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2화 〉 482화 흐름의 방향
* * *
이쪽을 처다 보고 있던 여자가 순간 당황하더니 움찔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몸을 돌리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만석은 지나의 말대로 확실히 수상쩍게 보였다.
“누구십니까?”
차분한 어조로 물음을 던지는 이만석의 질문에도 몸을 돌린 여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굳어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야...’
두근두근!
세린은 세차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눈 앞에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여인으로 인해 도망친 세린은 모퉁이에 숨어들어 긴장 되었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호흡을 골랐다.
그렇게 다시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그러 함에도 세린은 여전히 몸을 숨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혹시나 다시 문을 열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행이 10여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여자는 다시 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다가간 세린은 그렇게 다시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만 좋아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남자는 자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이 여겨졌다.
다른 여자와 저렇게 살림을 차려 살고 있는데 자신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래도 인기가 오르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긴감이 충만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게 생각이 되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갸름한 얼굴형에 생김새가 딱 봐도 미인임을 알 수가 있었다.
‘역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구나.’
리나의 말대로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커졌다.
실망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차이링으로 여겨지는 여인을 보게 되니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게 문 쪽을 바라보며 세린은 아파오는 마음을 애써 위로하며 이만석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엔 너무 놀라 멍하니 바라봤지만 곧이어 정신을 차리곤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버렸다.
설마하니 갑자기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고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솜털이 곤두섰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청은 분명히 익히 알 고 있는 그 음성이 맞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어, 어떻게 하지?’
막상 눈앞에 나타나니 세린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했다.
이 순간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심장이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 이 소리를 들을까 당황스러웠다.
그런 세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만석은 몸을 돌린 채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날 알고 있는 여자 같은데.’
이만석은 이 여자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렇게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다고 하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을 보며 깜짝 놀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저렇게 떠는 모습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간 이만석이 어깨를 살며시 부잡았다.
움찔!
순간 몸을 크게 움찔 거리는 여인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데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겁니까.”
차분한 어조로 이만석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
하지만 여인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일관되게 묵묵부답을 이어갔다.
상당히 수상쩍었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이만석이 그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잽싸게 다시 몸을 돌리려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 하게 이만석이 양손으로 몸을 잡았다.
“얼굴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에게 이만석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별다른 말이 없는 그녀의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를 벗겼다.
눌러 쓰고 있는 모자를 천천히 벗기어 내자 길게 늘어뜨린 검은색 머릿결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앞머리가 눈 주변을 가리고 있어 식별하는 게 쉽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이만석은 거기서 망설이지 않고 손으로 턱을 받쳐 치켜 올렸다.
어떻게 보면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여인은 움찔 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드러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이만석은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린?”
안경을 쓰고 머리스타일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만석은 그녀가 세린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
자신을 처다 보고 있는 안경속의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뺨 또한 눈에 띌 정도로 붉혀져 있다.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때어냈다.
고개를 돌릴 줄 알았던 그녀는 이만석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조금 전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이만석의 얼굴도 평상시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린의 검은색 동공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습니까.”
드디어 침묵을 깨고 이만석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만석이 그녀에게 자신이 사는 곳은 물론이고, 연락처, 그리고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 한 번의 만남 뒤로는 티비로 간간히 보았을 뿐 한 번도 본적도, 연락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녀가 자신의 집 앞에 찾아온 것이다.
그때 지나가는 차량을 발견하곤 이만석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앗!”
갑작스러운 행동에 세린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터져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만석은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세린의 팔목을 붙잡은 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문을 닫아버리곤 다시 잡고 있는 팔목을 놔주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문을 닫았으니 밖으로 간간히 지나다니는 차량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마당이었으니 가택침입을 하지 않는 한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손목을 만지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세린이 다시 고개를 들어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 사람이야.’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 남자가 정말로 그동안 보고 싶어 했던 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꿈이 아니라 이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세린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알아... 보았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자신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묻는 것이었다.
“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저 대답에서 이만석은 한 가지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에 지나와 함께 연회에 참석 했을 때 보았던 리나라는 여자.
그녀는 세진그룹의 계열사인 세진전자의 김성한 사장의 딸이어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나와 밤을 지새 울 때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그 것들을 생각해보니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어떻게 자신이 사는 곳을 알게 되었는지 수긍이 갔다.
“리나라는 그 여자가 도움을 준 모양이군요.”
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까지도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세린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오빠~!”
현관문이 열리며 이만석을 찾는 하란이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피듯 바라보던 하란이 이쪽을 처다 보곤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집에 없어서 찾았잖아. 그런데...”
다가온 하란이 이만석을 향해 찾아다녔다는 말을 전하고는 고개를 돌려 의문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의아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는 하란의 질문에 여인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여성분 누구야?”
대답이 없는 그녀를 뒤로하고 하란이 이번엔 이만석에게 이 여자의 정체를 물었다.
“손님.”
“손님?”
“응.”
이만석이 들고 있던 모자를 다시 세린의 머리에 씌어졌다.
“식사는?”
“다 차렸어. 그래서 오빠 찾아다닌 거야.”
“보니까 점심도 먹지 않았을 텐데 같이 들도록 하죠.”
그러고는 현관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하란이 여전히 의아한 시선을 거두지 못 한 채 세린을 바라보다가 이만석을 따라갔다.
어떻게 할 까 망설이 듯 서있던 세린이 발걸음을 때어 두 사람을 따라갔다.
‘도망치면 후회할거야.’
이대로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도망 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하면 분명히 나중에 가서 후회할 것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저 오빠라고 부르며 이만석과 함께 가는 여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차이링이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 말고 생각 못 한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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