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312화 솔직함
* * *
“서민준...?”
어눌한 발음으로 이만석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운전석에 있던 조세프의 눈이 백미러로 향했다.
[장례식장은 잘 다녀왔습니까.]
“내가 거기에 갔는지 어떻게 알았나.”
[글쎄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어서 말입니다.]
잠시 동안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메케인 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용건이지.”
[카일러 그자가 너무 빨리 죽어서 아쉬움이 커서 말입니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일 텐데... 아닙니까?]
“말을 함부로 하는군... 카일러는 우리 CIA의 부국장이었어.”
[그래서 후회라도 하십니까?]
“후회라고?”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 죄책감이 느껴진다, 이런 마음이라도 드느냔 말입니다.]
“날 도발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만석의 발언에 카일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충분했다.
안 그래도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인데 저런 식으로 말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카일러 그자가 이대로 가버렸지만 내가 그 아쉬움을 달래줄까 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린 겁니다.]
“아쉬움을 달래준다?”
[일주일 안으로 좋은 소식이 그쪽에게 전해질 겁니다. 어떻게 대응 할 지는 메케인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말입니다.]
“지부를 없애버린 게 너의 짓이냐.”
[알고 있으면서도 물어 보시는군요.]
“그 일로 인해 넌 우리 CIA 뿐만이 아니라 안보국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어. 이게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나?”
순간 폰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에 메케인 국장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우린 너에게 협조를 구할 생각이었어.”
[IS 때문에 말입니까?]
“맞아. 연회에 불러들여 지도부들을 숙청하고 알 무하드는 IS의 독재 체제로 가게 되었어. 내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야. 거기다 시리아에선 불을 뿜고 자연을 조종하는 악마의 화신이니 신의 사자가 지상에 강림 했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소문도 함께 떠돈다는 군. 알라신이 타락한 자를 처단하기 위하여 사자를 보냈다느니 하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소문 말이야.”
[저도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군요.]
“숙청의 바람이 불고난 후부터 지도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게 됐어. 그 일로 인해 알 무하드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 이 말입니까?]
“그래. 널 우리 에이전트로 삼을 생각이었어.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쪽에서도 분위기가 달라져 그러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어.”
[경고를 여러 번 주었습니다. 그 정도면 저도 많은 아량을 배 풀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결탁했나.”
[글쎄요.]
“내가 장레식장에 다녀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러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정보국 요원들에 의해서겠군.”
카일러가 대사관을 통해 한국정부에게 이만석을 잡는 것에 대해서 협조를 요청하였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협조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질적으로 보면 상당히 엇박자가 나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도움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비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도와주는 이들만 해도 김철중이나 그런 거물급 정치인들이었는데 이번 지부의 일로 인해 정부까지 합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그건 알아서 생각하십시오. 어쨌든 일주일입니다. 내가 주는 선물을 어떻게 할진 그건 알아서 생각하셔도 되지만, 내가 왜 이런 전화를 했는지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이만석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서민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까?”
“그렇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한 걸까요.”
“안토니오가 알려주지 않았겠나.”
“그럴 수도 있겠군요.”
메케인은 여전히 굳어진 얼굴을 펴지 못 했다.
갑작스럽게 이만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도 그렇지가 그가 말한 선물이라는 게 영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이라...’
정확히 일주일 안으로 드러날 것이라 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전화를 해서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고 보고 있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메케인은 굳어있는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이제 부턴 안방에서 느긋하게 체스 말을 둘 수는 없을 거다.”
전화를 끊은 이만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카일러라는 그자가 희생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말로는 사직서를 내고 정리를 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 당했다는데 그쪽에선 강도의 소행으로 사건을 잡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허나 당연히 강도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카일러가 살아 있으면 그 쪽에서도 상당히 껄끄러울 테니 그렇게 일을 처리했다고 보는 게 옮았다.
이미 담당 사건이 경찰에서 FBI로 사건이 넘어간 상황이고 책임자가 조지 맥퍼쉬라는 버지니아 본부장이 개입하여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 자는 카일러와 같은 라인을 타고 있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일주일이나 걸리지 모르겠군.”
마법이란 참으로 편리하다.
지금까진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장거리 출장을 다녔지만 시리아의 일로 인해 고서클 마법의 힘이 어느 정도 인지, 텔레포트의 능력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지 않아도, 거기서 생활 하였던 사람의 뇌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갈 수가 있었다.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 시리아에서 IS를 굴복시키기 위해 떠났던 이만석이 실험을 해보았었고 성공을 하였다.
이만석이 원한다면 당장에 카이로로 텔레포트를 통하여 갈 수가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건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아주 재미가 나겠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다 나오는 이만석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음을 던지는 지나의 말에 천천히 커피 잔을 내려놓은 정석환 회장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얘기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물어보도록 하자.”
이만석과 데이트를 하고 난 후 며칠이 채 되지 않아 아버지가 자신을 찾자 지나는 여러 생각을 할 수 박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만석이 집으로 찾아오고 난 후로 한 번도 아버지와 둘이서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만석이 허락을 해주었다고 하는데 별말을 하지 않는 걸 보면 그건 분명하긴 한 것 같았다.
“네, 말해보세요.”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물음을 던저 오는 아버지의 모습에 지나는 속으로 내심 긴장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 서민준 그 친구가 그렇게 좋으냐?”
“민준씨 말이에요?”
“그래.”
“네, 사랑해요.”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미 여자 친구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냐.”
“저 아버지 딸이에요. 죽었으면 죽었지 포기하지 않아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정석환 회장이 지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친구에게 전해 들었을 거다. 내가 두 사이를 허락 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해라니요?”
커피 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신 정석환 회장이 탁자에 내려놓고는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잡아라.”
“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친구 꼭 잡으라는 말이야. 정실이면 더 좋겠지만 정실이 아니어도 좋다. 놓치지 말고 꼭 잡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말에 지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신 먹 거리를 창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안정적이게 팔 수 있는 기반을 다지거나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지.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겠느냐?”
“......”
“너도 그 친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다. 조사를 해보았을 테니. 허나 네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친구의 반도 안 될 거야. 아니... 사실 나도 이젠 어떤 인물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아.”
지나는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는 일부일처제이지만 무시해도 좋다. 정실이 안 된다면 후실로도 들어가 네 남자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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