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2화 〉 472화 작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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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머지 산책을 다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어서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것 같으면서도 어느순간 지나가는게 시간이었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리 깔리는 시각이라 이만석은 그렇게 서울 구경을 마무리 짓고 안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정차시키고 현관문으로 향할 때는 어느새 밤이 찾아와 주변이 깜깜한 어둠이 내리 깔린 뒤였다.
마당에 있는 조명과 집에서 나오는 형광등 불빛이 아니었다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니 하란이 나와서 맞아주었다.
“어서와 오빠~!”
“저녁 준비하고 있었어?”
집안에서 맡아 지는 음식냄새에 하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니하고 둘이서 갈비찜에 오빠 좋아하는 김치찌개 끌이고 있었어.”
“지나는?”
“아직 안 들어왔어.”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자 주방에서 차이링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응~ 어딜 그렇게 다녀오는 길일까?”
“다녀오다니.”
“지방 출장 다녀와서 물어보니까 당신 일찍 퇴근했다고 하던데?”
“별거 아니야.”
“뭐야 뭐? 무슨 얘기야.”
의미심장한 차이링의 말에 하란이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드러냈다.
“안나 서울 구경 좀 시켜주고 왔어.”
“서울 구경?”
“한국에 처음 왔으니까. 시간도 남았 겠다 관광시켜 주고 온 거야.”
“그게 다니?”
“그럼?”
“난 또 둘이서 뭔일 있었는 줄 알았지~”
“언니~!”
차이링의 이상한 말에 하란이 나무라듯 말했다.
“후후훗~ 농담이야 농담.”
작게 웃음을 지은 차이링이 그렇게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옷 갈아입고 오빠 씻어. 그리고 안나씨도 저녁 먹을 준비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하란이를 뒤로하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안나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한 말 잘 생각해봐.”
그러고는 안방으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본 안나도 다시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 불을 켜고는 개인 수건과 세면도구를 준비했다.
샤워실에 놔두어도 된다고 했지만 이건 CIA에서 활동할 때부터 이어저온 습관이 되어서 간편하게 챙기고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샴푸도 잘 쓰지 않고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비누 하나로 머리도 감고 샤워를 하며 모두 해결 할 때도 많았지만 호텔이나 이렇게 구비되어 있을 때는 사용하긴 했다.
호텔이 구비가 되어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막히지는 않았다.
들어가기 전에 이만석이 말했던 잘 생각해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나는 잘 알았다.
갈 곳이 없으면 계속 머물러도 좋다고 했던 그 말이 분명했던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현 한 것도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니야.}
벤치에서 이만석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었다.
‘난 외부인일 뿐이야.’
하지만 안나는 스스로 이곳에 잠시 머물고 있는 외부인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간 떠나야 할 그런 존재 말이다.
그러니 외부인이면 외부인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만석이 말했던 대로 아직 딱히 그 후에 갈 곳이나 정해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약이 끝나면 예정대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CIA에서도 오랫동안 머물며 활동 했지만 그녀 스스로 다른 누군가와 동화 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숙인 안나가 자신의 팔목에 걸쳐 있는 팔찌를 처다 보았다.
이건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액세서리 선물이었다.
설사 여기에 특수한 기능과 능력이 가미되어 있다고 해도 이런 선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팔찌를 선물받았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에 의미 같은 걸 부여 할 필요는 없어.’
고개를 다시 바로 한 안나가 그렇게 씻기 위해 폰을 한 쪽에 놔두고 불을 끄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로즈걸스가 지방 콘서트 무대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도착 했을 때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일정에 대해서 회의를 나누고 샤워를 끝난 후 방에 들어섰을 때는 밤12시가 다 넘은 시간대 였는데 침대에 누우면 그대로 골아 떨어 질 것 같았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리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벌서 자려고?”
“언니는 안 피곤해?”
“나도 피곤하긴 하지. 그보다 내가 왜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응?”
