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화 〉 365화 알렉산드리아
* * *
미끈하게 선이 잘 빠진 검은색 쿠페 차량의 엑셀을 밟으며 속도를 높인 이만석은 쭉 뻗은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해 나갔다.
고속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가뿐하게 130이상을 밟으며 달려 나갔다.
차안으로 들어오는 소음이 크지 않아 밖에서 크게 울려오는 엔진소음도 차안에선 그저 몸으로 느끼며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30여분만 더 가면 카이로에 도착하지만 이집트의 수도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가까워 질 수록 차량들이 하나 둘 도로를 점하고 있어 계속해서 이렇게 달려 나갈 수도 없을 것이었다.
중간에 음식점에 들려 식사도 한 터라 어느새 도착하면 해가 지는 시간대여서 주황빛 하늘로 물들어 있을 것이었다.
안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수가 적은 그녀여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지금도 잔잔히 음악만 조용한 침묵을 물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고민이라도 있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하는 것도 아니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안나에게 이만석이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안나가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피곤할 테니 잠 좀 자두면 좋았을 텐데.”
“괜찮아.”
다시금 던지는 이만석의 말에 침묵을 깬 안나가 고개를 돌려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지금 카이로 어디로 가는 거지?”
“웨스턴나일 호텔.”
웨스턴나일이라면 안나도 잘 알고 있는 호텔이었다.
“거기에 표적이 있어?”
“아니.”
“그럼?”
“말 수가 적은 네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걸 보니 궁금하긴 한 모양이군.”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고 곧장 이집트 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간다.”
“알렉산드리아?”
“그래, 거기가 이번에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야.”
“......”
카이로시로 들어서는 톨게이트에 가까워지면서 정체구간이 생겨나는지 앞서 달려 나가는 차량들이 많아 100km아래로 속도를 줄여야했다.
“투랍 정권이 무너지고 시민들과 대치를 하던 치안대의 간부들이 물갈이 되고 약해진 틈을 타 일부마피아 세력들이 뭉쳐서 일어섰다고 하더군. 정국혼란을 틈을 타서 브로커를 통해 무기를 밀수해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어수선한 틈을 타서 알렉산드리아 일부지역을 장악했다고 하더군.”
“그럼 그들을 잡고 있는 보스가 표적?”
“일단은 그렇게 보고 있으면 돼.”
“그 정도의 일은 너 스스로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날 데리고 가는 거지.”
이만석이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안나로써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리자 아마사피 총리의 자택을 습격하였을 때 보여주었던 능력, 그리고 엔더슨을 납치해서 데려온 그의 힘은 그녀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일종의 초능력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것이 있을 줄 몰랐던지라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는 그녀도 적잖이 놀랄 정도였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긴 하지. 하지만 새벽에도 말 했듯이 네 재능을 이대로 놔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보아하니 CIA에서 널 키우는데 돈 좀 들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
대답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여길 떠난다면 갈 곳은 있어?”
“없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 10만달러를 지급하지.”
“돈이라면 나도 있어.”
스위스 비밀은행계좌에 활동자금을 포함한 그녀가 벌어놓은 돈들이 있었다.
다 합하면 수백만 달러나 되는 거금이었으니 자금이라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 돈을 찾는 즉시 넌 CIA의 표적에 들어가게 되겠지.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감시망을 깔아놓지 않을 리가 없잖아.”
안나가 사라지고 엔더슨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공범에 이만석을 포함해 그녀도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능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곳이 CIA여서 절대 쉽게 포기하거나 놔줄 이들이 아니었다.
만약 엔더슨에게 잡혔을 때 죽었다면 아깝긴 하겠지만 그동안 그녀가 이루어낸 성과들이 투자한 것보다 많았으니 넘어갔을 것이다.
살아서 빠져나가 엔더슨이 죽어나간 지금 그녀는 CIA가 가지고 있는 불안요소 중에 하나였다.
당연히 그녀가 활동자금이나 성과 금을 받아서 입금해두고 있던 스위스 은행계좌에 대해서도 감시를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이만석은 어쩌지 못 했지만 안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걸작 품이고 불안요소여서 포기 할 수 없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 돈은 네 돈이 맞겠지만 인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거야. 그 순간 네 위치가 어디인지 탄로 나게 될 테니까.”
“......”
틀린 말은 아니어서 안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정식으로 내가 널 고용하겠다는 말이야. 기한은 1년, 그 후엔 네가 가고 싶다고 하면 따로 보내주도록 하지. 원한다면 계약서를 작성해도 좋아.”
1년이면 월 10만 달러이니 한화로 10억이상의 거금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돈이면 뭘 해도 할 수 있는 자금으로 충분 할 테니 괜찮은 조건이긴 했다.
“계약서는 필요 없어.”
