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화 〉 407화 나가야 할 방향
* * *
눈을 잠시 감았던 안나는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공간이동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눈을 떴다.
“놀랐나보군.”
안나의 몸이 움찔 하는 것을 느낀 이만석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이만석을 바라보는 안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함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왜 자신을 처다보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놀리는 거 아니야. 나 같아도 이렇게 높은 하늘에 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았다면 움찔 했을 거야. 당황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곤 안나를 향해 하얀 이빨을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
계속해서 자신을 처다 보는 그녀의 시선이 이만석이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의아한 눈빛을 보이며 물음을 던졌다.
“무슨 문제 있어?”
질문을 던지는 이만석을 향해 그제야 안나가 닫혀 있던 입을 열고 대답 했다.
“지금 그 말이 더 기분 나빠.”
“기분 나쁘라고 한 말 아닌데? 으음... 뭔가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
“계속 해서 놀리면 가만 안 둬.”
능청을 부리는 이만석의 행동에 안나가 차가운 음성으로 경고성을 말을 내뱉었다.
“가만 안 둔다는 것은 그냥 넘기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야?”
“그래.”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이만석이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지금까지 적들을 상대하던 네 모습을 생각하면 상당히 무서운 말인데.”
그때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이만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참... 그러고 보면 여기서 날 가만 안놔둔다고 하면 다툼이 일어 날 테고 그러다 내가 놓치기라도 하면 추락 할 거다. 아무리 너라도 이 정도의 높이면 무사하지 못 할 텐데 괜찮겠어?”
“......”
이만석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 안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땅이 아닌 알레포 청사의 5층 높이에서 재도 50m는 훌쩍 넘어가는 높이의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 이대로 지상으로 추락하면 살아남을 가망성은 없어 보였다.
가만히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안나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감싸 안았다.
“괜히 자존심 세우지마.”
“......”
“좀처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네가 내 능력에 대해서 신기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이러는 거야. 절대로 여기서 널 놓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편안하게 마음 가져. 설사 네가 다 같이 죽자고 공격하더라도 놓지 않을 테니까.”
끝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안나의 귀에다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어쩔 때 한 번씩 보이는 그런 네 모습, 상당히 귀엽다는거 아나?”
그러고는 다시금 웃음을 짓는데 무심코 지나치는 여성이라도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상당히 매력적인 살인 미소가 아닐 수 없었다.
“......”
정작 안나는 평범한 여자들과는 달라서 그런지 여심을 녹일 그런 미소에도 예의 무펴정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나인가...’
내심 조금은 당황하지 않을까 했던 이만석이었지만 차가운 그녀의 얼굴에 잠시 가졌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상처 입은(?)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고개를 아래로 돌리던 이만석의 귀에 안나의 말이 다시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라니?”
“지금 너의 그 말. 무슨 뜻으로 나에게 한 거야?”
아문 반응을 보이지 않다 갑자기 이런 말을 던지는 말에 반문을 했던 이만석은 생각 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까 말 했잖아. 신기해하거나 조금 전에 움찔하던 네 모습이 귀여웠다고.”
“단지 그것뿐이야?”
“그럼 뭐가 더 필요해?”
“날 안고 싶어?”
“그러니까 귀여워서..잠깐...방금 뭐라고?”
재차 물어오는 안나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을 하던 이만석은 다음으로 튀어나온 안나 말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날 안고 싶냐고 물었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네가 날 안고 싶어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 원한다면 상대해 줄 테니까.”
“......”
순간 이만석은 그녀의 생각지 않은 폭탄발언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를 죽이러 간 그날... 너하고 계약을 했을 때 엔더슨의 목숨을 대가로 난 이미 너에게 내 몸을 준다고 했었어. 그건 거래의 내용이었고 아직도 유효해. 난 엔더슨의 목숨을 넘겨 받았지만 넌 거래의 대가를 아직 받지 않았어. 그러니 내 몸을 원한다면 말해. 그런 행동 하지 않아도 줄 테니까.”
“너 지금 여자로써 지금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하는 말이야?”
