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6화 〉 426화 위험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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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안나 널 별로 환영하지 않는 것 같지?”
하란이와 지나, 그리고 차이링이 부엌에 가있는 동안 이만석이 짧은 시간동안 보았던 그녀들의 태도에 대해서 말했다.
그녀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를 일이다.
좋아하는 이성이 또 다른 여자를 데려왔는데 그걸 좋게 봐줄 여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란이와 지나 같이 경계를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관없어.”
이만석의 말에 안나는 그녀들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대답을 했다.
안나의 성격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는 반응이었다.
“난 그저 네가 가자고 해서 따라 왔을 뿐이니까.”
안나는 다른 건 없었다.
그가 같이 한국으로 가자고 했고 안나는 이만석의 말을 따랐을 뿐이다.
“그게 전부야?”
단지 그게 전부인지 이만석은 궁금했다.
“다른 건 없어.”
딱 잘라 말하는 안나의 모습에 이만석은 쓴 웃음을 지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그때 안나가 반대로 이만석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얼마든지.”
상관없다는 듯 말을 받는다.
“차이링이라는 그 여자.”
“차이링?”
“정체가 뭐지.”
“그녀에 대해서 뭔가 궁금한 것이라도 생겼나봐?”
“......”
말없이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안나를 보며 이만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와 같이 일성회에서 일하고 있어.”
“그것 뿐?”
“날 많이 사랑하고 있지.”
“......”
말이 없어진 안나의 모습에 이만석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농담이야. 구체적으로 말 해봐. 그녀에 대해서 뭐가 궁금한 건지.”
안나가 차이링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바로 그녀다.
아마도 차이링에게서 뭔가 느낀 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여자에 대해서 얼마나 믿지?”
그리고 안나가 던지는 말은 믿음에 관한 질문이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겠지만. 그녀가 나에게 대하는 건만은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지.”
그 후로 안나는 더 이상 별다른 말이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에 물어볼까 싶었지만 그녀의 성격상 아무래도 대답해 줄 것 같지 않기에 생각을 접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식탁으로 오라는 하란이의 말에 이만석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지나씨는 아직 모르겠지만 차이링과 하란이의 요리는 맛있으니 괜찮을거야.”
따라 몸을 일으키는 안나에게 이만석이 그렇게 말해주어다.
걸음을 옮겨 식당으로 향하니 과연 넓은 식탁에는 김치찌개부터 시작해 불고기에 장조림 까지 갖가지의 음식들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녀들의 정성에 이만석은 충분히 기분이 좋아졌다.
“어서들 앉아요.”
주걱으로 공기밥을 담아 지나에게 건네주는 차이링이 예쁜 웃음을 지으며 맞아주었다.
걸음을 옮겨 맨 안쪽의 가운데 편에 있는 의자를 천천히 빼내어 앉았다.
“반년 만에 먹어보는 한식이로군.”
이집트와 중동에서 지내면서 그리웠던 음식들이었다.
“거기에선 안 먹었나 봐요?”
이집트라고 해서 한식을 하는 가게가 없는게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찾아가 먹을 수 있었다.
“따지는 것 없이 가편하게 먹었습니다. 레스토랑에 파스타 같이 느끼한 음식들이 많아 좀 물리긴 했지만 말이죠.”
“많이 있으니까 많은껏 먹어 오빠.”
찌개를 그릇에 담아 조심스럽게 앞에 놔주는 하란이의 말에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상 차려진 식탁이 군침을 돌게 만든다.
“안나씨도 거기 앉아요.”
식탁에 밥그릇을 놔두며 차이링이 멀뚱히 서있는 안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식탁을 바라보고 있던 안나가 그제야 의자를 빼내어 자리에 몸을 앉혔다.
사람 수에 맞게 지개와 밥을 다 세팅하고 나서야 세 여자들도 자리에 착석했다.
이만석의 오른편의 세로줄 앞엔 안나가 착석했고 그 옆엔 지나가 앉았다.
지나가 마주보는 자리엔 하란이가 앉고 그 옆에 안나와 마주보는 자리에 차이링이 착석했다.
“찌개는 제가 끓여 봤어요.”
“지나씨가 말입니까?”
“네.”