침대로 다가간 리나가 걸터앉아 세린을 바라보며 입가에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가 왜 왔을 것 같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있지. 하지만 나보다는 너에게 좋은 일이지.”
“나에게?”
“응!”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세린의 모습에 리나가 한 숨을 내쉬었다.
“이 답답아 너에게 좋은 일이라면 뭐겠어?”
“그건... 언니 설마 알아 본거야?”
그제야 눈치를 챈 세린이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언제 알아본 거야?”
설마하니 이렇게나 빨리 알아볼 줄은 몰랐다.
“전화기는 폼으로 들고 있어? 그리고 그 정도의 정보를 알아보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더라. 너하고 만났다던 그 백화점에 갔었는지 물어봤어.”
“그걸로 어떻게 알아 낼 수가 있어?”
“그 사람 혼자 백화점에 갔을 리는 없으니까. 거기다 그 백화점은 세진계열사 쪽이잖아.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 본거지.”
“그래서?”
귀를 쫑긋 새우고 관심을 드러내는 세린을 보면서 리나가 장난기 깃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지?”
“빨리 말 해봐 언니~”
“많이 궁금한가보네?”
“장난치지 말구~!”
“알았어 알았어...”
세린의 반응이 재밌는지 리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계속해서 다음 얘기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다짜고짜 물어 볼 수 없잖아. 그래서 연회장에서 만난 걸 계기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거지. 거기서 그 사람 얘기를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살짝 물어보았어. 뭐 둘이서 백화점이나 쇼핑에 같이 가지는 않냐... 이런 거 말이야.”
“그랬더니?”
“그래서 작년 겨울에 같이 간적이 있느냐고 하니까 뭐라는 줄 알아? 있대... 날짜가 언제냐고 하니까.”
“하니까?”
“뭐라고 대답 했을 거 같아?”
“언니~!”
울상을 짓는 세린의 모습에 리나가 다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그런 반응이 참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귀여워. 아무튼 같이 간 날이 한 번이 아닌 것 같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딱 그날인거야.”
“그날이라면...”
“답은 다 나왔잖아.”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는 듯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에 세린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지, 진짜?”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왜 하겠어?”
“그, 그럼...”
“서민준이라는 그 남자가 네가 찾는 그 남자라는 거지.”
순간 세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순식간에 눈가 주변이 뿌옇게 변하더니 투명한 눈물방울이 져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너 우는 거야?”
그런 세린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리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는 거 아니야......”
“우는 거 아니긴? 네 눈에서 눈물 흘러내리잖아.”
서둘러 눈가를 닦는 세린이었지만 그런다고 흔적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와~ 이건 생각 이상의 반응인데?”
놀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던 리나여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한 편으론 그만큼 그 남자를 마음에 품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 정말로 서민준이라는 남자 많이 좋아하게 되었나보네?”
이젠 그 남자가 서민준이 확실하다는 듯 리나가 이름을 거론하며 말했다.
세린은 그런 리나의 마음이 참으로 감사했다.
“고마워 언니.”
“고마울 게 뭐 있어. 전화 한통 한 것뿐인데.”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세린을 조심스럽게 안아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렇게 보면 아직 애가 순수 한 거 같기도 하고 참으로 귀엽게 여겨지는 리나였다.
“야, 너 그렇게 눈물 흘리는 모습 팬들이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
“안 울게.”
손으로 눈물을 닦는 세린을 보면서 리나가 작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냥 좋아 할 일만은 아니야.”
“지나라는 그 언니 때문에 그러지.”
“그래~ 보니까 둘 사이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만약 서민준이라는 그 남자가 자신이 찾는 사람이라면 세린 또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찾게 된 것만으로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다시는 인연이 없어 마주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가 보네?”
“다시 볼 수 있게 됐잖아.”
“얼래? 벌써 보겠다고 정한거야?”
“......”
“알고 보니 너도 응큼한 구석이 있네~”
“......”
부끄러워 대답을 못하는 세린의 모습이 리나는 참으로 귀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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