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0화 〉 480화 흐름의 방향
* * *
“데려다 줘서 고마워 언니.”
“알려준 대로 오긴 했는데 안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없어도 괜찮아.”
웃음을 짓는 세린의 모습에 리나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1시가 조금 넘어간 시간대였다.
“어중간하게 왔네. 아침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인터뷰도 잡혀 있었고 어쩔 수 없었는걸 뭐...”
방송사 인터뷰 스케줄을 이것 때문에 캔슬 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멤버들이나 매니저에게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리나가 다행이 말을 잘 해줘서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저번의 사건으로 인해 멤버들에게도 개인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소속사에서 인지를 하였기에 그런 것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세린은 따로 혼자만의 시간을 사실 별로 가지지도 않았다.
자신의 잘 못 때문에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로즈걸스 메인 보컬로써 책임감으로 활동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큰 우려를 지우고 이렇게 다시 개인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게 리나가 도와 준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연갈색으로 염색을 물들이고 앞머리는 눈썹까지 커트를 하고 어깨 까지 내려오는 웨이브진 머리의 상큼한 느낌의 헤어를 최근에 하고 있는 세린이었지만 지금은 검은색 생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앞머리가 눈까지 가려 시야를 방해해 불편하긴 했지만 뭔가 칙칙해 보이기도 하면서 세린의 상큼발랄한 느낌을 지워버려 쉽게 알아보기는 힘든 분장을 하고 있었다.
옷 또한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어 상큼한 원피스나 짧은 치마와 같이 풋풋한 여동생의 느낌을 고수하던 세린의 옷차림과도 완전히 달랐다.
거기다 창이 있는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있어 눈을 보기 더욱 힘들게 하였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세린이라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었다.
“여기에 온 것 까지는 좋지만 만나지 못 했다고 실망해거나 그러면 안 돼?”
“알았어.”
멀리 담장 너머에 커다란 소나무 한 구루가 서 있는 저택쪽을 힐끔 거리는 세린을 본면서 리나가 웃음을 지었다.
‘저렇게나 좋을까?’
비록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자신도 첫사랑을 하였을 때 저렇게 가슴을 졸였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 리나였다.
“분장 하였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들키면 큰일 나니까 조심해.”
“응.”
“전화 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언니~!”
안전벨트를 풀고 조수석 문을 열고 내린 세린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하여간...’
못 말린다는 듯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힘내라는 듯 파이팅 포즈를 취해주었고 그렇게 문이 닫히자 조용히 갓길을 나서 도로를 따라 사라져갔다.
“갔네.”
저 멀리 사라져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세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 동안 차량이 사라진 도로를 가만히 바라보던 세린이 천천히 몸을 돌려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소나무 한 구루가 담장 안 정원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저택이 있었다.
리나가 말하기로 저곳에 이만석이 산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저기에 그 사람이...’
세린은 몸이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다시 만난 것도 아니고, 살고 있다는 저택만 바라볼 뿐인데 기분이 이상했다.
‘앗!’
그때 지나가던 시민이 이쪽을 힐끔 바라보는 모습에 세린이 몸을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분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심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지 불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행인이 지나가고 안 도의 한 숨을 내쉰 세린이 다시 몸을 돌려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만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하는 거람...’
그 남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실제 만나지는 못 해도 가까이 가서 확인하고픈 마음에 온 것이 다분했다.
물론 만나고 싶기는 하지만 정말로 차이링이라는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면 보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았다.
거기다 사실 그때 한 번의 만남으로 다짜고짜 찾아왔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 실제로 잠시 골목만 어슬렁거리다 돌아갈 확률이 다분했던 것이다.
‘가보자.’
마음을 먹은 세린이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 점점 저택의 담장이 가까워져 올수록 세린은 더욱더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하는 것이다.
‘동네가 조용하네?’
걸음을 옮겨 골목 안으로 나아가던 세린은 길게 이어진 담장들 사이로 대문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고 모두가 마당이 딸린 고급저택이라는 것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세린의 시선이 다시 그 남자가 살고 있다는 저택 쪽으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담장의 중간쯤에 굳게 닫혀 있는 대문이 서있었다.
저택으로 다가온 세린은 멈추지 않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향했다.
‘저 곳으로 그 사람이 드나들었겠지?’
