정석환 회장님 마져도 경기가 상당히 좋지가 않다고 느낄 정도면 그보다 하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겠습니까.”
“좋지가 않겠죠.”
“아니.”
이만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지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그럼요?”
“마트나 시장에 돌아다녀보면 알겠지만 예년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생필품을 사는데도 돈을 아낀다는 얘기잖아요.”
“돈을 아끼는 게 아니죠.”
“네?”
“쓸게 없다는 겁니다. 살아가는데 음식이나 필요한 물품을 사는데도 돈이 없어 사지 못하는 이들이 서민층에서부터 시작해 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돈을 아낀다는 것은 그만큼 최소한의 여력은 된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만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지나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1200원이면 공짜나 다름없다고 했습니까? 그런 공짜나 다름없는 원가를 주고 사먹는 것도 아끼려고 마트나 세일기간을 두어 묶음으로 사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괜찮은 편에 속할 수도 있겠죠. 그런 공짜나 다름없는 라면 하나도 사먹기 힘들어 배를 굶는 이들이 있다고 하면 믿어지십니까.”
지나는 별 다른 말없이 이만석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제가 한 달을 본 이유는 이 상황을,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어지고 있는 이걸 타개할 경제 해법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보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헌데 지금 보니 그것도 내가 길게 잡은 것 같습니다. 특집 방송으로 편성을 해달라 많은 건의를 했을 정도면 그만큼 경제 불황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저 체감 정도가 아니라 먹고 살 수 있는 길 좀 나왔으면 한다는 겁니다. 지나씨에게는 1000원에서 1200원의라면 한 봉지가 공짜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100원이라도 아끼려고 더 싸게 파는 곳으로 찾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
지나는 그런 이만석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이만석이 이런 얘기를 할 줄도 몰랐다.
그건 지나 뿐만이 아니다.
하란이 또한 이만석의 얘기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드리고 있었다.
“지나씨가 체감하는 경제 불황과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황은 다른 겁니다.”
경제가 좋지 않아 일용직을 구하기도 힘들어 작년 초 이렇게 인생이 달라지기 전에 이만석은 배를 굶은 날이 여년 때보다 많았다.
거기다 암 선고까지 받고나자 삶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상실했던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부유하게 살아도 그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배우지도 못 했으며 밑바닥 인생을 벗어난 삶을 살아보지 못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라면 하나도 사먹기 힘들어 하는 이들이 느끼는 심정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랬으니까.
이만석이 체감 하는 경제 불황은 지나가 말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언론을 움직이니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준을 이만석은 한 달로 보았다.
헌데 지금은 그 생각도 자신이 길게 잡은 것이라 생각했다.
저렇게 많은 시청자가 건의를 해서 특집프로그램으로 편성이 될 정도면 그만큼 느끼는 바가 크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체감하는 경기와 경제 여건이 좋지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이만석은 한 달을 15일로 수정을 한 것이다.
“내가 지나씨의 입장에서 두 달로 본 것이 상당히 전망을 좋게 잡은 것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상류층에 속하는 지나씨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경제가 그 정도로 안 좋다고 이야기 할 수준이라는 거겠죠. 지나씨가 느끼는 것과 실제로 시민들이 느끼는 불황은 다릅니다.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면 그것만큼 잘 못 된 것도 없는 일이죠.”
이만석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지나는 물론이고 하란이도 별다른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자신들이 바라보는 것과 이만석이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알게되었지만 그게 그녀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알 수는 없었지만 이만석의 말 속에는 뭔지 모를 애환과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이 그런 상황이라는 것처럼 그녀들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이 되었던 것이다.
‘1200원 라면 하나가 공짜나 다름없다니.’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만석은 봉지라면 하나의 가치가 어느 정도 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나씨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해서 그녀를 탓할 필요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풍족하게 살아왔고 커온 것이 환경이 그런 것이지 잘 못이 아니었다.
자신도 지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라면 한 봉지가 공짜라고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면 그렇게 받아드리고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시질 적으로 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얘기를 듣고 다시 생각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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