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 345화 작은소동?
* * *
“예? 도망을 쳐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뿔테 안경의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자세히 말해보십시오. 도망을 쳤다니?!”
[그게 중간에 인파들 사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바람에... 설마 그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 눈 팔지 말고 잘 지켰어야 할 거 아닙니까!”
성을 내며 다시 한 번 소리쳐보지만 그런다고 도망간 세린이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계단을 타고 올라 가서 서둘러 달려갔지만 중간에 사라져서 놓쳤습니다.]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소립니까?”
[없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아가씨로 추정되는 여인을 에스컬레이터에서 발견을 하여 밖으로 나가 쫒아갔는데, 확인을 해보지는 못 하고 보내주어야 했습니다.]
“자세히 말 해봐요. 확인을 못 했다니?”
추정되는 인물을 잡았으면 알아봐야 정상인 것을 확인하지 못 했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글라스에 머리색깔은 같았고, 옷차림은 달랐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백화점 내를 수색하며 보던 차에 1층으로 내려가던 에스컬레이터 눈치를 살피는 낌새가 있어 쫒아갔습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남자 때문에...]
“남자?”
생각지도 못 한 말에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드리워졌다.
[스스로 남친이라고 말하며 확인하려던 저희를 제지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 했습니다.]
“선글라스 한 번 벗기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부탁하면 될 거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뜸들이지 말고 말 해보십시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손을 못 써요?”
[말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남자, 아니, 로즈걸스 매니저인 수찬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조차 없었다는 말만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을 하겠는가 말이다.
“뭘 어떤 식으로 손을 써보지 못 했다는 겁니까?”
[기가 눌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몸이 굳어서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경호생활을 해오면서 그런 경험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기세만으로 제압당한 것은.]
“......”
[믿지 못 하겠지만 사실입니다.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얘기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수찬은 알 수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다고 해결되진 않을 테니까. 일단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수찬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다른 애들도 그렇겠지만 메인보컬에 팀의 중심축이어서 받는 부담이 커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세린이 불쌍해 보내준 쇼핑이었다.
혹시나 불상사를 대비해서 소속사와 계약을 맺은 경호업체에서 파견 나온 팀장에게 말해서 붙여주었는데, 정작 사고는 세린이 치고 말았던 것이다.
‘일단 전화해보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수찬이 서둘러 세런의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컬러링이 흘러나오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받지를 않자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점점 초조해져 가는 가운데 드디어 세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도망이라니?”
세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수찬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미안해요, 오빠.]
“그게 사과를 한 다고 될 일이야?! 힘들었으면 나에게 말을 하지 왜 그런 생각을해?”
[말해도 결국엔 경호원이 붙을 거잖아요.]
“그건 다 너희들 안전을 위해서 그런 거야. 극성팬이 얼마나 위험한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전 그런 감시 하에 잡혀 있는 생활들이 답답해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했는데 하루 정도는 편하게 돌아다니고 싶은 날이 있었으면 했어요.]
“세린아. 일단 돌아와. 응? 돌아와서 그에 대한 문제는 나와 한 번 상의해 보자. 네가 원하는 대로 시간 가질 수 있게 그런 안전한 곳이 있는지 알아볼 테니까...그러니까 일단......”
[봐요. 매니저 오빠 말 속에 이미 다 느껴지잖아요. 그런 안전한 곳을 따지면 제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겠어요? 도시 내에서.]
“......”
맞는 말이었음으로 수찬은 반박을 하지 못 했다.
[나 믿어줘요. 무사히 숙소로 돌아 갈 테니까.]
“사장님이 아시면 나 큰일나...”
[오늘도 우리 스케줄 때문에 회사에 출근 하셨다면서요? 매니저 오빠가 우리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아요. 그래서 이러면 안 된다는 것도 알지만... 오늘 하루만... 저에게 시간을 주었으면 해요. 무사히 들어갈 테니까. 이렇게 부탁할게요,]
세린이 이렇게 사정을 해오자 수찬은 문득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로즈걸스가 뜨고 핫 하게 인기가 올라가 이젠 대표 걸 그룹 중에 하나가 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제대로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했다.
