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0화 〉 450화 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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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쪽을 바라보던 하란이 다시 몸을 돌리려는 그때 그쪽에서 한 명의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나와 하란이를 찾았다.
“아가씨.”
자신을 부르는 아주머니를 본 하란이 역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유모!”
서둘러 아주머니에게 다가간 하란이 윤정호 의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살며시 품에 안기었다.
“유모라니 그런 소리 하지마요. 의원님 들으면 어쩌시려고.”
달려와 자신의 품에 안기는 하란이의 행동에 유모라 불린 아주머니는 눈치를 보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 계속해서 웃음을 지었다.
“장 아주머니는 저한테 유모나 다름없는 걸. 그리고 아버지도 그걸로 뭐라고 하지 않아.”
다시금 품에 안기는 하란이를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거기서 못 챙겨먹은 건 아니죠? 외지에 나갔을 때 굶으면 더 안 돼요. 집에서 생활 할 때보다 더 잘 먹어야 하는데...”
밖에서 따로 사는 하란이가 늘 걱정이었던 장 아주머니였다.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얼마나 잘 먹고 잘 지내는데... 봐 피부도 좋잖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란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아주머니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네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하란이도 그렇가 장 아주머니라 불린 이 중년여인도 상당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까 전에 어머니와 마주 할 때와는 표정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지금 저 둘 사이만 봐도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느낄수가 있었다.
‘유모라고 부르는 거 보니까 하란이를 어렸을 때부터 돌봐 주었나보군.’
이만석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장 아주머니가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고생했을 때는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표정이 밝아보여서 안심이 되네요.”
“또 그 소리... 나 이제 안 그런다니까.”
“그때는 제가 말해도 대답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말 거는것도 힘들었으니까요.”
하란이는 그 때의 일만 생각하면 장 아주머니에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도 싫고 모두가 다 싫었던 것이다.
배신감이 강하게 들어서 현실 자체가 다 부질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던 것이다.
“뒤에 계시는 잘 생긴 분이 그 분인가요?”
그렇게 하란이와의 상봉이 끝나고 장 아주머니가 이만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참... 유모는 아직 한 번도 오빠 본적 없다고 했지?”
“그렇지요.”
“집에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제야 보네?”
“그때는 시골 집에 다녀온다고 제가 없었잖아요.”
“맞아.”
생긋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하란이 이만석에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오빠 인사해 이분은 어렸을 때부터 날 돌봐주고 챙겨준 장미자 아주머니셔.”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저야 말로 반가워요. 아가씨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제 얘기를 말입니까?”
“네... 상당히 멋지고 듬직한 분이라고 했는데 보니까 아가씨가 확실히 반할만 한데요?”
그렇게나 멋지다며 보면 놀랄거라고 말하더니 실제로 만나니 정말로 신수가 훤하고 잘 생겼다.
“내말 그대로지?”
하란이가 그것보라는 듯 말하자 장 아주머니가 다시 웃었다.
“네~ 아주 듬직하고 키도 훤칠하고 잘생기셨어요.”
하란이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던지는 아주머니의 인사에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손씻고 온다더니 뭐하고 있어?”
그때 식당에서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팔짱을 낀 채 별다른 표정 없이 바라보는 하란이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해요. 오랜만에 유모를 봐서 잠시 얘기좀 나누었어요.”
“유모라고?”
미간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장 아주머니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장 아주머니는 자신을 쏘아보는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을 수 없는 입장이라 시선을 맞추지 않고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상봉은 그쯤 해두고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서 어서 손 씻고 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몸을 돌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장 아주머니가 하란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절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방금 여사님 얼굴 표정 보셨죠?”
“어머니가 무서워서 그래?”
“그렇지 않아요. 다만 아가씨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요.”
“괜찮아. 이정도로 상처 받을 것 같았으면 지금 나 이렇게 웃지도 못 하고 있을 걸?”
이정도로 상처 받을 것 같으면 그때의 배신감이 더 크게 느꼈을 테니 방황기로 끝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라는 것을 장 아주머니는 돌려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알아들었다.
“어서 손 씻고 가보세요. 두 분 기다리고 계시니까.”