“맛있을지는 장담 못하겠네요.”
이미 지나는 찌개를 끓여서 간을 잘 맞추지 못해 난처한 적이 있었다.
수저를 든 이만석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묵은지의 깊은 맛과 감칠맛이 감돌며 얼큰한 느낌이 입안 가득 퍼졌다.
“먹을만합니다.”
“정말이요?”
“지나씨가 그동안 얼마나 요리학원을 열심히 다녔는지 매일같이 밤늦게 들어오더라니까?”
“그래?”
“응... 그래서 나도 긴장하게 되었어.”
차이링과 하란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여러 생각을 했던 지나였다.
그동안 아주머니나 어머니가 요리한 것들만 먹거나 음식점에서 사먹는 게 다였던 그녀여서 요리는 하나도 하지 못 했다.
자신만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이만석이 이집트로 떠낙 얼마 지나지 않아 당장에 요리학원을 끊어 다녔다.
처음엔 칼질을 하는 것이나 간을 맞추는 것, 양념을 만드는 것도 뭐 하나 쉬운게 없어 참으로 애를 많이 먹은 그녀였다.
하지만 근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매일같이 연습하고 배우는데 매진을 하며 흘린 땀과 노력의 성과가 오늘로써야 인정을 받는 느낌이었다.
“저보다 하란씨가 더 요리를 잘 하잖아요.”
“아니에요. 저도 더 배워야죠.”
그런 지나의 모습을 보고 하란이 또한 위기의식을 느껴 게을리하지 않아 저번보다 실력이 더 늘어났다.
하란이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반년 만에 먹는 집 밥 이어서 그런 것인지 장담 할 수 없지만 반찬들에 저절로 손이가고 밥도 꼬들꼬들하게 잘 지어저서 먹는 맛이 있었다.
“한식은 잘 못 먹어 봤을 텐데 입맛에 맞아요?”
차이링이 수저를 들어 국을 떠먹는 안나를 향해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나쁘진 않아.”
“다행이네요. 더 먹고 싶으면 말하세요. 드릴 테니까.”
“......”
다시 말 없이 식사를 이어가는 안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차이링을 두고 하란이와 지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얘기를 해도 웃기만 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차이링의 모습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이링이 손님 대접을 아주 톡톡히 하네?”
“흐응~ 그거 칭찬이지?”
“물론.”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의 모습에 차이링이 야릇한 눈빛을 보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식사에 이어갔다.
그 후로도 차이링은 안나에게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을 쓰며 챙겨주었다.
이 반찬은 누가 만들었는데 어떻다느니 하는 설명과 얘기를 걸며 화목한 분위기를 냈다.
허나 정작 하린이와 지나는 차이링처럼 안나에게 그렇게 대할 수가 없었다.
따로 말을 했던 것처럼 꺼림칙하고 찝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여러가지 못다한 대화를 나누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차이링은 청소기를 가지고 비어 있는 방 하나를 골라 안으로 들고 들어가 먼지를 치웠다.
바닥에 깔고 덮을 이불하고 베개도 가지고 와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뒤 따라 들어와 서있는 안나를 향해 돌아서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도록 해요. 손님을 위한 거처 가 마련되어 있는 게 아니어서 말이죠.”
“......”
“세면도구는 있겠죠? 샤워실은 방을 나와서 복도를 지나 거실 오른쪽 편에 있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안나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무슨 생각이지.”
“네?”
“나 그런 행동 참지 않아.”
안나의 경고성 발언에 차이링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행동이라니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 두 여자가 당신 보다는 나아. 적어도 이런 짓거리는 하지 않으니까.”
“말씀이 심하시네요. 짓거리라니. 전 그저 그이의 수행비서에다 먼 타국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손님이니 잘 대해주는 것뿐인데... 그게 안나씨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너, 민준에게 특별한 여자겠지.”
“특별하다는 게 사랑하는 사이가 맞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아마도 맞을 거예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차이링에게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던 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경고를 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
안나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저 몸을 돌려 방으로 가지고 온 짐을 정리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차이링이 다시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편히 쉬도록 해요. 필요한 거 있으면 찾아와서 말해줘요.”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와 살며시 문을 닫고는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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