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9화 〉 509화 대야망
* * *
“불고기가 참으로 맛이 좋습니다.”
“그래요?”
“네, 제가 먹어본 불고기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은데요?”
그에 미소를 짓는 차이링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빠.”
“응?”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지나가 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 불고기 내가 만든 거야.”
“그런 농담 재미없다.”
지나가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민우로써는 딱 잘라 말했다.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어진 차이링의 말에 민우는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했다.
“사실이라니요?”
“방금 민우씨가 먹은 그 불고기 지나가 만든 거 맞아요.”
순간 입을 반쯤 벌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에 지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빠 표정이 별로 마음에 안 드네?”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왜...? 나는 요리하면 안 돼......?”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잘 못 하다 또다시 등짝 스매쉬가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참는 것 같았다.
“너 원래 요리 잘 못 했잖아.”
“그동안 열심히 갈고 닦고 배운 거야.”
“사실입니까?”
“정말이에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차이링의 대답에 민우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요리라고는 간단한 즉석식품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애가 지나였다.
그런데 이 불고기를 만들었다고 하니 상당히 충격이었다.
“내가 만들었다고 하니까 불고기 맛도 별로야?”
“아, 아니. 상당히 맛있어.”
“밥 다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말해요. 떠다 드릴게요.”
그 모습에 재미가 있었던지 하란이가 귀엽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하란씨. 우리 오빤데 제가 떠다 줘야죠. 그렇지 오빠?”
“으, 응... 그렇지.”
그녀들 앞에서 여동생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지는 민우였다.
하지만 이걸 지나가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얘가 언제 이런 걸 다 배웠지?’
아무래도 그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많이 노력을 한 듯 했다.
새색시처럼 말이다.
불고기뿐만이 아니라 갈비찜도 양념이 잘 배어 들어가 있어 참으로 맛이 좋았다.
반찬에 손이 절로 갔던 것이다.
별다른 얘기 없이 음식의 맛을 즐기며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낸 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만석을 따라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식사 잘 했습니다.”
“잘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가 계시면 차 한 잔 타드릴게요.”
“다들 요리솜씨가 참 좋네요.”
“거기에 나도 포함 되는 거겠지?”
“당연하지.”
불고기 말고 지나가 만들었다는 다른 반찬들도 먹어봤는데 맛이 좋았다.
요리를 잘 하는 두 명의 여자와 생활을 하다 보니 절로 실력이 는 것 같았다.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러운 놈.’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를 정돈하는 이만석을 보면서 민우는 속으로 질투가 느껴졌다.
지나를 포함해서 이 여자들이 이렇게 요리를 한다는 것은 순전히 여기 있는 이만석 때문에 그런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걸음을 옮겨 응접실로 이동해 소파에 몸을 앉히자 길게 늘어진 소파에 민우도 몸을 앉혔다.
“넌 복을 타고났어.”
“부럽나.”
피식 웃음을 짓는 이만석의 모습에 민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안나라는 여자 정체가 뭐야?”
“내 수행비서.”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냐고 물어보려고 해도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만석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무섭냐고?”
알고 있다는 듯이 민우가 하려는 질문의 요점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건 그녀가 평범한 삶을 살아오지 못 했기 때문이지.”
“뭔데 그래?”
평범하지 못 한 삶이라는 말에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눈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런 눈빛과 분위기를 가지려면 적어도 격투기나 그런 무술 같은 것을 오랜 수련을 하였거나 그와 비견 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분우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험한 삶을 살아왔다는 건데 민우가 보기엔 후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또한 합기도나 복싱과 같은 무술이나 타격기를 배우며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써 그런 쪽으로 사람들을 제법 많이 알고 있고 만나왔었다.
민우가 보기에 안나라는 그 여자는 그런 운동을 하는 쪽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해결사 였어.”
“해결사? 너처럼 조직에서 활동한다 이거냐?”
