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화 〉 432화 위험한 여자
* * *
안나는 차이링의 질문에 대답이 없었다.
그저 잠시 동안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다시 식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지나는 그런 차이링의 모습을 보면 복잡한 심정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건 지나 뿐만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바라보고 있는 하란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분명한건 그녀들의 눈엔 차이링은 정말로 안나를 진정으로 손님으러써 친절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만석의 수행비서가 여자라고 해서 나쁜 것은 없다.
그를 믿고 따르기로 했으면 좀 질투가 난다고 해도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나에게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마치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안나가 꺼림칙 하면서도 부담스럽게 다가오며 느껴지는 이유였다.
“오빠 오늘 뭐 할 거야?”
“오늘?”
“응.”
하란이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며 물음을 던져왔다.
“일요일이고 반년 만에 돌아왔으니 너희들과 시간 보내야지.”
“정말?”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두고 지나도 밝은 표정을 지었다.
“민준씨가 아주 바람직한 생각을 하고 계셨네요.”
“일에만 쫓겨 살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맞는 말이에요.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살 수가 있겠어요? 그만큼 휴식도 취해주고 해야죠.”
그렇게 말한 지나가 이만석을 향해 은근한 시선을 보낸다.
“그래도 걱정은 덜었네요?”
“걱정?”
“민준씨 피곤 할 텐데 언니덕분에 이대로 밥 먹고 한 숨 더 자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어머? 얘 말하는 거봐. 날 어떻게 보고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놀란 표정을 짓는 차이링을 향해 지나가 새침하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바라보긴, 있는 그대로 보는 거지.”
“이상하다... 나보다 더 기품 있고 단아한 여자는 이 집안에 없는 걸로 아는데?”
“그건 언니 생각이고... 안 그래요, 하란씨?”
“동감이에요.”
하란이가 자신의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어젯밤 어땠는지 애내들에게 알려줘~ 얼마나 편하게 잠을 잤는지.. 단잠을 잤는지 알려주면 납득을 할 것 같은데...”
“자긴 편하게 잘 잤지.”
“그렇지?”
그것 보라는 듯 차이링이 지나와 하란이를 향해 웃음을 지어주었다.
“변태녀...”
그 모습이 상당히 얄미워서 일까.
하란이 작은 목소리로 입술을 삐죽거린다.
“네가 하는 말 다 들린단다~”
“들으라가 한 소리거든요?”
“어머, 그랬니?”
뻔뻔한 차이링의 태도에 너무 얄미워 하란이 무시를 하고는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민준씨 그럼 우리 나가요.”
“외출하자는 겁니까?”
“외출이 아니죠.”
이만석의 말에 지나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의문을 표하는 이만석을 향해 속뜻을 전해주었다.
“전 데이트를 말하는 거예요.”
“아... 그 말이었군요.”
알겠다는 듯 대답하는 이만석을 두고 지나가 눈을 빛내며 들뜬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민준씨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오늘 같은 날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하루 생각하고, 하루 떠올리고, 또 밤잠설치고 꿈꾸고 그랬어요.”
“저 때문에 지나씨가 마음 고생이 많았군요.”
“네...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어요.”
손가락으로 눈 주변을 훔치는 지나의 행동에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 만 자던데...”
“하란씨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니에요, 아무 것도.”
하란이에게서 고개를 다시 돌린 지나가 이만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니 민준씨... 이대로 집안에서 조용히 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버릴 생각은 아니겠죠? 그렇겠죠?”
대놓고 기대를 드러내는 지나의 화법은 나가자는 압박이었다.
“그럼, 식사 끝나고 차 한 잔 한 후에 나가도록하죠. 날씨도 좋아 보이고 나쁘지 않네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한 거예요.”
“좋습니다.”
“오빠, 결정 시원시원하네?”
“망설일 이유가 없지.”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간 이만석은 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응접실로 이동해 그녀들이 디저트와 차를 타는 동안 이만석은 안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같이 갈 거지?”