“그럴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안은 후 몸을 돌려 가는 하란이이를 바라보던 장 아주머니가 이만석에게 고개를 돌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정중한 그 인사에 이만석도 예의를 차려서 받아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향하는 뒷모습을 보는데 등이 넓어 보여 상당히 듬직해 보였다.
‘아가씨가 저렇게 다시 밝아진 게 더 자 남자 때문이겠지.’
언제나 살갑게 지냈던 하란이 자신의 말에도 반응을 하지 않아 상당히 심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처럼 밝아졌으니 안도가 되었다.
그게 다 눈 앞에 있는 이만석 덕분이었으니 너무나 고맙게 생각했다.
‘젊은 사람이 예의도 있고 좋은 분을 만나셨네요.’
자식이 없는 장 아주머니에게 하란이는 딸 같은 존재였다.
유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자신을 유모라고 부르며 따르는 하란이가 친 자식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손을 씻고 식당으로 향하니 윤정호 의원과 어머니가 먼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앉게.”
조금 늦게 나타난 이만석을 두고 그는 별말 하지 않은 채 앉으라는 자리를 권했다.
윤정호 의원의 오른편에 몸을 앉히자 그 옆에 하란이 자리에 착석을 했다.
“식탁이 푸짐하네요.”
“자네하고 딸아이가 오는데 신경 써야 하지 않겠나?”
10가지가 넘어가는 진수성찬에 확실히 여러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시간이 좀 들었을 것 같았다.
“그럼 들도록 하지.”
먼저 윤정호 의원이 수저를 들어 국을 떠먹는 것을 시작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콩나물국이 시원하네요.”
“그렇지? 이걸 만든 분들이 요리 실력이 나쁘지 않아.”
윤정호 의원이 말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가사아주머니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많이 먹거라.”
“네, 아버지도 많이 드세요.”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하란이 어머니를 바라보자 별 말 없이 국을 떠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잘 드시라고 말할까 하다가 옆에 이만석이 앉아 있어 분위기가 어색해 질까봐 그러지 않았다.
“토요일에 한국에 왔다고?”
“예, 프랑스를 경유해서 왔습니다.”
“시간이 좀 걸렸겠어.”
“지역이 지역이니 만큼 어쩔 수 없지요.”
“사업이라는게 그래. 자본금만 있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볼 수는 있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리스크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하지. 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는게 사업이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이지. 그런 면에서 보면 중동으로 갈 생각을 할 것을 보면 강단이 있어. 잘나가는 대기업들도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지역인데.”
“그래서 더 그쪽으로 진출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진출을 했다?”
“일종의 개척정신이죠.”
“개척정신이라... 어떻게 보면 자네도 애국자라고 할 수도 있어.”
“제가 말입니까?”
“기름 한 방울이 없는 이 나라가 이렇게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자네 같은 사람들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야. 애국자라는 게 특별 한 게 아닐세. 마음속에 뜻을 품고 있다면 다 애국자인 것을 거창하게 생각할 것이 없어. 그게 하나 둘 모여서 힘이 되는 것이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게 아니겠나.”
“그렇군요.”
아버지와 이만석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는 하란은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같이 지낼 만 한가?”
“불편 한 건 없습니다.”
“다행이구만.”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주로 얘기를 주고 받는 것은 이만석과 윤정호 의원이었다.
하란은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끼어들지 않았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어머니는 그저 식사만 할 뿐이었다.
“맛은 있었는지 모르겠군.”
대화를 나누다보니 식사시간이 평소보다 배는 길어졌지만 음식이 맛이있어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식사시간이 지나가고 윤정호 의원은 서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이만석이 따랐고 하란은 남아 치우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피부가 많이 그을렸어.”
“열기가 강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인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부른 것도 있지만 사실 그것 뿐만이 아니네.”
“저 때문입니까.”
“그렇지. 자네가 한국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딸 아이 얼굴도 볼 겸해서 이런 자리를 가지기를 원했지.”
“저에게 할 말이 있나 보군요.”
“그것보다 알고 싶어서 그래..”
부정하지 않고 대답한 윤정호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민준... 자네 정체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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