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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나만이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431화 (431/812)

〈 431화 〉 431화 위험한 여자

* * *

아침 6시가 되었을까.

창밖에 깔린 어둠이 아스라이 물러날 때쯤 이만석의 품에 안기어 잠들어 있던 차이링의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손으로 눈 주변을 누르며 자극을 주다 소리가 나지 않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부러져 있는 속옷들을 찾아 주섬주섬 챙겨 입은 그녀가 목욕가운을 다시 걸쳤을 때 음성이 작게 들려왔다.

“벌써 일어났어?”

“당신 피곤할 텐데 좀 더 자요.”

이만석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나긋하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살며시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식사준비 다 되면 깨워줄게.”

그러곤 이불을 똑바로 덮어 조용히 안방을 빠져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다 문이 닫히는 걸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부지런한 여자라니까.’

저런 모습이 또한 차이링의 매력중 하나일 것이다.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응접실을 잠시 바라보면서 차이링은 자신의 방으로 찾아가 속옷세트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샤워실로 향해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섰다.

입고 있는 가운을 벗어 던지고 속옷과 팬티를 벗은 후에 이번엔 시원한 냉수를 틀었다.

쏴아아­!

물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샤워기 밑으로 향하니 머리맡을 시작으로 차가운 물줄기가 그녀의 몸을 적시어왔다.

손으로 얼굴을 씻으며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눈을 감았다 뜨는 차이링은 얼음처럼 차가운 물결에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원래 그녀의 기상시간은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어서 오늘은 그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난 꼴이었다.

시원한 물을 맞으며 깨끗하게 몸을 씻어나가기 시작한 차이링은 곧이어 타올에 거품을 내어 몸에다 문질렀다.

20여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샤워를 끝낸 후 수건으로 젖은 머리와 몸을 닦아내고는 다시 속옷을 입고 목욕가운을 걸친 후 거실 밖으로 나섰다.

방으로 돌아가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옷을 갈아입고는 정리정돈을 끝낸 후에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하나하나 아침준비를 해나갈 때쯤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하란이었다.

“일찍 일어났네.”

“국 끓이고 있었어요?”

“응...”

“간단히 씻고 와서 저도 도울게요.”

“알았어.”

기지개를 켜곤 세안을 하러 가는 하란이를 뒤로하고 뚝배기를 올려놓은 가스렌지의 불 조절을 한 후 순두부찌개의 넣을 채소들을 씻은 후에 도마에 올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그렇게 약 5분여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이쪽으로 걸어오는 지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깼니?”

“언니 언제 일어났어?”

“6시쯤에.”

“빨리 일어났네.”

“샤워하고 아침 차리려면 그때 일어나야지.”

“좋은 밤 보냈나봐?”

“그럼~! 아주 좋은 밤을 보냈단다...”

새침하게 바라보는 지나의 투덜거림에 농담으로 받아 주었다.

“응큼해.”

“나 응큼한 거 이제 알았니?”

잠시 동안 새침하게 바라보다 몸을 돌려 가버리는 지나를 보면서 차이링이 칼질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란이 먼저 씻으러 들어갔어.”

차이링의 말에 잠시 멈칫 했던 지나가 샤워실 쪽을 바라보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이가 와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빨리 일어났네.’

평소라면 아직 더 자고 있을 애들이 차례로 이렇게 빨리 일어나다니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아침준비인가.’

어느 정도 밝아 온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안나에게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희미하게 음식냄새가 맡아졌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아침을 준비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허나 그뿐.

안나는 더 이상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다시 창밖의 하늘만 바라보았다.

‘난 여기서 무얼 하면 되는 거지.’

한국에 온지 이제 만 하루가 지난 시점이다.

아직 자신에게 임무나 그런 것이 주어진 것이 없지만 수행비서로서 데려왔으니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던 안나는 문득 어제 밤 샤워를 하러 가다가 이만석이 머무르는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떠올랐다.

그건 분명히 남녀가 교접을 하는 소리가 분명했기에 잠시 그 쪽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차이링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녀 말고도 다른 두 여자가 있으니 섣부르게 확정을 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어 금세 관심을 끊었다.

