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7화 〉 437화 위험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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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나갔다가 데이트도 못 하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회사 쪽의 일이 아닐까 생각 하고 있었다.
사실 회사쪽 일이 아니면 이렇게 갑자기 데이트를 캔슬하고 전화로 미안하다며 가지 못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물어보야 했고 실제로 집에 오면 물어볼 생각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걱정이 되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이만석을 기다려 맞아한 후에 같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턱썰 주저 앉은 이만석이 한 편에 폰을 놔두고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풀었다.
“하란아, 미안한데 물 한 컵만 가져다주겠어?”
“물? 알았어, 기다려.”
잠시 방을 나섰던 하란이 냉수가 가득 담긴 물컵을 가지고 다시 방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일단 물한잔을 건네주고 이야기를 들어볼 참이었다.
“여기.”
건네주는 것을 시원하게 단 번에 받아 마신 이만석이 다시 하란이에게 넘겨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 회사에 문제라도 터진거야?”
“큰일은 아니야.”
“큰일이 아니긴... 언니도 안색이 안 좋던데.”
별일이 아니라고 하기엔 차이링의 얼굴도 좋지가 못했다.
분명 회사와 관련된 일이 분명했다.
당연히 하란이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
“정말로 괜찮은 거야?”
말이 없는 이만석을 향해 하란이 근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다시 물음을 던졌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란이를 뺨을 조심히 어루만지며 웃음을 지어주었다.
물 컵을 가지고 나선 하란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을 때 쯤 지나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민준씨 왔어요?”
“네.”
“언제 온 거에요?”
“조금 전에요. 방금 잠시 대화 나누고 나오는 길이에요.”
“별로 안 좋죠?”
지나 역시도 걱정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 상황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게 이상한 일이다.
“네.”
고개를 끄덕인 하란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이만석은 조금전에 하란이가 자신에게 한 말에 차이링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지.’
아무래도 차이링의 모습을 보고 회사일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당장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만석 뿐만이 아니라 차아링 까지 하란이의 눈에 안색이 좋지가 않아 보이니까 말이다.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군.’
유료주차장에 차를 정차 시키고 막 나서려는 순간에 차이링에게 선물해준 팔찌가 발동 되었다는 것을 이만석은 감지해냈다.
만일을 위해 선물해준 팔찌에 위기순간을 감지하여 발동하는 방어마법인 실드와 주변을 한순간에 풍압으로 물리쳐버리는 윈드를 걸어두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자동적으로 위치를 알려 줄 수 있는 위치추적 마법까지 걸어두어 급하게 지나와 하란이에게 일러두고 그곳으로 워프를 했다.
팔찌가 발동이 되었다는 것은 신변에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당연히 이만석은 바로 차이링에게 가는게 맞았다.
이어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얼굴이 굳을 수 밖에 없었던 이만석은 곧장 차이링의 안위를 살피고 서둘러 상황을 수습했던 것이다.
‘연기였단 말이지...’
이만석은 안나에게 대한 차이링의 친절이 연기였음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그 전까지는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 도착 했을 때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차이링에게 얘기를 들은 후에 그전의 행동들이 연기였음이 드러났다.
안나가 왜 차이링을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 물었던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갔던 것이다.
잠시 동안 그렇게 앉아 있던 이만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곧장 방문을 열여 거실로 나섰다.
그때까지 하란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지나가 놀란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나서는 이만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준씨?”
“갑자기 취소하게 돼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차이링 안에 있다고 했지?”
“응.”
하란이 대답에 이만석이 몸을 돌려 차이링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정말로 큰일이 아닌 거 맞겠죠?”
지나의 걱정스러운 말을 들으며 하란은 이만석이 들어간 방문에서 시선을 때지 못했다.
“당신 왔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슨 이만석을 보며 차이링이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맞아주었다.
“언제 온거니?”
“조금 전에.”
걸음을 옮겨 다가간 이만석이 창가에 있는 원형테이블의 의자를 하나 가져다 차이링이 침대 옆에 놔두고 몸을 앉혔다.
“왜 그랬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이만석.
“......”
차이링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아닌 네 입으로 듣기 위해서 그래.”
이만석이 그녀가 입을 열 동안 잠시동안 기다려 주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약 1분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차이링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거기서 말한 그대로야.”
“정말로 그것뿐이야? 숨기는 것 없이?”
“내가 뭘 더 숨기겠어? 안나라는 그 여자가 위험해 보여서 결단을 내린 거야.”
“결국엔 그 친절도 거짓이었단 말이군.”
“......”
잠시 동안 차이링을 바라보던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나가 그러더군. 날 보고 널 어디까지 믿고 있냐고.”
그녀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보여준 것은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녀 덕분엔 일성회의 체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다 자신에게 신경 쓰는 그녀의 내조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고 보냈어. 네가 보기에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아?”
자신을 속이고 이런 일까지 벌인걸 두고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어쩌면 차이링이 보인 행동에 대해서도 의심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을 했다.
“만약 지금 내가 벌인 일에 대해서 당신이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겠어.”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그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만약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벌일 의향도 충분히 있었다.
지금보다 더 확실하고 철저히 준비를 해서.
“이해 할 수 없을 거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어. 하지만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는 것 보다는 이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어. 지금도 그래.”
차이링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했다.
“차이링...”
“당신이 날 받아 주었을 때... 날 버리지 않고 받아 주었을 때 결심을 했어. 이 남자를 위해 살겠다고. 이 남자만 생각하며 살아가겠다고. 그런 당신의 곁에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를 위험한 여자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 칠 수가 있겠어?”
차이링이 보기엔 안나는 정말로 위험한 여자였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읽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은 정말로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언제 어떤 행동을 이만석에게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런데 비서로 곁에 두고 있다니 더더욱 두고 볼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느새 차이링의 두 눈에 물기가 촉촉히 젖어들어 갔다.
“내가 돈을 바라는 거 같아? 권력을 원하는 것처럼 보여?”
“......”
“지금 일성회에서 물러나라고 해도 당장에 그럴 수 있어. 야망을 가지고 뛰어 든 것이 아니니까. 이번일로 당신이 나에게 실망을 했다는 거 알아. 어쩌면 나에 대한 믿음이 안나라는 그 여자의 말대로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마저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서 벌인 일이었다.
“그렇다고 후회하지 않아. 그럴리 없을 거라며 지나쳤다가 생각지도 못 한 일이 벌어졌을 때 닥쳐올 충격보다는 나으니까.”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는 이만석의 두 눈을 그녀가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상관없어. 일성회에 들어와서 여러 일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지만 그게 설사 미래를 바꿀 아주 종요한 일이라고 해도 나에겐 1순위가 될 수 없어. 왜 인줄 알아?”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차이링이 손으로 닦아냈다.
자신을 나쁘게 봐도 그녀는 충분히 감수하기로 했다.
실망하고 믿음이 흔들려도 그것도 전부 가슴 아파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이번일을 계획해 벌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만석이 잘 못이 된다면.
그가 한 순간에 잘 못 되어 뜻하지 않는 비보를 받게 된다면, 그건 도저히 감수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런 최악의 일이 벌어질 바에야 자신의 손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차이링은 이렇게 당당히 자신의 속마음을 이만석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당신 하나뿐이니까.”
이젠 그가 없는 세상은 차이링은 생각하는 것조차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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