자신을 가지고 음란한 눈빛과 상상을 했다고 죽도록 패버리고 뺨을 때리던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발언이었다.
잠시 동안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만석은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 거래는 이미 내 스스로 받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으니 끝이 난거다. 그리고 그때도 말 했지만 특별한 일 아니고서는 함부로 싫다는 여자 범하는 그런 개차반은 아니야. 조금 전에도 말 했지만 단지 신기해하는 네 모습이 귀여워서 그런 것뿐이야.”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뭘 그걸 가지고 후회를 하나마나야?”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갑자기 어깨를 끌어안은 그녀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입술을 빼앗긴 안나의 두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만석은 능숙하게 자신의 혀를 꺼내어 그녀의 입안으로 밀어넣고는 찐득하게 굴리며 빨았다.
“쭙!”
타액이 섞이는 야릇한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가는 동안 아무리 그녀라도 적잖이 놀란 것인지 그대로 경직이 된 채로 굳어 있었다.
말랑한 그녀의 혀의 감촉과 타액을 느끼며 키스를 이어가던 이만석은 살며시 그녀의 등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이 입을 틀어막고 있던 이만석은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밀쳐내는 순간이 돼서야 입을 때어냈다.
“무슨 짓이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는 안나의 모습에 이만석이 혀로 입술을 축이며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네가 말한 거래는 끝났어.”
“......”
아무 말이 없는 안나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널 정말로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네가 싫다고 해도 안을 거야. 넌 특별한 경우에 들 만큼 나에겐 사실 충분히 관심을 끄는 여자거든.”
조심스럽게 다시 안나를 자심의 오른편으로 이끌어 감싸 안은 이만석이 아래에 펼쳐진 알레포 시청을 내려다보았다.
“IS놈들은 나를 보며 신의 사자라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더군. 너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이만석과 시리아에 와서 여기까지 거쳐 오며 들었던 말이었다.
전에 이곳에 온 일에 대해서 듣지를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일을 했을지는 예상이 가는 안나였다.
“그 얘기는 IS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에 퍼져나갔어.”
대부분 혈겁을 일으킨 알 무하드를 알레프라 부르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것을 띄우기 위한 허무맹랑한 얘기로 치부했었다.
불을 부른다느니 하는 얘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전혀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 그들이 바라는 일을 내가 보여줄 참이야.”
그 말을 끝으로 이만석은 다시 몸속에 잠제 되어 있는 고리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이만석의 주변으로 따스한 기운이 맴도는가 싶더니 그것은 안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정확히 다섯 개의 고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이만석은 점점 더 힘을 끌어올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을 맴도는 기운은 주변으로 퍼저 나갔고 잠시 후 하늘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파지직!
처음엔 빠른 속도로 번쩍이며 스파크가 일던 것이 나중에 가서는 반경 십여미터의 공간을 점하고 일기 시작했다.
어느새 옅은 운무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밑에서 올려다보는 이들에게서 완전히 가려놓은 상태에서 이만석이 다시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잘 봐둬.”
안나의 허리를 제대로 받쳐준 이만석이 그 순간 5서클 힘을 한 순간에 개방시켜버렸다.
파지지지지지직! 콰아아아앙!
스파크가 일며 정전기가 일 듯이 번쩍이던 전기의 줄기들이 세차게 지상으로 내리 꽂히며 시청건물을 강하게 강타하고 말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번개를 맞아도 꿈쩍도 하지 않을 시청 건물이 마치 강한 포탄을 맞은 것 마냥 강한 폭발음을 일으키며 번쩍이는 전선의 줄기와 함께 건물 전체가 불꽃에 휩싸이며 터져나갔다.
마치 신이 폭발을 일으키는 심판의 번개를 이용해 철퇴를 내리듯 이만석은 라이트닝 볼트를 시전하여 부딪치는 순간 전선 줄기에 응축시켰던 힘을 터트려 버리며 강한 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만약 이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하늘에서 내려 꽂힌 번개에 순식간에 시청 건물이 폭발해 버리는 기이한 관경이 아닐 수 없었다.
불꽃과 화마에 휩싸여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나는 처참한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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