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 303화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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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러가 죽었다고?”
흰머리가 희끗한 연갈색 머리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고 눈가엔 짙은 주름에 콧수염을 기른 메케인 국장의 얼굴에 순간 놀라움이 일었다.
“그렇습니다. 자택에서 피살 된 채로 발견 됐다고 합니다.”
“범인은?”
“그게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놀란 표정을 지었던 메케인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일러가 죽었다는 것은 그에게도 큰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망시각은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본국을 나가고 곧장 집으로 향했나보군.”
그 정도의 시간이면 곧장 집으로 향했다고 보는 게 옮았다.
비록 정적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카일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카일러 또한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비밀도 아니어서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소행일 것 같나.”
40대 중반의 정장차림의 날카로운 대머리의 흑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밝혀진 것은 없지만 그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역시... 그런가.”
정보부장인 조세프의 말에 메케인 국장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니면 카일러를 죽일 이들에 대해서 딱히 떠오르는 인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는 게 카일러가 살아있다면 그들의 입장에서도 껄끄러웠다.
비록 사직서를 내고 CIA를 떠났다고 하지만 후환을 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손을 써서 CIA를 떠나게 만드는 것으로 일단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잔인해...”
카일러가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했는지 아는 사람을 나오라고 한다면 메케인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정면으로 그와 기 싸움을 벌이며 CIA를 두고 밖과 안에서 전쟁을 벌였으니 누구보다 신경 쓰고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만큼 또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봐도 되었다.
“그들은 원래 그런 자들입니다. 스스로를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메케인이 잔인하다는 말을 조세프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충직한 개도 버려지는 세상이로군.”
씁쓸하게 말하는 메케인의 머릿속에 순간 안토니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도 아니지.’
그 또한 안토니오에게 버린 것과 다름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스스로도 만약 안토니오가 그대로 끌려갔으면 구해내더라도 폐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를 탓하지 않는다.’
정보를 넘기고 이집트로 가족과 함께 잠적해버린 안토니오를 그는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고 그는 살아남는 방법을 그대로 실천 한 것일 뿐이었다.
“카일러가 떠나고 집행부장의 자리도 비워져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지금 CIA내에서 더 이상 메케인을 제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카일러가 그들의 힘을 뒤엎고 부국장으로써 견고하게 담장을 쌓아서 전쟁을 벌였다면 지금은 포탄을 맞고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허물이 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국장의 힘이 예전만큼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시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고 카일러가 없는 지금 상황에 CIA내에서 그를 막아설 이들이 없었다.
“분류에 들어가지.”
“정보부는 일주일이면 끝날 것입니다.”
정보부 내에도 카일러를 따르는 이들이 포진해 있다고 하지만 엄연히 메케인을 따르는 조세프가 잡고 있는 부서였다.
루카스가 최근 들어 힘을 발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정보부 내에서 그를 견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루카스를 밀어주던 카일러가 사직서를 내고 떠나버렸으니 다 이상 조세프는 그를 자신의 상대로 보지 않았다.
집행부를 잡은 것처럼 카일러는 루카스로 하여금 정보부를 장악하려 했겠지만 그동안 착실하게 생활해온 조세프는 딱히 흠집 낼만한 흠결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루카스가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어서 최근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이번일로 인해 모든 게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CIA를 떠난 건 좋은 일이겠지만 죽은 일은 상당히 찝찝해.”
“생각 이상으로 냉정한 이들이라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카일러가 모든 책임을 짊어진 체 세상을 떠났으니 영상으로 재미 보는 것도 이젠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조직을 재정비 하는 대에 신경을 쓰도록 하지.”
지금 당장 메케인 국장이 실행해서 제일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조직을 재정비해서 장악하는 것이었다.
미적거려서 좋을 게 없는 만큼 CIA를 완벽히 장악하는 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예, 대통령님.”
정갈한 차림의 50대 초반의 광대가 튀어나오고 뱁새눈에 짙은 동공을 가진 중년인이 김현수 대통령의 앞에 다소곳한 자세로 서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집에서 피살이 된 채로 발견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건을 맡은 경찰 측은 돈이 될 만한 것을 훔치기 위해 침입한 무장 강도의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위에서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생각하나요.”
“아직 확실한건 아니지만 위에서 지시를 내린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김현수 대통령의 두 눈이 살며시 감겼다가 떠졌다.
“마이클 대통령 측에서 그랬을 리는 없을 겁니다.”
넘겨준 영상이 쓸모가 없어지기 전 까진 카일러를 쉽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FBI는 물론이고 그쪽 요원들로 보이는 이들 때문에 더 이상 알아보는 건 힘들었습니다.”
“요원들이라면 어느 쪽입니까.”
“안보국측인지, 아니면 CIA인지 정확히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행동거지로 보아 안보국 쪽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잘했다고 봅니다.”
그가 피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정도의 정보를 입수해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정원 요원들이 그만큼 열심히 움직여 주었다고 보는 게 옮았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구려...”
“......”
아무 말 없이 부동자세로 서있는 중년인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해주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국가를 위해 맡은바 소임을 다할 뿐입니다.”
국정원을 책임지고 있는 한상호는 비서실장 종원찬을 포함해 몇 안 되는 김현수 대통령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심복 중에 한 명이었다.
그렇게 한상호가 대통령 집무실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현수 대통령은 비서실장인 종원찬을 호출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종원찬은 90도로 고개를 숙인 후 다가가 앞에 섰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진지한 표정의 김현수 대통령을 말에 종원찬 비서실장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카일러 그자가 죽었다고 합니다.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일이 벌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동안 고심을 하는 듯 하던 김현수 대통령이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벌어졌으니 말해줘야겠지요.”
“제가 연락을 하겠습니다.”
김현수 대통령이 직접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그가 죽었다고 말만 전해주면 될 겁니다.”
만약이라는 말을 전제로 전해 들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야 말았다.
“민준씨 여기에요!”
레깅스에 검은색 스커트, 그리고 흰색 블라우스에 브라운색 코트를 입고 있는 지나가 이만석의 차량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갓길로 차를 몰아 속도를 졸여 지나의 앞에 멈춰서자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지나가 안으로 올라탔다.
“호~추워라.”
손이 입김을 불어 가볍게 비빈 지나가 고개를 돌려 이만석을 바라보며 싱긋 웃음 지었다.
“어떻게 알고 손을 흔들었습니까. 차도 많이 다니고 거리도 꽤 되었는데.”
“이래 봐도 저 시력 좋아요~! 그리고 민준씨가 타고 다니는 차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죠! 민준씨 놓치면 큰일 나잖아요!”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피식 웃음을 지은 이만석이 음악볼륨을 조금 높이곤 갓길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도로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이만석은 차안을 둘러보는 지나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달라진 거 없습니다.”
“그거 때문에 보는 게 아니에요. 그저...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요.”
“믿기지가 않는다고요?”
“네...”
고개를 끄덕인 지나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차를 어루만졌다.
“내가 다시 민준씨의 차에 올라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래요.”
“......”
“다시는 민준씨의 옆에 앉을 수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게 끝인 줄 알았으니까.”
지나 뿐만이 아니다.
이만석 또한 다신 그녀를 태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미안해요 민준씨. 데이트 자리에서 이런 안 좋은 얘기 꺼내서.”
“아닙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만석이 손을 뻗어 스커트 위에 얹어져 있는 손등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순간 지나의 손이 움찔하자 이만석이 강하게 쥐어주었다.
“이제 지나씨가 나를 싫어해도 내 여자라는 생각으로 이 손을 놓아주지 않을 거니까 내 곁에서 떠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
지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만석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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