이만석이 누구와 사랑을 나누던 그의 개인적인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렇게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도 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처다보지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었다.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어.’

자신이 이곳에 머무는 것을 하란이와 지나라고 밝힌 두 여자는 별로 탐탁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그녀들이 좋아하는 이만석 때문에 그런 것 같았는데 안나도 그런 불편한 공간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나가 이 집을 다시 나가기로 결정 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차이링 때문이었다.

CIA에서 활동 할 때부터 안나는 차이링 같은 스타일의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알 수 없는 그런 가면을 쓴 부류들을 상당히 싫어했던 것이다.

엔더슨도 그런 부류 중에 한 명이었다.

차이링이 자신에게 베푸는 호의가 진심을 담아서 하는 게 아님을 안나는 알고 있었다.

안나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가지고 놀거나 시험을 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죽음이 결정되고 버림을 받는 순간 안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배척하기로 한 것이다.

이만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안나는 차이링을 믿을 수 없었다.

가까이 해선 좋을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차이링이라는 그 여자에게선 상당히 좋지 않은 향기가 느껴졌다.

대게 그런 향기를 가진 이들은 겉으론 상대를 신뢰하며 친절하게 다가오지만 그 속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에 상당히 위험한 자들이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철천지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진한 동료애를 내 보일 수 있는 부류가 바로 그런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차이링은 하란이와 지나와 다르게 안나에게 상당히 친절했고 신경도 제일 많이 써줬다.

진정으로 손님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는 하란이와 지나가 안나에 대해서 껄끄럽거나 싫지 않냐고 대놓고 물어볼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안나는 그게 진실 된 행동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죽지 않기 위해 CIA에서 발버둥 쳤고 살인기계로 키워져 해결사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당연히 속내는 알지 못할지라도 이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는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자신이 해준 경고를 어떻게 알아들었을지는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었다.

생각을 고쳐먹고 거기서 행동을 멈춘다면 그런 대로 봐줄만 하다.

허나 멈추지 않는다면 생각했던 그대로 상당히 질이 좋지 않은 부류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만석과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안나는 기꺼이 행동에 나설 의향이 있었다.

그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만석에게도 좋은 것인지 모른다.

쪽!

입술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에 이만석의 두 눈이 떠졌다.

“우리 자기 잘 잤니?”

앞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차이링이 서있었다.

“아침 다차렸나보군.”

“응... 잠깨고 나와.”

그러고는 다시 살짝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방을 나서는 그녀.

잠시 동안 자리에 누워 있던 이만석이 30초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문을 열고 안방을 나섰다.

코를 통해 전해저 오는 음식냄새가 상당히 향긋하다.

식탁족으로 걸어가보니 하란이가 반찬을 놔두고 지나가 공기밥을 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 일어났어?”

“좋은 아침이에요.”

“냄새가 좋은데?”

“국 다 끓였으니까 간단히 씻고 와.”

세안을 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이만석의 눈에 샤워실에서 나서는 안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의 첫 날밤은 어땠어?”

지나쳐 가는 안나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모르겠어.”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대답을 남기고 안나는 그렇게 지나쳐갔다.

‘싱겁긴.’

그에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씻으러 들어갔다.

간단히 세안을 마치고 수건으로 닦고 나와 식탁으로 향하니 어느새 모두가 다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이런... 내가 기다리게 했나.”

그렇게 이만석이 자리에 착석하고 나서야 아침식사는 시작이 되었다.

수저로 조심스럽게 국그릇에 담겨 있는 순두부찌개를 떠서 먹어본 이만석은 뜨거우면서도 순두부의 연한 맛과 국물의 감칠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국 맛있네.”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맛없을 수가 있겠니? 더 있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말해.”

이만석의 칭찬에 차이링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안나씨도 언제든지 말해요.”

이어서 차이링은 수저를 들어 올리는 안나를 향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수저를 들다 말고 안나가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아셨죠?”

다시 말을 이은 차이링의 입가에 상냥한 미소가 지어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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