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4화 〉 484화 흐름의 방향
* * *
‘전부다 특별한 관계일까.’
이런 그림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자시닝 이 자리에서 이렇게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먹을 만 해요?”
국을 떠서 먹고 있는 세린을 향해 하란이 질문을 던진다.
“네. 맛있어요.”
“더 먹고 싶으면 말해요. 떠다 줄 테니까.”
“그럴게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세린이었지만 이런 반응이 참으로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나?’
자신이 무엇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알게 된 상황에서 불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티비에서 보던 것 보다 더 예쁘네?”
“네?”
“티비에서 보던 것 보다 더 예쁘다고~”
생긋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차이링의 얘기에 세린은 시선을 피했다.
참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혹시 내가 반말 한다고 불편한건 아니지?”
자연스러운 하대로 물어오는 질문에 세린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쉽게 대답 할 수가 없었다.
“그럼 편하게 말할게~”
대답이 없는 세린의 반응을 긍정이라고 생각하고 차이링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지나는 세린이 이만석과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리나를 보았을 때 두 사람은 처음 만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따로 보았다는 얘긴데 그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 졌을지 궁금했다.
하란이 또한 그에 대해서 궁금한지 가만히 쳐다보았다.
“백화점에서 만났어.”
시금치를 집어 먹은 이만석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백화점?”
백화점이라는 말에 하란이는 의아함을 보였다.
“내 생일날 갔을 때 말이야.”
“아...”
그제야 하란이는 이해를 하였다.
“오빠 설마 우리보고 가라고 했던 게 세린씨 때문이었어?”
그날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가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작업 한다고 우리 돌려보낸 거구나~?”
눈을 흘기며 말하는 차이링의 말에 하란이 어처구니 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건 지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업이라니. 도와주려고 그런 거다.”
“뭘 도와 준 건데요?”
“사람들에게 쫒기기에 구해주었어.”
“백화점에서 쫒겼다구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지나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백화점에서 쇼핑을 해오면서 그런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백화점에서 지금까지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요.”
이해가 가질 않는 다는 듯 묻는 지나를 향해 이만석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세린을 배려해서 남자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얘기를 전부 들은 지나는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민준씨도 참... 대단하네요.”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이렇게 찾아온 거란 말이에요?”
하란이 또한 놀랍다는 듯 세린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그날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거네~?”
차이링이 재밌다는 듯 장난기스러운 목청으로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있는 세린은 어찌 할 줄 몰라 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반했다느니 하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것이 상당히 부끄럽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슬쩍 이만석을 바라본 세린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에 열기가 더욱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굴 빨개졌네.”
하란이의 중얼거림이 세린의 가슴을 묵직하게 울린다.
뜻밖의 손님으로 이만석은 생각지도 않은 외출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세린을 데려다주기 위해서 였는데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변장을 한 뒤였다.
그렇게 세린과 이만석이 집을 나가고 나서 남게 된 하란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나니 불안하니?”
한 숨을 내쉬는 하란이를 향해 차이링이 물음을 던졌다.
“그럼 언니는 안 불안해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바라보았다.
“불안하기 보다는 놀랐어.”
“놀라요?”
“설마하니 인기 많은 아이돌 그룹의 여자애 까지 홀렸잖아. 대단하지 않아?”
“언니는 태평하네요?”
“걱정 할게 뭐있겠어? 결국엔 내가 그이의 진정한 여자가 될 텐데.”
“내가 양보 할 줄 알아?”
그때 지나가 얘기에 가세하며 이쪽으로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넌 아직 멀었어~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그이와 붙어 지내며 달달하게 보냈는지 몰라?”
“붙어 지낸게 곧 사랑의 깊이는 아니지.”
“마음대로 생각 하렴~”
양보 없는 두 사람의 싸움에 하란이 질 수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잊은 모양인데 오빠의 여자 친구는 나라구요.”
화장실을 다녀와 나서는 안나는 세 사람의 불꽃 튀는 언쟁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이렇게 쉬는 날엔 조용히 혼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즐겼던 것이다.
방으로 들어온 안나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라는 책을 다시 들어올렸다.
그녀에게도 세린은 분명 뜻 밖의 방문자가 분명했다.
보니까 연예인 같은데 그쪽으로 관심도, 티비도 잘 보지 않는 안나라서 크게 놀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지.’
저 세 명의 여자들도 그렇고 세린이라던 그 여인까지 모두 이만석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직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그녀여서 저런 반응들이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좋으면 좋은 거지 거기에 목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안나는 전에 이만석이 관광을 시켜주며 벤치에서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결국엔 너도 내 사람이라고 했던 얘기가 틀인 말이 아니야.}
이만석을 떠올리며 그때 했던 말들을 상기하던 안나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또 그때 일을 생각을 해버렸어.”
그날 밤부터 저도 모르게 한 번씩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하는 안나였다.
괜한 생각이라 하지만 이상하게 저도 모르게 한 번씩 이렇게 떠올리며 그때의 일을 상기하곤 했던 것이다.
‘보통 남자들과 다르기는 하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도망쳐 나왔습니까.”
운전을 하며 이만석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음을 던졌다.
그때처럼 세린이 또다시 도망을 친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조수석에 앉아 있는 그녀가 이만석의 말에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이번엔 당당하게 허락받고 나왔어요.”
“다행이군요.”
신호를 받아 잠시 멈추어 섰다.
대화가 끊기고 잠시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신호가 바뀌고 도로를 나아가기 시작 할 때 쯤에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데려다 준 곳에서 내려주겠습니다.”
“......”
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데려다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긴 했지만 그건 그녀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답이 없는 세린에게 이만석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약 5분여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세린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저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바라는 거라도 있습니까.”
“그쪽하고... 민준씨하고 더 같이 있고 싶어요.”
이미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다 까발려진 상황이었다.
여기서 수줍음을 타며 물러선다면 분명히 후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길 이유가 없다.
“한 가지 묻도록 하죠.”
“말 하세요.”
묻는 말에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해 주겠다는 듯 세린이 처다 보았다.
“정말로 절 좋아하는 겁니까.”
“네.”
“딱 한 번 만났을 뿐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데 만나는 날짜나 제약은 없다고 생각해요.”
손을 모우고 있던 세린이 조심스럽게 힘주어 깍지를 꼈다.
“만남은 그날 한 번뿐이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그쪽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본 것은 그날 하루 였지만 이만석을 좋아하게 된 것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커진 것이었다.
그날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또 다시 보고 싶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그리움이 생겨나면서 마음이 싹트고 커져가 사랑으로 변했던 것이다.
자신의 이런 마음을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게 어려웠다.
“차츰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났어요.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만 전 전화번호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몰랐어요. 그게 아쉬웠고 안타까웠어요.”
그렇게 이만석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만 하는데도 설레고 두근거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생각만 하게 되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고백 일 수 있는 말이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는 세린의 두 눈동자에서 아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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