“아니.”
“안 가겠다고?”
가지 않겠다는 발언에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응.”
“지나씨하고 하란이가 널 불편해 해서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마. 차츰 말도 트고 시간을 보내면서 가까워지면 좋아질거다.”
하란이와 지나는 차이링과 다르게 말을 걸어도 별다른 대답도 없고 거리를 두는 것처럼 냉기를 풍기는 안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어제 밤에는 어떻게 안나에게 가까워져 보려 말을 거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안나는 단답형으로 짤막하게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안나라면 충분히 나올수 있는 반응이었다.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예상하지 못 한 것은 아니어서 별로 실망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차이링이 신경을 싸주는 것 같아 다행이군.’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두 동생들과 다르게 차이링은 안나에게 살갑게 대하며 신경을 써준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사교성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래도 먼 타국에서 함께 온 손님이라고 그렇게 챙겨주니 고맙기 까지 했다.
“근처에 괜찮은 호텔이 어디지.”
“호텔?”
반문을 하는 이만석을 물음에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겠다는 소리야?”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안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봐서 알겠지만 이집은 나와 하란이, 지나, 그리고 차이링 이렇게 네 명밖에 살지 않아. 그래서 빈방도 많고 2층은 아예 사용도 하지 않고 있지.”
“그게 나하고 민준 네 여자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야.”
“한 번만 더 생각해 볼 수 없나?”
“......”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는 안나의 태도로 보아 결심을 굳힌 것처럼 보였다.
‘바로 내린 결정은 아닌 모양이군.’
이런 안나의 태도로 본건데 아무래도 밤새 생각 끝에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
“네가 그렇게 하겠다면 하는 수 없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결정을 바꿀 리가 없어 보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는 길에 네가 머물 호텔을 알아봐줄게.”
“두 사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나눠?”
그때 차이링이 쟁반을 가지고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사과와 참외를 먹기 좋게 깎아놓은 접시를 탁자에 올려두었고 차 두 잔을 이만석과 안나의 앞에 놔주었다.
“뭔가 중요한 얘기라도 나누었나요?”
살갑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차이링을 향해 안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말하기 곤란한 내용인가 보군요.”
이어서 하란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작은 크기의 카스테라 빵을 가운데에 놔두었고 지나가 차 세잔을 차례로 식탁에 세팅을 해놨다.
그녀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하고 하란이가 포크에 사과를 찍어 건네주는 것을 받아든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곤란한 내용이 아니라 호텔에 대해서 얘기가 나와서 그래.”
“호텔?”
“갑자기 웬 호텔이에요?”
“안나가 호텔에 머물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 말이 정말인가요?”
놀란 지나가 안나에게 고개를 돌려 물음을 던졌다.
이어서 하란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때문에 그런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되요.”
왜 안나가 호텔로 가겠다고하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쌀쌀맞게 굴었나.’
지나도 먼 타국에서 온 손님한테 냉정하게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만에 호텔로 가겠다고 하다니 그건 좀 생각지 못한 발언이었다.
압박이 심했나보다.
“두 사람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안나가 지나와 하란이를 향해 예의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놀랍게도 차이링에게 들었던 대로 들려온 말은 영어가 이난 한국어다.
“민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그게 편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나요?”
지나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생각을 달리해 달라 권유했다.
냉랭한 분위기에 거리감과 꺼림칙해서 그랬지 이렇게 대놓고 내쫒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꿀 생각 없어.”
허나 이어서 들려온 안나의 대답은 요지부동이었다.
순간 숙연해 지는 분위기에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 미안해 할 거 없어. 그정도로 안나 애가 상처받는다면 수행비서로 데리고 다니지도 않아.”
“당사자 앞인데...”
직설적인 이만석의 말에 지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보니 차분하게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참으로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정말로 감정이 없나?’
사람이 감정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데 이 사람을 보면 정말로 심장이 뛰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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