반짝 인기에 끝나지 않으려면 확실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몇 년 동안 사생활을 반납할 정도로 정말로 열심히 연예계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요즘엔 외모도 외모거니와 춤, 그리고 노래 실력도 상당히 따지는 추세여서 방심 할 수도 없었다.
세린은 그래서 더 부담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었다.
메인보컬인 그녀가 자기 노래조차 잘 소화해내지 못 하면 그건 또 얼마나 큰 망신이겠는가.
로즈걸스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 또한 그 하나의 모습으로 평가가 달라 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더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얘가 힘들긴 힘들었나 보구나.’
특히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어린 나이에 가요제에 참여하여 뛰어난 가창력으로 실력을 입증했고, 넷 상에서 나름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이들을 제치고 상까지 타면서 인터넷에 핫이슈로 떠오르며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었다.
거기다 외모도 반반한데다 활달한 성격에 유별나게 튀었던 세린이어서, 소속사에서 스카웃 해서 데려온 순간부터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커, 며칠 동안 휴가를 달라거나 쉬게 해달라는 얘기도 꺼내지 않았었다.
로즈걸스는 첫 데뷔를 할 때 그녀의 본명이라 할 수 있는 은유하가 다시 검색어 순위에 오른 것 만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꼭... 돌아올 거지?”
[약속 할 게요.]
잠시 동안 말없이 주저 하던 수찬이 결국은 허락하고야 말았다.
“알았...어.”
[고마워요, 오빠!]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수찬은 다시 폰을 바로 잡았다.
“끊기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볼게.”
[물어보세요.]
“너 혹시... 남자와 같이 있어?”
[그럴 리가요. 오빠도 잘 알잖아요. 그러면 난리 났을거라는 거. 금방 경호원들에게 잡혔을 걸요?]
“그렇겠지? 사실 너로 짐작이 되는 애가 낯선 남자와 같이 백화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뒤따라가서 제지했었다고 들어서. 얼굴을 확인 못 했다고 하는데 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어쩌면 그 때문 제가 더 잘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을 잡으러 나갔으니까.]
“음...”
[또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너 혼자니까 진짜 조심해야 된다?”
[알았어요]
그렇게 통화를 끝낸 수찬은 절로 눈살이 찡그려졌다.
‘결국엔 실수로 인해 벌어진 틈으로 도망갔다는 거잖아. 사장님에게 말해서 다른 업체로 바꾸든가 해야지 원....’
확신에 찬 말로 자신에게 보고하던 그 전화를 떠올린 수찬이 눈살을 찌푸렸다.
“매니저 오빠가 허락해 줬어요!”
전화를 끊은 세린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만석에게 말했다.
“상당히 기분이 좋은가 보군.”
“당연하죠! 이제 걱정을 덜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전화가 왔을 때 큰맘 먹고 받은 거예요. 비록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지금 만큼은 세린이 아닌 다시 유하로 돌아가 재밌게 놀 거예요. 시간도 얼마 없는데 뭐부터 할까? 영화관에 안 가본지도 오래 됐는데... 뭐 개봉 했으려나? 카페도 가보고 싶고... 아직 먹어보고 싶은 군것질도 많은데... 고민되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 이 모습을 보면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연예인이라...’
그도 옛날에 젊었을 때 연예인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던 적이 존재했다.
티비 속의 화려한 그들의 삶은 어떠한지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의 세린을 보면 그만큼 대중들의 시선이 있는 만큼 그들만의 고충이 또 존재하는 것 같았다.
“8시라고 했으니 영화는 볼 수 없겠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이제 가요.”
이대로 서있는 것도 아깝다는 듯 세린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서요~!”
