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0화 〉 490화 흐름의 방향
* * *
가까이 다가온 하란이 가만히 이만석을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싱긋 웃음을 지으며 목을 끌어안더니 키스를 했다.
갑작스러운 키스였지만 이만석은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그렇게 잠시 도안 혀가 얽히며 키스를 나누다 떼어낸 하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도 피곤할 텐데 옷 갈아입고 씻어.”
“그래야지.”
그러고는 멀어져 가는 하란이를 보면서 이만석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했던 반응과 다른데?’
혹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냐는 등 물어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게 없었던 것이다.
분명히 둘이서 무엇을 했을지 궁굼할 텐데 물어오질 않았다.
‘나에게 나쁠 거 없지.’
냉기가 풀풀 풍겼다면 생각 좀 했을 테지만 전혀 그런 게 없어 보이니 이만석은 좋게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샤워를 하기 위해 문을 알겨 나서는데 커피 잔을 들고 주방 쪽에서 나서는 차이링이 눈에 들어왔다.
“흐응~ 자기 왔구나?”
특유의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조금 전에.”
“데이트는 좋았니?”
“나쁘지는 않았지.”
“다행이네~”
걸음을 옮겨 이만석에게 다가온 차이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자기 했지?”
그리곤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뭐?”
“걱정 하지마. 나 이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좋았다면 됐지 뭐.”
커피 한 모금을 마신 차이링이 손을 뻗어 이만석을 팔을 잡아 자신의 풍만한 젖가슴 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나 정도의 완벽한 몸매를 소유한 여자는 찾기 힘들 거야. 거기서 아쉬움을 느꼈다면 말만해. 내가 만족시켜줄게.”
야릇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그녀의 말에 이만석은 뭐라 대답하지 못 했다.
“우리 자기 피곤할 텐데 얼른 샤워하고 들어가~”
한 쪽 눈을 찡긋 하고는 교태를 부리며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차이링의 모습에 이만석은 가만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었나?’
자신이 나가고 나서 혹시 뭔가 그녀들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이만석이었다.
딱 느낌이 그러했다.
샤워실로 들어가 추리닝과 옷을 벗고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기운이 빠지면서 몸이 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편안하게 몸을 담그고 있으면 그게 또 좋았던 것이다.
손으로 물을 떠서 머리를 넘기며 얼굴을 씻겨낸 이만석이 하란이와 차이링의 모습을 떠올랐다.
‘평소라면 예민하게 반응 했을 텐데.’
전이라면 다른 여자와 데이트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 했을 여인들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그 모습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행동을 한다.
‘나쁜 일이 아니면 된 거지.’
하지만 분위기를 봐서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좋게 맞이해주니 이만석에게는 다행이라 할 수가 있었다.
당연히 물어올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낼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세린의 모습을 지켜 본건데 그녀는 정말로 자신에게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저번에 방송에서 했던 그 사람이 자신임에 확실해졌던 하루였다.
세린의 팬들은 농담으로 받아드렸을 테지만 실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예인이라...’
옛날의 자신이라면 전혀 꿈도 못 꿔봤을 인물들 중에 한 명이었다.
물론 연예인에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고 해도 한 번 만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린뿐만이 아니다.
하란이도 그렇고, 지나도, 그리고 차이링 또한 전혀 평범한 여자들이 아니었다.
옛날의 자신이었다면 이들 중에 한 명을 만나는 것도 참으로 힘들 것이었다.
아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다.
“서민준이라...”
지금의 자신은 이만석이라 불리지 않는다.
서민준이라는 전혀 새로운 인물로써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만석이 아닌 서민준으로 생활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젠간 버릴 이름이다.’
언제까지나 서민준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엔 그녀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해줄 날이 있을 것이었다.
‘그게 내가 사람일 수 있는 이유니까.’
스스로 괴물이라고, 인간이 아니라는 가치관이 흔들리는 그때 스스로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자신이 이만석이라는 미음과 이름을 버리지 않아서였다.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슬픈 기억이라고 해도 어머니의 기억과 증오하지만 아버지였던 사람의 기억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건 지워 질 수도 없고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없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 그리고 기억.
그게 자신이 사람이라는 증거이자 증표였던 것이다.
외출하고 돌아온 세린은 샤워를 끝내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고개를 들이민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리나였다.
“들어가도 돼?”
“응.”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리나가 서둘러 세린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땠어?”
“뭐가?”
“얘기 시치미 때긴... 그 남자 말이야.”
“그, 그 남자라니.”
“너 만났지?”
“응?”
“그러니까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너 얼굴 보니까 상당히 상기 되어 있었어. 뭔가 붕 떠있다고 해야 하나?”
“......”
순간 세린은 손이 움찔 거렸다.
“얼굴 빨개졌다.”
자신의 말에 뺨에 열이 오르는 것을 리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너 손도 움찔 거렸어.”
얼굴만 보았던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니 세린은 더 이상 내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났지?”
“응...”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찾아 들어간거야? 초인종 눌렀어?”
상당히 궁금한 모양인제 리나가 한 번에 여러 진물을 던져왔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니? 만났다며.”
“그게 아니라 초인종 누르고 한 거.”
“그럼?”
“우, 우연히 만났어.”
“우연히?”
“응.”
고개를 끄덕인 세린이 헤어드라이기를 끄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리나에게 몸을 돌려서 바라보았다.
“나도 놀랐어.”
“놀랐다니?”
“대문 앞에 서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그 사람이 나왔어.”
“그 사람이라면 서민준?”
“응.”
“진짜?!”
리나가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기막힌 우연이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연히 아닐 수도 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우연이라고 했다가 이번엔 그렇지 않다는 말에 리나가 이해가 가질 않는 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는 그럼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을 거라는 얘기로 들렸다.
세린은 그런 리나를 향해 간략하게 그 전에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세린이 해준 얘기를 전부 듣고 나서야 리나는 우연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들어가서 너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면 확인해보러 나왔을 수도 있겠네~”
수긍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네가 봤다는 그 여자 차이링이라는 여자가 아닐 거야.”
“그럼?”
“나도 아는 사람이거든.”
“언니가?”
놀란 표정으로 반문을 했던 세린이 순간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언니가 말했던 지나라는 여자야?”
“맞아.”
“그랬구나...”
하긴 그 쪽에서 활동했다는 차이링이라고 보기엔 뭔가 분위기가 산뜻했다.
전혀 암흑가에서 지냈던 여자로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네? 어떻게 지나 언니가 집까지 찾아갔데? 그렇다면 알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대박...!”
리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믿기지가 않았다.
집에 찾아갈 정도면 서민준이라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팔짱을 끼며 연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는 것을 그걸 감내하고 있다는 말이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가만... 그렇다면 너도 혹시 그 집에 들어갔어?”
만나서 늦게까지 같이 있었다면 집에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갔지?”
재차 질문을 던지는 리나를 향해 세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을 하기엔 티가났기 때문이었다.
“응...”
“대박~!”
입으로 손을 가린 리나의 두 눈이 크게 커졌다.
지금가지의 얘기만 들어도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도가 대단하다.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는 곧 차이링이라는 여자와 지나까지도 함께 만났다는 얘기가 된다.
“얘기해봐. 어떻게 된 거야? 세 사람이 그럼 마주한 거야? 웬일이니 진짜.”
놀라움을 감추지 못 하는 리나의 모습에 세린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베개 하는 가져와 끌어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본격적으로 얘기를 들어보겠다는 듯 해 보였다.
그런 리나의 반응에 세린은 일에 대해 얘기를 해줘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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