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 331화 지나를 보내다
* * *
“휘유~!”
그저 지나를 데려다주러 왔을 뿐인데 졸지에 이삿짐까지 옮긴 민우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침대부터 시작해서 대충 큰 것 들은 다 옮겼으니 이제 혼자서 옮길 수 있을 만한 것들만 남았다.
지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직원들에게 말해 가구배치를 하였다.
그렇게 한 숨을 돌리며 쉬고 있는데 하란이와 차이링 그리고 지나가 오렌지 주스가 따라져 있는 컵들을 한 잔씩 넘겨주었다.
대충 큰 짐들은 다 옮겼으니 숨을 돌리며 쉬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수고 했어요.”
“아닙니다.”
하나같이 얼굴들이 예쁘니 아싯짐 센터의 직원들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미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 말이 사실인 듯 음료수를 받아드는 직원들은 모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민우씨.”
“수고랄 것도 있나요. 오빠니까 당연히 거들어야죠.”
“세진그룹의 회장님 아들이면 거만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자주 그런 오해를 받습니다.”
“이렇게 여동생을 챙기시는 거 보면 역시 좋은 오라버니세요.”
“그, 그렇게 보입니까?”
“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차이링의 말에 민우는 얼굴에 열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어색하게 컵에 따라져 있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쑥스러운 느낌도 들고 부끄러운 것이 마치 어렸을 때 부모님이 칭찬해주면 기뻐하던 그런 소년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지나씨를 위해 마지막까지 힘내 주세요.”
다소곳한 음성으로 말하고 물러나자 민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가슴에 아쉬움이 맴돌았다.
‘무슨 여자가 도도해 보이면서도 나긋할 수가 있지?’
이상하게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뭘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우가 움찔 하며 바라보았다.
“보, 보긴 내가 뭘 봤다고 그래?”
무심한 듯 바라보는 이만석의 시선에 민우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이만석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나가 걱정 되서 온 건가.”
“당연하지. 여기서 너에게 고생할 거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말리고 싶은 심정이야.”
“단지 그것뿐?”
“그, 그럼 내가 그것 말고 여기에 올 이유가 뭐가 있어?”
지나 때문에 온 것은 맞지만 차이링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도 솔직히 없잖아 있었다.
‘설마 눈치 챘나?’
자신이 차이링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눈치 채지 않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쪽팔렸다.
“그렇군.”
허나 이만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행이다.’
그 모습에 안 도의 한숨을 내쉰 민우의 어깨를 이만석이 민우를 지나치기 전 한 손으로 가볍게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수고하도록해.”
“알았어.”
자신을 지나쳐 등을 보이고 걸음을 옮기는 그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민우의 얼굴이 그대로 일그러졌다.
“내가 네 부하직원이냐!”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 어깨를 두드리고 물러나는 이만석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저도 모르게 응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자존심이 상해 저도 모르게 고성이 터져나왔다.
“오빠...왜 소리 지르고 그래.”
“아니 저 놈이 날 아랫사람 대하듯 행동하잖아.”
“목소리 좀 낮춰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응?”
지나의 낯부끄러워 하는 모습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삿짐 직원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에 차이링도 끼어있어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절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에 고개를 돌려 이만석을 바라보니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담배를 하나 물고 창가에 서서 한 손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어 속에서 욱하고 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 놈이 진짜...’
너무 쪽파려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겨우 다시 고성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눌러 참았다.
‘내가 지나 때문에 참는다... 하지만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아라......!’
그동안 운동에서 손을 땐지 제법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뻗어서 나가는 주먹의 한 방은 누구 못지않게 무겁고 강하다고 자신하는 민우였다.
아무리 이만석이 그쪽 세상에서 날고 기는 존재라고 한 방 정도는 제대로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가능할까.’
허나 그 순간 민우의 머릿속에 이만석에 대해서 조사 했을 때 드러났던 내력들이 그대로 떠올랐다.
혼자서 조폭들을 수십 명 때려눕히고 강원도 조직을 굴복 시켰다는 것, 날고기는 전국구라 불리는 주먹을 룸살롱에서 반병신으로 만들었다는 것 까지 무수히 많은 전설들이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볼 때 그 눈빛이 상당히 마음을 위축되게 만든다.
마치 맹수를 앞에 두고 가슴을 졸이고 있는 초식동물의 느낌이라고 할까.
이상하게 이만석의 눈빛만 보면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지나를 위해서 강하게 나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거기다 아버지에게 따로 대화를 나누어보니 정치권에서 비호까지 받고 있다고 했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와 가지고.’