그러고는 이만석의 손을 잡고 이끌다가 순간 저도 모르게 이만석의 손을 잡은 것에 당황하며 잡고 있던 손을 다시 놔버렸다.
“시간 얼마 없다며.”
당황하며 서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이만석이 걸음을 옮겼다.
전화를 받기 위해 인적이 드문 길목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다시 번화가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세린은 이만석이 앞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 서둘러 달려갔다.
이만석의 말대로 자신에게 자유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만석의 손을 잡고 당황했던 것도 잠시, 세린은 금세 활기를 되찾아 이만석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동안 유명스타로써 하지 못 했던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이만석이 말한 시간이 8시였던지라 이제 채 3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대여서 시간이 적게 느껴졌다.
사실 이만석을 오늘 처음 만났으니 상당히 낯 썰 것이 분명한데도, 거리감 없는 그의 행동과 말투에 세린은 중간에 당황하는 것 말고는 그리 어색해하지는 않았다.
“이거 한 번 해봐요!”
오락실 안으로 이만석을 데리고 들어간 세린이 농구공을 던져 골대에 넣는 게임기 쪽으로 다가갔다.
“저 잔돈 바꿔올게요.”
500원자리가 없었음으로 세린이 그렇게 말하며 가려 했는데 호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낸 이만석이 투입구에 넣었다.
“동전 있었네요?”
웃음을 지으며 말한 순간 공이 밑으로 굴러가지 못 하게 막고 있던 칸이 치워지면서 농구공 다섯 개가 굴러 나왔다.
“먼저해봐.”
옆으로 비켜서 팔짱을 끼며 바라보는 행동에 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먼저 해볼게요.”
작년에 명절특집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적 있던 세린은 이어달리기나, 연예인시름대회 여자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둘 정도로 운동신경을 선보였다.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MC계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박재석과 함께 진행을 맡았던 유명수가 상당히 감탄사를 터트리고 에드립을 날리며 찬사를 날렸었다.
다른 연예인들 또한 크지도 않은 체구에서 나오는 그런 세린의 운동신경을 보며 놀라기는 매한 가지였다.
격렬한 춤을 잘 추려면 체력도 뒷받침 되어야 하고 그만큼 관리해 왔으니 세린은 자신감이 충분했다.
공을 하나 집어든 그녀가 조심스럽게 골대를 향해 자세를 잡고 집어 던졌다.
털썩!
“들어갔다!”
깔끔하게 들어간 공에 세린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기뻐했다.
이어서 다른 곳을 잡고 집어 던진 세린은 다시 골대 안으로 들어가자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15초 지났다.”
“벌써 그렇게 됐어요?”
확인을 해보니 정말로 1분의 시간에서 15초가 흐른 뒤였다.
60점이 넘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니 6점인 지금 상황에선 턱없이 부족했다.
하나당 3점이었으니 2개를 넣은 셈인데 나머지 18개를 넣으려면 빨리 해야 했다.
순간 조바심을 느낀 세린이 다시 공을 잡고 던졌는데 아쉽게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와 버렸다.
이어서 계속해서 던져보지만 간간히 하나가 들어갈 뿐 1분이 다 지났을 때에는 21점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시간이 쫒기다보니까 생각보다 어렵네요.”
“기다려.”
“동전 바꾸러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세린이 옆에 붙었다.
“그냥 같이 가요.”
바라보는 이만석에게 생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5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온 이만석이 그렇게 하나를 투입구에 넣었다.
“공은 그렇게 던지는 게 아니야.”
“잘난 체는 실력을 보이고 하는 거라구요.”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순간 게임기 소리와 함께 막혀있던 칸이 열리며 공이 아래로 굴러 나왔다.
“잘 봐둬.”
하나를 집어든 이만석이 가볍게 휙 하고 던졌다.
털썩!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농구공이 가볍게 골대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서 집어든 이만석이 다시 던지자 그것 또한 깨끗하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한 공 던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농구공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약 30초가 흘렀을 때 어느새 점수판엔 129점대에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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