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3화 〉 483화 흐름의 방향
* * *
차이링이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 말고 다른 여자가 또 있었던 것이다.
세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걸음을 옮기던 하란이 뒤로 힐끔 고개를 돌려 한 번 바라보곤 속으로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만석이 손님이라고 했지만 어떤 손님인지 말해주지도 않았고 젊은 여자여서 경각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오빠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거야?’
안나 말고 또 다른 여자가 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봐도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집앞에서 서성이고 그러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바람둥이!’
그런 생각이 드니 이만석을 새침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니 기가찼다.
도어록 번호를 열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니 어느새 지나가 거실에 서있었다.
“밖에 있었던 거어에요?”
“확인 할 게 있어서 잠시 나갔다 왔습니다.”
“확인이요?”
반문을 했던 지나가 하란이에 이어 또 다른 여자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 지나의 행동에 하란이 말을 이었다.
“언니 아는 사람이야?”
“그건 아닌데... 들어오면서 마주쳤어.”
놀라는 지나를 보게 되자 세린은 더욱더 난처해 질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전에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그 여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그때 주방 쪽에서 또 다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여자는 또 누굴까?’
또 새로운 여자의 등장에 세린은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응~ 함께 들어온 여인은 누구니?”
자신을 보며 놀라는 세린을 보고 차이링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들어가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 이만석이 넌지시 그렇게 말을 던지고 식탁으로 향했다.
“저 여자 누구야?”
걸음을 옮기는 이만석에게 따라 붙으며 차이링이 다시 정체를 물었다.
어느새 하란이도 따라 향했고 지나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수상쩍은데...’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도망쳐버린 여인이 확실했다.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야...’
아까처럼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지 않아서 얼굴을 살펴 볼 수가 있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이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데 분명히 어디서 본적이 있는 듯한 얼굴이라는 것을 느꼈다.
“오늘 본 게 처음이죠?”
“......”
여인에게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나는 그 모습이 오늘 마주한 것이 처음이라는 것에 확신을 느꼈다.
“여기에 계속 서있는 것도 그렇고 일단 들어가요.”
여전히 경계의 시선을 지우지 않은 채 지나가 식탁으로 향했다.
그렇게 지나가 몸을 돌려 가고 혼자 남게된 세린이 작게 한 숨을 내쉬어다.
“후우...”
한 번에 여러 사람과 마주해서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저 여자들은 누굴까?’
차이링이라고 생각했던 여자 말고 두 명의 여인이 더 있었다.
‘예쁘던데...’
역시나 차이링이 생각했던 선글라스를 쓴 여인은 확실히 미인이었다.
그 두 여자 말고 오빠라고 부르며 나타났던 검은색 생머리의 여인도 청순해 보이면서 귀여운 게 상당히 예쁘게 생긴 여자였고 짧게 커트를 한 머리의 여자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들이 하나같이 전부 예쁜 여인들이라서 세린은 한 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 서있지 말고 와요.”
그때 지나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세린을 향해 돌아보며 오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제야 신발을 벗은 세린이 그녀를 따라 식탁으로 향했다.
“당신 언제 또 다른 여자에게 작업 걸었니?”
차이링이 이만석에게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그런 거 아니다.”
“아니긴~ 숨기려고 해도 이미 늦었어. 이 늑대야.”
“언니 말이맞아요.”
식탁에서 자신에 대해서 묻는 말과 시샘하는 듯 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나를 따라 들어선 세린은 푸짐하게 차려져 있는 한 상을 두고 이만석과 조금 전에 보았던 여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 있었어?’
그런 세린의 눈에 처음 보는 여자가 또 한 명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양인으로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여인이었는데 이쪽을 처다 본 순간 세린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그 시선이 절로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무서워...’
감정이 없는 것 같은 저런 눈빛은 태어나 처음으로 접했다.
“안나씨가 처다 보니 무서워하잖아요.”
차이링이 하는 말에 세린을 바라보던 안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거기 서있지 말고 여기에 앉아요.”
잠시 동안 망설이던 세린이 걸음을 옮겨 안나의 옆 자리의 의자를 빼고 조심스럽게 몸을 앉혔다.
그러는 사이 하란이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떠서 세린의 앞에 놔주었고 차이링이 국자로 국을 덜어서 옆에 놔주었다.
지나와 함께 모두 자리에 착석하고 나자 이만석이 숟가락을 들어 국을 떠먹었다.
“맛있게 잘 됐네.”
하지만 그런 이만석 말고 다른 여인들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아니, 단 한 명, 네 명의 여인들 중 안나는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숟가락을 들어 국을 떠먹고 있었다.
마치 신경을 쓰지 않는 다는 듯.
“그렇게 처다 보니까 식사에 집중을 못 하잖아.”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에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식사에 들기 전에 오빠가 소개를 해줘야지.”
식사보다 소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소개라...”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이만석이 세린을 바라보았다.
“일단 머리에 쓰고 있는 것부터 벗죠.”
이만석의 말에 세린이 그때까지도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답답할 테니 가발도 벗어요.”
“가발?”
가발이라는 말에 하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나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고 차이링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세린을 처다 보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이 가발을 쓰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이만석의 예리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자리에서 가발을 벗는 것이 좀 망설여지는 세린이었다.
“괜찮으니까 벗어도 됩니다.”
망설이는 세린을 향해 이만석이 다시 재촉하듯 말한다.
그제야 마음을 먹은 것일까.
세린이 쓰고 있던 가발을 양손으로 잡아서 천천히 당겨 벗기어 냈다.
그러자 갈색의 커트를 한 안 머리에 웨이브 진 단발머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네?”
진짜로 가발임에 드러나자 하란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앗!”
그때 지나에게서 연이어 놀란 음성이 터져 나온다.
“왜 그래요?”
갑자기 놀란 말을 내뱉는 하란이가 물어보지만 지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란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잠시 동안 그렇게 바라보던 지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던 것을 때어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세린... 로즈걸스의 세린 맞죠?”
“세린이라고?”
세린이라는 지나의 말에 하란이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그녀를 잠시 동안 바라보던 하란이 역시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세린이네?”
안경을 쓰고 있다고 하지만 가발을 벗으니 금방 그녀가 세린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 연예인이 우리 집에 찾아오다니 놀라운 일이네?”
정말로 놀란 것일까.
여전히 장난기 섞인 차이링의 뒷말이 연이어서 들려온다.
“안경도 벗어도 됩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이만석의 대답에 따라 세린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진짜였어...”
안경까지 벗고 나자 그녀가 로즈걸스의 세린임에 확실해 졌다.
안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에 자신에게 쏠리자 세린은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 보지만 그런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하란이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지금 그녀가 왜 여기에 찾아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방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긴 했지만 세린에게는 상당히 난처한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뻔 한 거 아니겠어?”
하지만 그 대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옆에 앉아 있는 차이링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세린을 바라보며 입을 연 것이다.
“뻔 하다니 무슨 말이에요?”
“생각 해봐. 세린이 왜 여기에 찾아왔겠어? 우리들에게 볼일이 있어 왔을까? 아니잖아~ 그녀가 세린이라는 것에 놀라서 그런 가 본데 조금 전에 이미 답을 알고 그이에게 따져 물었던 것 잊었어?”
“그러고 보니.”
“그이를 보기 위해 찾아온 거겠지.”
순간 식탁엔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 후로 세린은 이 적막감이 식사를 하는 내내 계속해서 이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누가 차이링인지 이젠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중요한 건 이 자리에 있는 여인들 모두가 이만석과 보통 사이가 아님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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