대문이 눈에 들어오니 저곳을 통해서 그 남자가 외출했다 돌아오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멋지게 운전을 하여 빠져나가는 모습이 이미지로 떠오르자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세린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어 가던 세린은 문득 자신의 행동이 뭔가 스토커같이 느껴져 얼굴이 붉혀졌다.
집 앞 까지 찾아와서 대문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좋아하다니 뭔가 그림이 이상했던 것이다.
‘누굴 좋아하게 되면 다 이렇게 되는 걸까.’
세린은 자신에게 당혹스러운 말들을 연발하며 사랑한다고 소리치던 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저 사람들이 날 많이 좋아해 주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좀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람도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부담스러워 하면 어쩌지?’
그런 마음이 느껴지니 엉뚱한 걱정이 세린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앞서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 했는데 마치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었다.
‘세린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게 걸음을 옮겨 그녀가 드디어 저택의 대문 앞에 당도했다.
다져진 길을 따라 문이 양쪽으로 열리면 차가 안으로 드나 들 수 있 그 옆에 다시 작은 철문이 하나 달려 그쪽으로 걸어서 사람이 들어갔다 나갔다를 할 수 있게 한 것 같았다.
‘그 사람 이름이 서민준이었구나.’
문 앞에 당도한 세린은 처음 이만석의 모습이 떠올렸다.
상황을 보며 쇼핑을 하다 경호원들에게서 도망쳐 나와 쫒아오는 그들을 따돌리고 급하게 들어간 곳이 남자화장실이었다.
설마 자신이 남자화장실에까지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 할 것이라 보고 들어간 한 수 였다.
역시나 그런 자신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는지 경호원들은 그대로 달려서 지나쳐 갔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없기를 바랐던 것은 그저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 세면대에서 이미 손을 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보내고 그렇게 경호원들이 지나쳐 가는지 귀를 가져다 대었던 세린은 위기 순간이 지나고 안 도의 한 숨을 내쉰 후에야 그 사람을 똑바로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바라본 그 남자는 크다는 것이었다.
180이 훌쩍 넘어가는 키에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첫 느낌은 확실히 크다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바로 든 생각은 정말로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시원하게 뻗은 콧날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갸름한 턱선에 다물어진 입은 전체적으로 호남형의 뚜렷한 이목구비의 잘생긴 남자였다.
하지만 그 보다 남자 화장실에 뛰어 들어온 자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도 되었다.
세린은 이 남자가 자신을 알아보았을 것이 생각을 했고 그랬다면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세린은 이만석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한 참 인기를 실감하고 있던 차였고 작년 인기 아이돌 상도 휩쓸면서 사실 어느정도 콧대도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심드렁한 반응에 무심하게 대하는 그의 행동에 참으로 당혹스럽게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부탁에 그는 도와주었고 세린은 무사히 잡히지 않은 채 백화점을 빠저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비슷한 연령대의 이성과 단 둘이 붙어서 돌아다닌 것은 코흘리개 어린아이 시절 짝지로 돌아다닌 때 말고는 이렇게 딱 붙어 돌아다닌 적은 없어서 긴장도 되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 사람이 참 괜찮게 느껴졌고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 조폭이라는 말에 상당히 놀랐었다.
그러다 카페를 나서다 결국 여성팬에게 들키게 되면서 당황했지만 이만석의 도움으로 따돌릴 수가 있었다.
앞서 손목을 잡고 뛰어가는 그 모습이 세린은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연예인들이 데이트를 하다 종종 연인 사이에 팬들을 피해 이렇게 급하게 도망간적이 몇 번 있다는 것을 들었지만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남자에게 이성으로써 제대로 가슴을 두근 거린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와 생일 이라는 것을 알고 답례로 노래방에 가서 소박하지만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며 이만석을 위해 개인콘서트를 열어주었다.
만족 했을지 모르겠지만 세린은 정말로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이다.
물론 간간히 손동작을 취하며 안무를 보여주며 분위기를 띄우며 웃음을 유발했다.
부끄러웠지만 고마움을 그렇게 표했던 것이다.
숙소의 근처로 돌아온 세린은 그렇게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전화번호도 모른 채 만남을 끝냈다.
그때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그때 그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커져만 갔고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이라는 아쉬움과 상상이 더해지며 가슴앓이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 지금 집에 있을까.’
대문 너머의 저택에 있을 이만석을 생각하는 세린의 두 눈에 아련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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