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화 〉 308화 그녀들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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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하란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니, 사실 말이 없다기보다는 아직 조금 전에 겪었던 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옮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어 그런 것도 있지만 눈앞에서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 것은 처음 보는 관경이었다.
입에 손수건을 물더니 망설이지 않고 나이프를 가져와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은 공포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이었다.
손가락이 잘려나가면서 베어져 나오는 피를 본 순간 놀라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 소리자체를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런 것들보다도 하란이 놀랐던 것은 차이링의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그림 같이 올라간 눈매의 곡선과 얼굴 생김새는 마치 수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외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허나 그와는 다르게 언제나 웃음을 짓고 다니며 홀리는 듯 한 말투와 거리감 없는 행동은 치밀성이 높은 여성 같기도 했다.
살갑게 대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과 모습들도 있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허나 조금 전의 모습은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차이링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물론 차이링이 일성회라는 뒷세계에 몸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거기에 소속 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상당히 놀라긴 했지만, 성격이 쾌활해서 와 닿지 않았던 면이 있었던 것도 있긴 했다.
그런 쪽에서 일한다고 해서 성격이 다 안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조폭하면 사나운 인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명하니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손가락을 자르는 대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받아드리는 모습이나 행동이 역시나 일반적인 여자가 아님을 물씬 풍기게 만들었다.
냉정한 행동이나 거친 말투는 그동안 하란이가 보아왔던 차이링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랐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니?”
운전을 하다말고 차이링은 생각에 잠겨 있는 하란이에게 말을 걸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봐.”
“언니의 진짜 모습이 뭐예요.”
“내 진짜 모습이라니?”
하란이의 말에 차이링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뭔가 골몰히 생각하는 모습에 물어본 것인데 저런 질문을 던지니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생각하고 있었던 게 그거야?”
“맞아요.”
하란이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차이링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후후훗...! 내 진짜 모습이라니 웃긴다.”
“웃지 말아요. 저 진지하니까.”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잖아. 난 그런 거 생각해 본적도 없는데.”
“생각해 본적 없다구요?”
“그럼~!”
신호에 잠시 차를 멈춘 차이링이 하란이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그걸 보고 그런 말 하는 거 같은데 내 말 맞아?”
하란이는 차이링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의사를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어. 다만 상황에 따라 강하게 나갈 뿐이지.”
“강하게 나간다고요?”
“봐서 알겠지만 그런 놈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만약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면 깔보고 당하는 건 네가 될 테니까.”
신호가 바뀌자 차이링이 다시 차를 출발 시켰다.
“당하고나서... 그때 가서 후회한들 소용은 없어. 그때 가서 누가 널 도와준다고 해도 이미 많은 상처를 안고 있을 테니까.”
삼합회에 들어가서 차이링은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중에 제일 많이 느낀 게 있다면 자신처럼 여자의 몸으로 들어왔다가 낙오하는 이들이 대부분 보여준 비참한 모습을 자신은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삼합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중엔 요행을 바라는 이들도 있었고 몸을 내주거나 해서 쉽게 도움을 얻으려 한 애들도 있었다.
허나 결국엔 버려지거나 스스로 따라가지 못 해 이용만 당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들이 전부였다.
그 중엔 노력해 마담이 되거나 해서 그런대로 좋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별로 많지도 않았다.
“특히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서러운데. 거기다 그쪽 생활이 원래 그래서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여자라도 언제 어디서 칼침을 맞을지 모르거든.”
“......”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하란이를 향해 차이링이 다시 말을 이었다.
“훗... 혼란스러워 할 것 없어. 저 언니는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지나가면 돼. 복잡하게 생각하고 마음에 담게 되면... 너만 힘들어져.”
그리곤 고개를 돌려 하란이의 눈을 마주치며 한 쪽 눈을 찡긋했다.
“알았지?”
그렇게 차가 막히지 않아 돌아오는 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초구에 자리한 저택에 당도한 차이링은 곧장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개인 주차장의 공간이 넓진 한 지라 최대 세대까지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응?”
“오빠 돌아 왔나보네요?”
주차장엔 어느새 이만석이 타고 나갔던 차량이 먼저 주차되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옆에 차를 정차시킨 차이링이 시동을 끄며 입을 열었다.
“늦게 올 줄 알았는데 웬일이래.”
“그러게요.”
차이링은 물론이고 하란이 또한 이만석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트를 하는데 이렇게 짧게 만나고 헤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보면 알겠지.”
안전벨트를 풀고 하란이가 먼저 내린 사이 차이링이도 뒤 따라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이거 다 들고 가려면 세 번 정도는 반복해야겠어요.”
뒷좌석에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차있는 것을 보며 하란이 말했다.
“음... 좀 많긴 하네.”
기분 좋게 백화점에도 들리고 길거리 쇼핑하며 이것저것 사긴 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많긴 했다.
“옷이 부피가 좀 크니까... 별 수 없지 뭐.”
신상코트부터 시작해서 셔츠에 치마, 그리고 맵시를 강조해주는 스키니 진까지 옷 들이 제법 되었다.
“일단 꺼내놓죠.”
뒷좌석에 있는 짐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하는데도 전부 꺼내는데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좌석뿐만이 아니라 발을 놓는 바닥에도 놔야 할 정도로 많아서 그런 것이다.
트렁크에 실으면 안 되겠냐는 하란이의 말에 그냥 한 번에 다 밀어 넣으라는 차이링의 현명한(?) 지론 때문에 이렇게 빼곡하게 쌓여 있는 것이다.
“휴우~!”
바닥에 차곡하게 모여 있는 쇼핑백들을 보면서 하란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렇게 놓고 보고 있으니 흐뭇하지 않니?”
각 브랜드의 로고가 적혀 있는 쇼핑백들을 보면서 차이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긴 하네요.”
하란이 또한 그런 차이링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여자에게 쇼핑이란 살아가는 활력소에다 생활의 일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차이링이나 하란이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 거니까 기분 좋게 옮기자.”
“그래요.”
웃음을 지은 하란이 머너 부피가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줄을 한 대 잡아들었다.
주로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었는데 옷들이 들어있는 쇼핑백에 비해 크기가 1/2도 안 되었지만 20개가 넘어가니 드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각자 한 손에 5개씩 열 개정도를 양손에 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살 때는 몰랐는데 무게가 좀 나가네요.”
“대부분이 화장품들이니까.”
그렇게 걸음을 옮겨 현관문으로 향하지만 마당이 넓어서 가는대만도 일이었다.
“이럴 때는 집이 큰 게 확실히 좋지가 않아요.”
“그건 그래...”
그렇게 조금 팔이 아파올 때쯤 되어서야 현관에 도착한 차이링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들을 내려놓고는 도어 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자, 들어가.”
다시 놔두었던 쇼핑백을 드는 동안 하란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차아링 또한 안으로 들어가 문이 닫히지 않게 발로 고리를 내리며 바라보는데 신발장에 우두커니 서있는 하란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 쪽에 놔두지 않고 뭐해?”
“왔어.”
그때 이만석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당신 생각보다......어머?”
이미 차량을 봐서 이만석이 온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 언제 온 거냐며 물어보려던 차이링의 눈에 긴 웨이브머리에 또렷한 눈매의 예쁘게 생긴 여자가 한 명이 이만석의 옆에 서있었다.
어색한 모습으로 서있는 그녀 또한 하란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마주한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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