이만석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민우는 안나도 일성회에 소속되어 있는 여자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생활을 한 여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사라고 하니까 딱 그쪽이미지였던 것이다.
“CIA”
“갑자기 CIA는 왜 나와?”
뜬금없는 대답에 곧바로 반문을 했다.
“CIA에서 활동했었다고.”
“무슨 농담을...”
웃기지도 않는 말에 핀잔을 주던 민우가 이만석과 눈이 마주치자 말이 다시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짜냐?”
“그래.”
“......”
이만석의 눈빛은 전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기에 그런 것이다.
사실이라는 말을 다시 하는 순간 민우는 그대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오는 얘기들이 다 평범하지가 않다.
‘이놈 도대체 진짜 정체가 뭐지?’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그런 여자를 수행비서로 데리고 있는 이만석에 대해서 상당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알면 알수록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내가 아닐 수 없었다.
“왔어?”
그때 자신의 옆쪽을 쳐다보며 입을 여는 이만석을 보고 민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어, 언제 온 거야?’
소파의 끝 편에 어느새 안나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앉아 있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 했는데 이미 와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말하는 걸 보니 방금 전에 온 것 같은데 앉을 때까지, 이만석이 말하기 전 까지도 알지 못 했다.
그때 안나가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오싹!
무미건조한 그 눈빛과 마주한 순간 민우는 다시금 등골이 서늘해지며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남자로써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민우는 안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도저히 저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때 하린이와 지나, 그리고 차이링이 쟁반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차 한 잔들 들어요.”
차이링이 이만석과 민우의 앞에 놔두었고, 지나가 안나와 비어 있는 자리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하란이가 두 잔을 더 내려 놓고 나서 한 쪽에 놔두고는 소파에 몸을 앉혔다.
“잘 마시겠습니다.”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들이 찻잔을 놔두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민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 대화를 나누던 지나가 고개를 돌려 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오빠?”
“평소에 식사 끝나고 이런 시간을 가지나봐?”
“응. 저녁 식사 뒤엔 차 한 잔 마시며 오붓한 시간을 가져.”
“늘 쌍 있는 일이지.”
지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만석의 목청이 작게 들려왔다.
“경기도 안 좋다는데 매일 같이 책임감 있게 일하려면 힘들겠어요.”
“이럴 때 더 열심히 해야죠. 바쁘게 일하다보면 힘든 것도 모르고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갑니다.”
“정말요?”
“예.”
하란이의 질문에 민우가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보니까 정석환 회장님에 이어서 다음대 회장에 올라서는데 후계자 수업을 하다면서요?”
차이링이 관심을 드러내며 대화에 끼어들자 민우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배울게 더 많아요.”
“그래도 멋지네요~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기업의 리더가 되신다니.”
“그만큼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크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자세 좋아요. 남자로써 멋져요.”
“그렇습니까?”
“물론이에요~!”
차이링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며 뿌듯한 기분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민우였다.
‘이런...’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지나의 시선에 미우는 서둘러 표정관리를 하며 찻잔을 들어 마음을 안정 시켰다.
또다시 이걸로 지나가 아내를 들먹이며 쪼아오면 상당히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처다만 봐도 호강하는구나.’
흑요석 같이 반짝이는 저 두 눈동자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대로 빨려 들 것만 같았다.
‘저런 여자가 삼합회의 간부라니 믿기지가 않아.’
지금은 일성회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녀는 원래 삼합회의 간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단아해보이고 수줍음을 타며 가녀려 보이는 여자가 그런 험한 세상에서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다는 것이 도저히 현실로 받아 드려지지 않았다.
“다 마셨으면 일어나지.”
“응? 나 이제 한 모금 마셨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을 옮겨 안방으로 향하는 이만석의 모습에 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 마음대로네 아주.’
그녀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이만석을 따라 안방으로 향했다.
왜 들어오라고 하는지 민우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이만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온 것이지 그저 집들이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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