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 330화 지나를 보내다
* * *
“정말로 들어갈거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오는 최여사의 말에 지나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낼 테니까 걱정마...”
“그래도...”
천천히 곁으로 다가간 지나가 최여사를 살며시 끌어 안아주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 정말로 잘 지낼게. 어차피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뭐, 집에도 자주 올게요.”
“휴...”
딸의 활기찬 모습에 최여사는 더 이상 말하지 못 하고 그제 작게 한 숨만 내쉬었다.
지나의 말대로 이미 침대부터 시작해서 가구까지 다 실어서 방금 전에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가구는 새로 사서 들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원래 쓰던 것이 더 편하다고 가져가겠다고 했다.
쓰지 않는 방들 중에 지나가 사용하던 방 크기와 비슷한 방도 있어 거기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가구를 배치하는 것도 편하게 생각 할 수가 있어 큰 걱정거리는 없었다.
“지나야 가자.”
뜨거운 모녀애가 이어지는 가운데 산통을 깨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던 최여사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란 애가 참 답답하구나.”
“예?”
손목시계를 바라보고 있던 민우가 자신을 노려보는 어머니의 시선과 잔 소리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나 얘가 집을 나가는데 넌 걱정도 되지 않니?”
그제야 어머니가 왜 자신을 노려보았는지 알아차린 민우가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도 참...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30분도 안 되는 거리잖습니까? 그리고 나도 지나 나이 때 혼자서 미국에서 살다 왔고, 2년 동안 군대에서 고생도 하고 와서 이렇게 사회에서 떳떳하게 잘 살고 있는데 지나도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원래 이 나이 때는...”
“오빠가 되어 말이 심하구나.”
“예?”
갑자기 말을 끊는 최여사의 말에 민우는 또다시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애가 너하고 같아? 너도 잘 알잖아. 온실 속의 화초 처럼 자란 아이가 집을 나가겠다는데 얼마나 걱정이 되겠어. 게다가 애가 얼마나 섬새한대다 연약하고 가녀린 아이인데. 그동안 고생해서 몸이 마른 거 봐라. 걱정이 안 되게 생겼니?”
“엄마도 참...”
최여사의 말에 순간 지나가 부끄러웠는지 뺨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어머니의 말이 내심 기분은 좋았다.
“하하하!”
순간 민우는 뭐가 웃긴 것인지 갑자기 배를 잡으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너... 뭐가 그렇게 웃기니?”
“하하!...잠...크흡...잔시만...요......크하하!...아아...눈물 나올라...하네.....”
그렇게 한 참 동안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던 민우가 눈가에 묻어 나오는 눈물을 닦아내며 겨우 웃음을 멈췄다.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가녀리다, 섬새하다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웃겨서 말이죠.”
“그 말이 뭐가 웃긴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그래요, 여보.”
아내인 희경이 까지 박장대소를 터트린 민우를 이해가 가질 않는 다는 듯 바라보았다.
“애 보십시오. 병원에 있을 때와 다르게 지금 얼굴이 토실해지고 윤기가 흐르지 않습니까. 거기다 저 팔뚝... 저게 어딜 봐서 가녀린 여자의 팔뚝 입니까? 쌀 한 가마니는 것든히 들 것 같구만. 사실 얘가 통뼈라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우량아에다 의사에게 장군감이란 소리 들었을 겁니다. 못 믿겠으면 희경이 팔뚝이랑 비교해 보면...”
“오빠!”
순간 강하게 쏘아 붙이는 지나의 말에 민우가 움찔 했다.
“너 여동생에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여자에게 통뼈에 장군감이라니요... 당신 너무 했어요.”
“아니... 내가 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뜻을 굽히려 하지 않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민우였지만 세여자의 눈초리가 매서워 목소리가 점점 작아 질 수 밖에 없었다.
“오빠 나 정말로 아끼고 그랬던 거 맞아?”
“당연하지. 내가 너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엎어 키웠는데 기억 안나?”
“이런 행동들을 볼 때마다 의심이 들어. 안 그래요 언니?”
“아가씨 말이 맞아요.”
지나의 말에 희경이 까지 동조를 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이라니까? 어머니가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어릴 때 얼마나 지나 얘를 돌보고 아껴주었는지.”
“미안 한데 그런 기억이 없구나.”
“예?”
“거봐 엄마가 없다 잖아. 오빠 거짓말 한 거 아니야?”
“에아 아까 전에 그건 농담인데 왜 그러세요, 어머니. 그리고 당신도 그렇고 지나 너도 내 말이 농담인거 다 알지?”
“모르겠는데?”
“글쎄요.”
