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5화 〉 375화 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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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침묵이 지나가며 잠시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설마하니 이런 선택의 순간이 오게 될 줄은 몰랐던 이들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면서 여러 감정을 종합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좋다.”
그때 데르말로가 먼저 침묵을 깨고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선택의 폭이 없는 것 같은데... 나쁘지 않으면 까짓 거 그렇게 하지 뭐.”
“데르말로!”
그 말에 놀란 느루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언성을 높였다.
설마하니 그가 수락 할 줄은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어찌 쉽게 수락을 할 수가 있겠는가.
“진탕하게 한 판 놀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쫒기면서 개죽음의 신세는 되고 싶지는 않거든.”
IS 때문에 브로커의 생활을 접고 이 일까지 도모하게 된 것이지만 사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좋게 풀릴 것 같지도 않았다.
대치만 길어지고 있고 그게 짜증나서 시원하게 한 판 벌이자고 말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개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느루 당신에게 이런 말 하게 돼서 미안하지만 여기에 배치되어 있던 애들 중에 우리애들은 없었으니 좀 더 편하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무엇보다 우리가 바라던 것을 내준다고 하잖아. IS놈들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마당에 이곳에서도 그런 생활을 할 수는 없어.”
“그렇다고 이놈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말 해봐.”
“당신 믿으로 들어간다고 치면 강압적으로 그 지시에 따라야 하는 거야?”
“그게 궁금한 모양이군.”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은 자율적으로 행동을 맡길 생각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일은 어쩔 수 없이 따라줘야 할 거다. 물론 사고를 치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겠지.”
“평소에는 자율적으로 맡기겠다는 말?”
“그래.”
“사고라는 것이 혹시나 모의를 짠다거나 비리를 저지리는 것, 그런 것을 말하는 거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해했어.”
고개를 끄덕인 데르말로가 샤킵을 바라보았다.
“샤킵 네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도록할게.”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느루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강요할 마음이 없다. 어찌됐건 당한 것은 네가 데려온 애들이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야.”
“데르말로 진짜냐......”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말하는 그의 말에 데르말로가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잖아. 거짓말 같지도 않고. 평소엔 자율적으로 놔둔다고 하는데 그러면 딱히 나쁠 것도 없지.”
데르말로가 샤킵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했지만 느루는 그게 곧 수락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샤킵의 얼굴은 보면 상당히 진지하게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 또한 데르말로처럼 새로운 삶을 찾아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지 죽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IS를 피해 이런 곳으로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넌 어떻게 할 거지.”
샤킵이 느루에게 의견을 물었다.
데르말로는 정했으니 느루만 결정을 하면 샤킵이 결론을 내릴터였다.
물론 그 또한 느루의 의견을 존중해줄 생각이었다.
그가 바라서 자기가 데려온 애들을 이 주변을 배치시켜 분위기를 점하려 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결국 부하를 잃은 건 그 혼자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거냐고?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고 있어?”
“네 의견도 존중하니까 물어보는 거다. 이건 나와 데르말로 뿐만이 아니라 셋이서 도모한 일이니까. 네가 따르지 않겠다고 해도 난 수용할 생각이야.”
“뭐라고?!”
순간 느루의 인상이 그대로 일그러졌다.
“역시 이미 마음에 정리를 두고 있었구나. 그렇지?”
“이 보다 나은 선택이 없으니까. 합리적으로 가는 거다.”
“지금 샤킵 넌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놈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난 인정 못해. 이 녀석에게 어떻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가 있지?! 자존심을 개나 줘버렸어. 이런 너희들을 믿고 일을 같이 도모했다니 내가 미쳤지.”
데르말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느루를 바라보았다.
“느루, 네 기분이 어떤지는 이해를 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우릴 말하지 마라.”
“넘어가버렸군. 두 사람다 이 놈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버린 거야.”
두 사람을 노려보던 느루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그대로 걸음을 옮겨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아버리는데 이만석은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잠시 동안 느루가 들어간 방을 바라보던 데르말로가 고개를 돌려 다시 이만석을 처다보았다.
“그럼 정해졌군.”
“약속 꼭 지켜라.”
그 말에 이만석을 향해 데르말로가 다짐을 받아내겠다는 듯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겠다.”
물론 이런 약속을 받아낸다고 해도 세상에 공표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효력이 큰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자꾸만 이만석의 뒤를 무표정한 얼굴로 지키고 서있는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혼자서 50여명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리다니,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분적으로 전부다 총기를 다 다룰 줄 아는 자들이었다.
거기다 샤킵을 따라 용병으로써 전장을 누볐던 부관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교육도 받은 상황이라 더욱 그러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이대로 가는 것으로 하지. 자세한 것은 내일 다시 만나서 대화 나누도록 하는게 좋을 거야. 그동안 밖에 있는 것들 좀 애들 불러서 정리해 둬.”
“간다고?”
“얘기 끝났으니 가봐야지. 아까 말했잖아. 대화 끝나면 간다고.”
그 말에 데르말로는 속으로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진심이었어.’
대화가 끝나면 가면 된다는 말에 자신은 물론이고 느루도 상당히 어처구니없어 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이렇게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가볍게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눈 이만석은 정말로 자신이 말 했던 것처럼 아무일 없이 걸음을 옮겨 문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안나가 걸음을 옮기는데 샤킵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안나같은 여자는 처음 보았기에 그런 것이다.
‘누가 훈련을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인간병기를 만들어냈군.’
도도한 분위기와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가면 뒤엔 죽음의 사신이 목을 취하려 기다리고 있는 꼴이었다.
그녀에게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상당히 위험한 냄새가 이쪽으로 풍겨오고 있었다.
‘저런 여자를 곁에 두고 있는 저자는 대체......’
그의 시선이 문 밖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이만석에게로 다시금 향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거야?”
“얘기 나누었으니 가봐야지.”
“저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그럴 수는 없어. 이미 저들 모르게 악수를 나누면서 조치를 취해 두었으니까.”
“......”
그 조치라는 게 안나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만석이 가진 능력을 생각하면 보통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깔려 있는 시신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두 사람은 전혀 인상을 찡그리거나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한 다면 상당히 소름끼칠만한 풍경이었지만 다행히 현재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 자의 처리는 나에게 맡겨줬으면 좋겠어.”
“그 시선 때문인가.”
“......”
이만석은 느루가 중간에 안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눈 속에 깃들어 있는 그의 사심은 남자의 음심이자 성적인 욕구였기 때문이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안나 역시 그런 그의 음심을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마음대로 해.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니까.”
이만석의 그런 말에 안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작업할거지?”
“오늘밤.”
“숨통이 붙어 있는 마지막 밤이 되겠어.”
그렇게 말한 이만석이 다시금 안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도 상당히 무서운 여자로군. 자신을 그런 눈빛으로 보았다고 죽이려 들다니.”
“이런 일을 나에게 시킨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가.”
맞는 말이었음으로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그렇게 안나와 함께 해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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