이만석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오는 상대였다.
“오빠.”
“응?”
“오늘 좀 이상한 거 알아?”
“이상하다니...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는 민우의 말에 지나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바라보았다.
“뭐야 그 눈빛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민우의 말에도 가만히 바라보던 지나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하고, 민준씨의 반응에 더 민감하게 구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 다 봤어.”
“봤다니 뭘?”
“오빠 짐 옮기면서 차이링 힐끔힐끔 처다 보더라?”
“너, 너 지금 무슨 소리를... 내가 차이링 아가씨를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말을 하다가 순간 자신의 얘기를 들었나 싶어 저도 모르게 차이링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거봐. 지금도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오빠 말을 들었나 싶어 힐끔 바라보네.”
“......”
순간 꿀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열지 못하는 민우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쪽팔렸던 것이다.
“오빠 차이링에게 관심 있어?”
“마, 말이 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음성을 높일 뻔 했던 민우가 서둘러 입을 닫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리고는 다시 작게 항변하듯 말했다.
“와... 진짠가 보네?”
그런 민우의 모습이 오히려 지나에게 확신을 안겨준 듯 했다.
“오빠 희경이 언니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그냥... 예뻐서 처다 본거다. 아무 뜻도 없어.”
또 다시 항변하듯 말해보지만 이미 민우는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니한테 이를까?”
“지, 지나야...”
“상당히 실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처 받을걸?”
순간 민우가 지나의 팔을 잡더니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앗!”
갑자기 지나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가는 민우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창가에 서서 힐끔 바라 본 이만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둘이서 나누는 얘기를 전부다 엿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의 손에 붙잡혀 밖으로 끌려나온 지나는 진지한 민우의 얼굴에 조마한 심정을 느꼈다.
‘언니 얘기를 꺼낸 건 내가 좀 심했나.’
희경이 언니를 자신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차이링에게 한눈을 판 오빠가 괘씸해서 언니를 대신해 복수도 해줄 겸 놀린 건데 저 모습을 보니 자신이 좀 심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위해 무릎을 꿇어주었던 오빠인데.’
그렇게 되자 자신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봐도 차이링은 충분히 질투가 날 만큼 예쁘게 생겼으니 오빠가 잠시 한눈 팔 수도 있었다.
이쯤에서 사과를 하기로 하고 입을 열려는 그때 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봐주라.”
“봐달라고?”
“내가 얼마나 희경이 사랑하는지 알잖아?”
갑자기 빌어 오는 오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나가 입 고리를 살며시 말아 올렸다.
“그럼 언니한테 잘 할 거야?”
“물론이지!”
“만약 또 한 눈 파는 행동을 보이면?”
“그럼 네가 시키는 것 모두 다 한다.”
“흐음...”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딴청을 부리는 지나의 행동에 민우가 사정을 하듯 입을 열었다.
“희경이에게 말하면 진짜 큰일 나. 걔가 또 너와 다르게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앤데. 신체건강하고 선머슴 같은 너하고는 다르다니까? 얘기를 했다가 분명히 크게 상처를 받을 거야.”
“오빠.”
“넌 통뼈에다 힘도 의외로 세고 외향적 성격이라 욕심대로 다 행동하지만 걔는 연약하고 내성적이라서 또 그렇지가 않아. 그러니까...”
“지금 나 자극하는 거지?”
“자극이라니?”
의아한 얼굴로 말했던 민우는 지나의 눈 고리가 치켜 올라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아차!’
그제야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민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지나 너도 생각이상으로 연약하고 오빠를 위할 줄 아는 마음도 착한 여동생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널 아끼고 엎어 키웠겠어?”
“......”
“미안하다.”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 결국 사과를 하고 말았다.
“오빠 또 한눈파는지 지켜볼 거야.”
“응.”
“이번 한번만 넘어가는 거니까 알아둬.”
“그럼 넘어가는 거다.”
“또 통뼈니 뭐니 하면 가만 안 둬?”
“그, 그건 다 농담이지... 내가 너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잖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민우의 행동에 작게 한 숨을 내쉰 지나가 그대로 지나쳐갔다.
“젠장...”
그런 지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민우가 씁쓸함의 입맛을 다셨다.
저택으로 다시 향하던 지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민우 푸념에 작에 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내가 오빠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
언제나 자신을 위해주는 듬직한 오빠인 민우가 지나에게 한번 씩 귀여운 오빠로 비칠 때가 있었다.
‘그래도 언니를 놔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파는 건 조용히 지나 칠 수 없지.’
친언니처럼 자신을 잘 대해주는 희경의 복수는 안 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