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6화 〉 486화 흐름의 방향
* * *
‘망설이고 있군.’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말하기 상당히 망설이는 듯 했다.
긴장을 하는 건 결심이 섰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갓길로 빠져달라 하였지만 말하기는 힘든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런 세린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만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습니다.”
이만석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일까.
잠시 동안 말도 못 하고 바라보기만 하던 세린이 드디어 자그마한 입술이 벌어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오빠 사랑해요.”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긴장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세린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황이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린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 소중한 것을 드리고 싶어요.”
“예?”
소중한 것이라는 얘기에 이만석은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하고 말았다.
상당히 도발적인 발언이어서 이만석 역시도 놀랐던 것이다.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얼굴이 붉혀진 채로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이 말을 하는데 상당히 부끄러웠고 떨렸지만 피하지 않으려 그러는 것 같았다.
처음엔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던 이만석은 거절 하지 말아달라며 얼굴을 붉히는 세린을 보면서 그게 뭔지 깨닫게 되었다.
“세린씨.”
어느새 이만석의 입가에 웃음은 지워져 있었다.
이 20살의 갓 성인이 된 여자애가 지금 자신에게 대범한 말을 한 것이다.
“갑자기 결심한 게 아니에요.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전 까지는 함부로 남자와 사귀거나 만나지 않겠다고. 이건 연예인이 되기 전부터 가지고온 제 생각이에요.”
속으로 담아두었던 것을 말하듯 마음을 전했다.
“그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순간 세린이 팔을 뻗어 이만석의 손을 감싸 잡았다.
“저 겨우 말한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고백을 받았지만 한 번도 남자와 만난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제게 고백을 한 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손을 잡고 있는 세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다고 떨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용기를 내서 전하는 말이다.
“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돌아다니면서 느꼈어요. 내가 얼마나 이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지. 막연하게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저 가볍게 하는 말들이 아니다.
“찾아보면 저보다 좋은 남자는 많습니다. 아직 세린씨가 어려서...”
이만석은 마치 거리를 두려는 것 처럼 계속해서 예를 갖춰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이만석의 말을 자르고 반론을 한 세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않다구요. 20살이면 민준씨에게 어린 나이로 보일지 모르지만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좋고 나쁜 게 뭔지 생각할 수 있는 나이에요.”
세린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저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히 구분을 하려고 그런다는 걸.
저번에 만났을 때는 생일이 지나기전 19살이고 그때는 아직 어리다고 하였다면 수긍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20살에 생일도 지난 성인이었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였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저택에서 보았던 여자들이 떠오른다.
하나같이 전부다 예쁘게 생긴 미인들이었다.
특히 뭔가 기품이 느껴지는 커트한 단발머리의 그 여자는 예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뭔가 한 폭의 그림 같은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여자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고 있으니 세린은 자신이 마음에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를 그녀의 팬들이 들었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 얘기였지만 다행이도 이 자리엔 이만석 하나뿐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못 생겼나요?”
“세린씨 정도면 충분히 아름답죠.”
“그렇다면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
떨리면서도, 부끄러우면서도 세린은 이만석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세린은 여기서 물러서고 싶지가 않았다.
이만석은 이 당돌한 아가씨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마음을 먹었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바라보는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잡고 있는 그녀의 손 또한 땀에 젖어 축축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세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만석이 대답을 하기 전까지 기다리겠다는 듯이.
그렇게 30여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닫혀 있던 이만석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난 세린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이대로 돌아가면 더 후회할 거예요.”
“구제불능이군요.”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어요.”
이만석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세린의 손을 왼손으로 감싸주었다.
“좋습니다.”
여기서 자신이 거절을 한다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쏴아아!
샤워기의 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머리를 적시고 몸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습기로 인해 유리와 창가엔 뿌옇게 흐려졌지만 그런 것과는 반대로 세린의 정신은 더욱 또렷했다.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공연을 하는 연예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노래만 잘 할 것이 아니라 외모관리 또한 필수였다.
167센티의 늘씬한 체격의 세린은 군살이라곤 없는 탄력전인 몸매에 양손에 꽉 잡힌 봉긋한 젖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안무연습에 유산소운동을 하며 체력도 키우고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도 병행하며 적정한 근력도 유지시켜주었다.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 들어줄 정도로 매끈하고 늘씬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는 세린이었다.
‘정말로 오게 되었어.’
얘기를 하는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로 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상당히 망설이고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이런 얘기를 꺼냈다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걱정.
거절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
막상 용기 내어 고백을 했는데 거절을 한다면 상당히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상처를 받을 두려움에 고백하는 것이 상당히 망설여졌다.
‘좋아해 줄까?’
거울 속에 비춰 보여 지는 자신의 몸매를 보면서 세린은 이만석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쁜 여자들과 함께 사는데 자신이 눈에 들어 올까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게다가 그 중에 한 명은 늘씬한 몸매에다 상당히 풍만한 젖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젖가슴은 그렇게 풍만한 편은 아니었다.
세린이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자신의 젖가슴을 양손으로 말아쥐었다.
물컹한 감촉과 함께 손안 가득 들어오면서도 조금 남는 크기였다.
여자인 자신이 잡으면 남는 크기이니 남자가 잡으면 꽉 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은 크기는 아닌데.’
리더이자 맏언니인 리나가 장난기가 심하긴 했지만 자신의 가슴이 작다고 하지는 않았다.
꽉 찬 비 컵은 전혀 작은 가슴이 아니라고 했다.
‘처음이 아니겠지?’
세린은 이만석이 관계를 가지는 게 처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여자들과 함께 지내는데 가만히 잠만 잤을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린은 아쉽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만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팬들이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다면 거품을 물고 기절할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다행이도 이 모텔안엔 그녀와 이만석 밖에 없었다.
거품 칠을 하며 깨끗하게 몸을 씻어내고는 다시 물을 틀어 행구어 낸 세린이 샤워기를 끄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냈다.
목부터 다리까지 조심스럽게 닦아내고는 머리의 물기를 마져 닦아내고는 준비된 타월로 몸을 둘러 감샀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돼.’
문 너머의 침대엔 먼저 씻고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이 있었다.
두근두근...
손잡이를 잡는데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생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몸이 겹쳐진다는 것이 세린으로써는 상당히 긴장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그 일이 벌어질 터였다.
‘후회하지 않아.’
떨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드디어 닫혀 있는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는 열어서 나갔다.
“다하셨습니까?”
“네.”
침대에 앉아 있던 이만석이 나오는 세린을 바라보았다.
타월로 감싼 채 손으로 가슴부근을 가리고 있는 그녀는 지금 상당히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선 이만석이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다가갔다.
“물기에 젖었군요.”
촉촉한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준 이만석이 그녀의 뺨을 엄지로 쓸어줄었다.
고개를 들어서 이만석을 바라보는 세린의 뺨이 붉혀져 있었다.
잠시 동안 시선을 맞추던 이만석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작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움찔!
순간 세린의 몸이 짧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