“거절하겠다는 말인가?”
“아니.”
“그럼 수락하겠다는 말이로군.”
“정해진 게 없으니까.”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은 그렇게 나일강 강변을 끼고 있는 전망 좋은 웨스턴나일 호텔로 향했다.
11층에 멈춰선 엘리베터에서 내린 이만석이 안나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1506이라 적혀 있는 문 앞에 멈춰선 이만석이 안나에게 1505라고 적힌 카드키를 안나에게 넘겨주었다.
“받아.”
가볍게 던지며 넘겨주는 것을 받아든 그녀를 보며 이만석이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 10시 비행기니까 쉬도록 해.”
그러고는 문을 열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가볍게 손을 들어 흔들어준 이만석이 안으로 들어섰다.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혼자 복도에 서있던 안나가 옆방으로 이동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 옆에 카드키를 꽂는 곳에 장착하니 전기가 들어왔고 곧장 거실의 아늑한 분위기의 스위트룸의 내부시설이 드러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간 안나는 잠시 거실을 둘러보다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에 드러나는 도시 풍경에 따라 길게 뻗어 흘러가고 있는 나일강을 감상 할 줄 알았던 안나는 커튼을 쳐서 시야를 가려버렸다.
그러고는 곧장 침실로 보이는 곳으로 향해 역시나 그곳의 커튼도 쳐서 가려버리는 그녀다.
침실의 버튼을 눌러 불을 켠 그녀가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검은색 길다란 가방을 한 쪽에 놔두고 매고 있던 작은 배낭도 풀어놓는데 거기엔 옷가지와 속옷들이 들어있었다.
달라붙는 청바지에 하얀색 면 티를 입고 있는 그녀는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군복을 벗어 던지고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모자를 벗어 침대에 내려놓은 안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습관대로 감청을 하기 위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지 살펴본 안나는 한쪽 구석으로 손잡이 가방을 들고 이동해 내모난 손잡이가 달려 있는 길다란 가방의 양쪽 버튼을 눌러서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거기엔 위압감이 물씬 풍기며 검은색을 띠고 있는 길 다란 저격 총이 자리해 있었다.
자리 중간 중간에 파여 있는 검은색 스펀지 홈 안엔 불리해놓은 스코프와 탄창, 그리고 간단히 정비를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현재 그녀가 아끼는 물건이자 유일하게 어디를 갈 때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꼭 챙겨가는 필수품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총기를 꺼내든 그녀는 녹이 쓴 부분이 있는지, 이상이 있는지 평상시처럼 점검에 들어갔다.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두기 위해 하루에 한 번은 꼭 총기수입을 겸한 총기점검을 하는 그녀인 것이다.
익숙하게 만져오던 총기여서 그런지 그녀는 능숙하게 하나하나 분리를 하여 점검에 들어갔다.
매일 같이 꼼꼼하게 해와 서 따로 수입을 할 것도 없어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데 안나는 그러함에도 이렇게 하나하나 꼭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았던 것이다.
{너도 한번쯤 인생의 재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느껴봐야 하지 않아?}
총기를 점검하며 안나는 문득 아무카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총탄이 튀고 사람을 죽이는 이런 세상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그는 안나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을 하며 이런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다른 세상은 허용되지가 않아.’
지금은 이제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어렸던 자신에게 말해주었던 아버지가 프랑스인이며 구호 단체의 의사였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라 그게 안나가 알고 있는 가족에 대한 전부였다.
그녀가 배운 것이라고는 남을 해하고 싸우는 기술이나 총기다루는 것과 추적하는 기술 등 그런 것들이 전부였다.
그쪽으로는 확실히 재능을 타고 난 것인지 세계 각지에서 그녀처럼 시험을 거쳐 마련된 시설로 데려온 아이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세상에 나와선 지금까지 CIA의 해결사로써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아무카무의 말대로 이런 삶 말고도 멋지고 아름다운 여러 나라의 풍경들처럼, 그걸 보며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과 같이,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삶과 세상들이 존재 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나가 그런 세상에 뛰어들기엔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괴리감이 너무 컸고 배운 것 또한 딱히 없었다.
CIA가 내려주는 지령대로 표적을 추적하고 잠입해 들어가거나 저격을 통해 암살을 하며 임무를 완수하고 내어주는 호텔이나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지내왔던 것이다.
휴가라고 해서 간 곳도 CIA가 내준 거처에서 그저 조용히 쉬면서 총기를 손질하고 자신을 단련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CIA의 인간병기로써의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다른 세상은 생각해 본적도, 꿈꿔 본적도 없었다.
이만석의 제의한 거래에 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단지 CIA에서 이만석으로 바뀌었을 뿐 거기서 나왔다고 해도 지금 그녀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