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9화 〉 479화 흐름의 방향
* * *
세린이 그렇게 리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시각 이만석은 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잠자리에 들려고 자리에 누으려던 이만석은 폰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확인을 하고는 의문을 표했던 것이다.
걸려온 전화는 국제번호였고 이만석도 잘 아는 번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문도 곧 지워져 버렸고 이만석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귀에다 가져가 영어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웬일로 당신이 나에게 연락을 다 하는군요.”
[함부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번호는 잊지 않고 있었나보군.]
“내가 좀 기억력이 괜찮은 편이라서 말이죠. 그보다 나에게 볼일이 있습니까?”
[내가 왜 전화를 걸었는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다분히 불쾌한 듯 한 음성에 되묻는 말에 이만석은 입가에 작은 웃음이 지어졌다.
“글세요 잘 모르겠군요.”
[건방진...]
순간 메케인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이유를 말해줘야 내가 답을 할 거 아닙니까.”
[끝까지 뻔뻔하게 나올 셈이냐.]
“뻔뻔이라니?”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대답하는 이만석의 입가에 지어진 웃음이 더욱더 진해졌다.
이미 이만석은 메케인이 왜 전화를 하였을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안나를 관광시켜주며 자신에게 했던 말. CIA는 자신을 잡을 때까지, 죽일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었다.
이만석도 그 의견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결사 노릇을 했으니 껄끄러운 일을 많이 맡았을 것이고 그런 인물을 밖에 함부로 내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름이나 신분을 감춰서 공항을 이용하긴 했지만 CIA정도라면 지금쯤 안나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 모를리 없었다.
신분을 감추었다고 해도 안나임을 못 알아 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쪽이 바라는 대로 대답해줄 필요성도 없었다.
[좋다... 긴말하지 않고 말하지.]
다시 되물어 오는 이만석을 향해 메케인이 굳은 음성으로 본론에 대해서 꺼내들었다.
[안나를 이쪽으로 넘기게.]
“안나라니요?”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녀를 당신네들에게 보내주라 이말을 저에게 하는 겁니까?”
[그녀는 우리 요원이야.]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안나에 신변에 대해서 인계하라는 말을 전해왔다.
“안나는 CIA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CIA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는 기관이 아니야. 그 정도는 서민준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신들이 이미 그녀를 버렸지 않습니까.”
[그건 엔더슨이 마음대로 행한 행동이야. 그에 대해선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지. 우린 여전히 그녀를 요원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인계해 달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만석은 이 CIA국장이라는 메케인이라는 사람이 참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 말고도 미국사회가 지금 상당히 시끄러운 걸로 아는데 정부 기관에다 카일러는 CIA인물이었으니 일단 그쪽 일에 대해서 먼저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넘겨주지 않겠다는 소리인가?]
“안나에 대해선 당신네들에게 넘겨주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스스로 그곳을 떠났고 CIA에선 그녀를 죽이려 했으니까 말이죠. 무엇보다 그녀는 더 이상 나에게 남이 아닙니다.”
[함께하고 있다고 남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틀렸습니다.”
[틀렸다고?]
의문을 표해오는 메케인을 향해 이만석이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알려주었다.
“그녀는 이제 나의 수행비서입니다. 그러니 남이 아니라고 한 거죠.”
[수행비서라니. 지금 나하고 장난을 하자는 소린가.]
“장난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정식으로 고용을 했고 그녀는 수행비러소써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남이 아니라는 소리죠.”
[......]
순간 메케인쪽에서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약 30여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다시금 낮은 음성이 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지시를 받았나.]
“지시라니.”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소동과 지금 네가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무엇을 꾸미는 것이지.]
“당신 말을 들어보면 내가 아주 장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니고 그러고 있지 않나. 그리고 난 서민준 너라고 하지 않았다. 네 뒤에 있는 세력을 말하고 있는 거야.]
“훗...!”
순간 이만석의 입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당신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는 폰에 대고 이만석은 이번엔 바로 말을 이었다.
“내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당신이 잘 못 보았습니다. 난 누구의 수하도 아니고 머리 숙여 밑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는 몸이 아니니까 말이죠.”
[부정을 할 셈인가.]
부정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이만석은 다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자들은 지금 단단히 자신을 오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부정이든 뭐든 당신 알아서 생각하고 안나를 그쪽에 넘길 생각은 없으니까 알아서 하시죠.”
중요한건 이만석은 이들에게 안나를 전혀 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서민준 너는 지금 겨우 여자 한 명 때문에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어.]
“위험한 행위라...”
[이거 나와 나의 문제만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주 잘 못 된 거다. 외교적 마찰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나?]
“협박입니까.”
[협박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이네.]
안나를 순순히 넘기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외교적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세계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저것이 그저 협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CIA국장이 하는 말이니 쉬이 넘길 수 없는 힘이 말 속에 담겨 있다.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서민준...]
“외교적으로 힘을 써서 풀어보려는 생각인가본데 어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보십시오.”
저런 협박에 굴복할 이만석이 아니었다.
[너의 뒤를 봐주고 있는 세력을 믿고 있는 것인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생각이 있다면 그들이 너 하나 때문에 큰 모험을 할 것이라 생각은 들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나오는데 껄끄럽다는 것이고 자신 할 수 없다는 반증이겠지. 그런 이들이 너 하나 살리자고 뒤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와중에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까 의문이 드는군.]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정말로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냐.]
“같은 말만 반복 할 것 같으니 이만 전화를 끊도록 하죠.”
[서...]
메케인이 뭐라 입을 여는 와중에 이만석은 통화종료를 눌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잡생각을 할 정도로 아직 여유로운 모양인데.”
뛰쳐나올까 의문이라느니, 외교적 마찰이라느니 여러 소리를 하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자신에 대해서 상당히 잘 못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좀 일깨워 줄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았다.
이만석은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인지...”
무례하게도 마음대로 전화를 끊어버린 이만석의 행태에 메케인은 상당히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능력이 있다한 들 역시 젊어서 혈기를 주체하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겠어.”
이렇게 언론이나 다른 사람을 내세워서 움직이는 이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드러낼 리가 없었다.
사회가 시끄러워 지금 자본가들을 중축으로 한 연합세력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더라도 그들의 힘은 절대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정부의 힘 또한 빠지지 않고 이번 사태로 인해 오히려 더 파해칠 수 있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지율이 더 올라간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그들이 행여나 모습을 드러냈다가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견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나름 일을 잘 해주고 있는 인재 한 명 살리겠다고 나설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이렇게 음모를 꾸미는 이들이라면 만일에 대해서 대역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 두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메케인이 보기에 이만석은 오랫동안 활용할 그런 좋은 수하는 아니었다.
능력은 있을지언정 튀는 행동을 해서 명령 밖의 행위를 한다면 상당히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자신 만만 할 수 있는지 보고 싶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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