희경이와 지나 또한 어머니와 같은 자세로 나오자 난처해진 민우는 결국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통뼈인건 사실이잖아.’
조금 전에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 민우는 순간 다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발가락에 힘을 주며 겨우 참았다.
“오빠 표정이 왜 그래?”
허나 발가락에 힘을 준다고 감출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조수석의 문을 열고 지나를 태운 민우가 운전석으로 이동해 차에 올라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잘 다녀와요.”
어머니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 그렇게 지나가 앞으로 지낼 이만석의 저택으로 출발했다.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는데.”
“여동생이 집을 떠나는 날인데 오빠가 어떻게 그냥 보낼 수가 있겠어?”
“아까 전에는 웃으면서 날 놀렸으면서.”
“야... 그건 다 농담으로 그런 거지. 진심으로 그랬겠어?”
“정말로 농담이야?”
의심스런 눈초리로 물어오는 지나의 말이 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 자존심 버리고 널 위해서 무릎 꿇은 거 잊지 마라.”
“잊지 않아. 그 일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또 그런 소리한다고 할 줄 알았던 민우는 오히려 미안한 듯 말하는 지나의 말에 가슴이 찔리는 것을 느꼈다.
‘아까 웃은 거 진심이다, 지나야.’
그런 지나를 향해 민우는 차마 자신이 웃은 것이 정말이었음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말할 뿐이었다.
“이제 너 없으면 집이 허전해서 어떻게 하냐.”
“언니 있잖아.”
“희경이도 많이 아쉬워하던데. 외동으로 자라서 혼자 많이 쓸쓸해했는데 자기도 여동생 생긴 것 같아 좋아했거든.”
“그렇긴 하겠다.”
희경이와 자주 쇼핑도 다니고 친 자매처럼 편하게 어울려 지내서 지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살가운 성격에 첫 인상도 나쁘지 않아 금방 친해졌던 것이다.
민우가 희경이와 결혼 한다고 했을 때 지나는 진심으로 두 사람을 축하 해주었다.
“안 그래도 어제 언니가 이거 줬어.”
“팔찌 아니야?”
지나의 이니셜이 예쁘게 새겨져 있는 금팔찌였다.
“내 방에 찾아왔을 때 준거야.”
“그래?”
“내가 나간다고 하니 언니가 많이 슬펐나봐.”
“희경이가 원래 정이 많잖아.”
“그런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인 지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 언니에게 잘해.”
“야... 그건 당연한 거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천천히 골목에 들어서 서초동 저택에 당도한 민우가 이만석에게 연락하여 대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테라스를 통해 이미 이삿짐 차에서 물건들이 하나 둘 옮겨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옮기기 시작했구만.”
차문을 열고 내린 민우가 지나와 함께 걸음을 옮겨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바라보고 있는 이만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니씨 왔습니까.”
“벌써 옮기기 시작했네요?”
“그렇죠.”
“내 집이라고 생각하세요.”
“내...집이요?”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의 말에 지나의 뺨이 붉혀졌다.
허나 그 모습을 민우는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네 눈엔 지나만 보이고 나는 안 보여?”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본 이만석이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그 행동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민우는 그게 곧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싸가지...!’
이만석이 귀를 가리킨 동작은 조금 전에 전화 통화 한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고 싸가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행동이었다.
“지나씨 왔어요?”
그때 뒤에서 발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린 지나의 눈에 하란이와 차이링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 또한 이미 그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차이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나의 인사에 이번엔 차이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같이 지내게 됐네요.”
“네... 잘 부탁드릴게요.”
다행이 하란이 차이링이 좋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아 지나는 편하게 웃음을 지을 수가 있었다.
“민우씨도 같이 오셨네요?”
그때 고개를 돌린 차이링이 민우를 향해 나긋하게 인사를 건넸다.
“예?”
멍하니 차이링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던 민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해버렸다.
“도와주러 온 건가요?”
“그, 그런 셈이죠. 걱정도 되고 해서...”
“좋은 오라버니시네요.”
“아,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죠! 오빠인 제가 오지 않으면 누가 오겠습니까? 참... 이러고 가만히 서있을게 아니지.”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한 민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마이를 벗더니 이삿짐을 위해 열어둔 테라스로 들어가는 아담한 나무 출입문 옆 난간에 걸쳐 두고는 셔츠 소매를 풀어 걷어 올리고 이삿짐 차로 향했다.
“왜 저래?”
그 모습에 지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는데 옆에 있던 이만석은 그저 말없이 쓴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만석처럼 민우가 허둥대는 이유를 알고 있는 하란은 차이링에게 놀아나는 그의 모습을 너무나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나 정작 민우를 저렇게 만든 당사자인 차이링은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저 조신한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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