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화 〉 495화 흐름의 방향
* * *
“어서 와요.”
문을 열어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란이가 유모라고 불렀던 장미자 아주머니였다.
“잘 지냈습니까?”
“네... 그런데 아가씨는 어때요?”
“하란이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이네요.”
“자네 왔나.”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청에 안도의 웃음을 짓던 장미자 아주머니가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그럼 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아주머니가 물러나자 이만석이 윤정호 의원을 바라보았다.
“오랜 만에 뵙는군요.”
“그렇지... 들어오도록 하게.”
고개를 끄덕인 윤정호 의원에 말에 따라 이만석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차 두 잔 좀 내줄 수 있겠습니까?”
장미자 아주머니를 향해 윤정호 의원이 그렇게 말하자 한 쪽에 물러나 있던 아주머니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당연히 내드려야지요.”
그렇게 아주머니가 차 준비를 하러 간 사이 이만석은 윤정호 의원을 따라 서재로 향했다.
“앉게.”
상석에 자리에 앉고 그 옆에 이만석이 몸을 앉혔다.
“그래... 하란이 하고는 잘 지내고 있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가...”
이미 하란이와 그동안 몇 번을 통화를 해서 딸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윤정호 의원도 잘 알고 있었다.
“날 보고자 한 이유가 뭔가.”
“먼저 한 가지 저하고 약속해 줬으면 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약속해 줬으면 하는 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윤정호 의원이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보니까 간단한 얘기는 아닌가 보구만... 말 해보게.”
보니까 역시나 가벼운 얘깃거리를 들고 온 것은 아닌 듯 해 보였다.
“김현수 대통령이 저와 이미 만남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
전에도 그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었고 이미 두 사람이 따로 만나지 않았을 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김현수 대통령은 이만석을 꼭 잡으라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은 오랫동안 윤정호 의원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고 복잡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도대체 이만석에게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혹시나 이제부터 제 말을 듣고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약속해 줄 수 있습니까?”
“내 약속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자네가 할 말이라는 게 대통령과의 관계를 나에게 알려주기 위함인가.”
지금 이만석이 하려는 얘기가 그쪽에 관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짐작 했던 대로 이만석은 그렇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음...”
윤정호 의원의 입에서 작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 했던 것 보다 더 중요한 얘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 나에게 그런 말을 하시더군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저를 잡으라고 했다고.”
“그랬지.”
하란이와 함께 찾아왔을 때 윤정호 의원은 그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었다.
도대체 이 친구에 대해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이만석의 대답은 윤정호 의원의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더욱더 궁금증을 키우게만 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김현수 대통령이 했던 말은 분명 사실입니다.”
“......”
순간 윤정호 의원은 입을 열지 못 했다.
그에 관해서 얘기를 할 줄은 알았는데 스스로 당당히 자신을 잡아야 한다고 얘기 할 줄은 몰랐었다.
“자신감이 과하구만.”
“자신감이 아닙니다. 사실이기에 하는 말이죠.”
“아무래도 그에 관해서 얘기를 해줄 것 같은데. 그건 들어보면 알 게 되겠지.”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인지 복잡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간 보아왔던 이만석은 자신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내뱉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예사의 인물이 아닌 것만도 확실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쪽 세계에서의 일이지 이쪽과는 또 다른 일이었다.
‘들어보면 알게 될 일.’
저렇게 자신감 있게 자신을 잡아야 한 다는 말을 하는 이만석이 하려는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보기로 했다.
아마도 저 얘기를 통해서 김현수 대통령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게 분명한데 섣불리 판단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말 해보라고 입을 열려는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작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장미자 아주머니가 찻잔이 올려 있는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럽게 윤정호 의원과 이만석 앞에 잔을 내려놓고는 다시 물러났다.
“자, 이제 들어보도록 하지.”
다시 둘 만 남게 되었을 때 윤정호 의원이 얘기를 해보라 말했다.
하지만 정작 얘기를 하라고 하니 이만석은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막상 얘기를 하려고 하니 긴장이 되나?”
중요한 얘기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차 한 모금 마시고 속을 달랜 후에 말해보게.”
그렇게 말하고 탁자에 놓여 있는 잔을 든 윤정호 의원이 차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에 이만석이 입을 열었다.
“초능력을 믿으십니까?”
“뭐?”
순간 들고 있던 찻잔을 윤정호 의원을 놓칠 뻔했다.
“방금 자네 뭐라고 했나?”
“초능력을 믿느냐고 말했습니다.”
“지금 나하고 장난 하자는 건가.”
순간 윤정호 의원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초능력을 믿느냐는 말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난 그런 농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느닷없이 저런 얘기를 꺼내는 이만석의 얘기에 내심 불쾌한 기분도 느껴졌다.
갑자기 저런 얘기가 왜 나온다는 말인가.
생각 하면 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농담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그럼 농담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만석의 눈빛은 진지했다.
처음엔 어처구니없어 했던 윤정호 의원이었지만 이만석의 저런 모습을 보자 더 이상 그렇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말라던 게 이 때문이었나.’
얘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약속해 줄 게 하나 있다는 것이 이걸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초능력을 믿느냐니.’
진심이라고 해도 윤정호 의원은 내심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누가 저런 질문을 던질 거라고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앞에 두고 이런 자리에서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만석은 확실히 진지해 보였다.
“뭣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물어보니 대답해 주도록 하지.”
일단 이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어야 얘기가 진척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대답해주기로 했다.
“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믿지를 않네.”
“그렇군요.”
“정말로 그 초능력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이 나라를 포함해서 세계 각국이 가만히 놀고 있겠나? 한 명이라도 더 그런 이를 확보하려거나 사활을 걸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겠지.”
실제로 그러한 이들이 있으면 나라에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였다.
2차 세계대전 때나 냉전시기 때에 그런 초능력에 대해서 독일이나, 소련, 그리고 미국에서 비밀리에 연구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결국엔 흐지부지 지나가버렸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그런 연구가 또 진행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초능력자의 등장은 없었다.
마술이나 트릭을 이용해서 초능력자라고 자신을 속였던 이들은 있을 지언 정 실제로 그러한 능력을 보인 이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옛날에 그에 대해서 미국이나 여러 나라에서 냉전시대에 비밀리에 연구를 했다지만 난 그런 걸 전혀 믿지를 않아.”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 게 윤정호 의원이었다.
그런 사람이 초능력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믿을 리가 없었다.
“자, 이제 나에게 그런 얘기를 꺼낸 이유를 말해 주겠나.”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꺼냈는지 대답을 해주었으니 들어볼 차례다.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이유가 있기에 저런 얘기를 꺼냈으리라.
처음엔 어처구니없는 얘기에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여겨 기분이 나빴지만 이만석의 진지한 모습에 그게 농담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리는 것은 절대 마술이 아닙니다. 그 점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차분하게 말을 한 이만석이 몸속의 고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대지에 퍼져 있는 기운들이 이만석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며 주변을 감쌌다.
“뭘 하는 건가?”
뭘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는 이만석을 향해 윤정호 의원은 물음을 던졌다.
마술이라고 얘기 하는 걸 보면 그 비슷한 것이라도 보여 주려나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어봐도 별다른 대답이 없는 이만석을 향해 다시 입을 열려는 그때 윤정호 의원은 목 주변을 시작으로 시원한 느낌을 전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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